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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세계적인 경영 구루들의 경영비법

(4)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의 리더십

by 전경일 2018. 3. 22.

미워할 수 없는 구두쇠 영감

 

캄프라드가 런던에 있는 브렌트 파크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영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이코노미 클래스 비행기를 이용했고 도착해서도 지하철로 런던을 돌아다녔다. 그 시각, 회장의 매장 방문을 위한 환영파티를 준비 중이던 브렌트 파크 매장에서는 캄프라드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언제 도착할지를 아무도 알지 못해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캄프라드는 버스를 타고 매장에 나타났다. 런던의 브렌트 파크 매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정류장에 내려서도 고속도로 교량들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한다. 그런 매장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버스를 타고 간 것이다. 버스는 그가 가장 애용하는 수단이었으며, 이제는 노인 무임승차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또한 캄프라드가 고향인 엘름훌트시의 초대를 받았을 때 이야기이다. 그곳은 1953년 이케아의 첫 매장이 문을 연 곳이기도 하다. 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캄프라드의 동상 제막식에서 그는 리본을 자르기로 되어 있었다. 때가 되자 캄프라드는 리본을 자르는 대신 조심스레 리본을 풀러 되감고 시장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제 이 리본을 다시 쓸 수 있겠군요.”

 

이와 같이 캄프라드는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성냥을 팔던 사업 초기 시절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이코노미 석을 고집하고 식사도 간소하게 했으며 늘 수수한 옷을 입었다. 차를 렌트할 때에도 가장 싼 차를 빌려서 스웨덴의 눈길 위에서 종종 스키 회전 경기를 벌였고, 심지어 동네 슈퍼마켓에서 물건 값을 깎으려고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잉바르 캄프라드에 대한 소문들

과일과 야채를 주로 상점이 문을 닫기 직전에 산다. 그편이 더 싸기 때문이다.

티백을 재활용한다.

호텔 냉장고에서 음료를 하나 마시면 대신할 것을 사러 슈퍼마켓에 간다.

저녁 외식 비용으로 5파운드 미만을 지출한다.

바지 뒷주머니에 커피 젓는 플라스틱 스푼을 갖고 다닌다.

 

그 밖에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의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다소 과장된 일화도 섞여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소문이 사실인지에 대한 여부가 아니다. 이케아의 들어오고 나가는 돈에는 캄프라드의 검소한 생활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것은 곧 이케아가 믿고 추구하는 조직문화이다.

 

캄프라드가 어느 매장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매장에서 캄프라드는 의자 하나를 쓰레기장으로 내려 보냈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 그는 모든 스태프를 그곳으로 소집했다. 그는 거대한 쓰레기통 앞에서 자신이 찾아낸 의자를 머리 위로 흔들어대며 그것을 내다 버렸다며 직원들을 꾸짖었다.

 

의자에 흠집이 생겼거나 망가졌어도 절대 폐기하면 안 됩니다. 더 싸게 팔아야죠.”

 

캄프라드가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계산대에 서 있는 이케아 고객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트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얼마나 주고 샀는지 묻는 것이다.

 

이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요? 이 물건이 그 정도 돈을 낼 만할까요?”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괴팍한 노인네로만 생각할 뿐, 이케아의 창업자가 눈앞에 있다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다. 압박에 못 이긴 누군가가 물건 중 하나의 가격이 좀 과한 것 같다고 인정하면, 캄프라드는 그것을 그 매장의 스태프에게 가격의 중요성을 가르칠 기회로 활용했다. 이것이 이케아의 가격은 항상 적정해야 하는 이유라고 그는 말했다.

 

고객이 가격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가격을 내려야 한다.”

 

캄프라드는 이 특유의 미덕이 이케아의 비전이 되도록 몸소 본보기를 보였던 것이다. 이런 캄프라드 덕분에 이케아는 업계에서 가장 군살 없는 기업이 되었다. 회사 내에서 양복을 입은 직원은 찾아볼 수 없으며 간결한 직급 체계로 운영되고 광고도 여느 대기업의 광고와는 달리 간소하다. 스태프들은 출장 시 이코노미 클래스나 저가 항공으로 이동했고, 시기를 놓쳐 남은 자리가 일등석 밖에 없는 경우에는 차를 타고 수백km의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숙박은 싸구려 모텔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한 방을 이용해야 했고, 한밤중에 고급 호텔 외에는 빈 방을 구할 수가 없자 단체로 차에서 잠을 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그런 캄프라드를 존경한다. 평소에도 잘난 척하지 않고 평범하게 행동하며 자신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친근한 리더의 태도에 애정을 품는다. 젊은 시절 나치즘에 가담했던 그의 행적 때문에 논란이 일자 이케아의 스태프 수백 명이 그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 편지를 받은 캄프라드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큰 규모의 기업 중, 기업문화에 창업자의 성격이 이토록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스스로 구두쇠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60년 이상 직접 이끌어 오면서, 스스로의 가치와 신념이 전 직원들에게도 뿌리 내리게 했다. 물론 그것은 직원들에 앞서 자신부터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인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