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는 글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09. 2. 2. 18:05

문익점, 지속혁신의 조건

<문익점, 지속혁신의 조건>(가제)으로 창조적 혁신과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의 생존전략을 다룬 책을 준비중입니다. 그 얼개를 소개합니다. 글의 대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토요타에서 문익점을 만나다

지난 5월 30일, 나는 비즈니스부문에서 실시한 창의적 혁신 마인드 제고를 위한 TPS 견학 차 일본 나고야시에 위치한 토요타산업기술기념관 앞에 섰다. 개인적으로 7년간 별러온 참관 방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를 일본어로 ‘솟타구’ 기회라고 하던가! 언필칭 절호의 찬스라는 의미렸다!

내가 이 기념관을 방문하고자 했던 것은 그간 말로만 듣던 토요타 혁신 마인드를 살펴보고, 매출 23조엔, 영업이익 2.3조(‘07년 회계기준)의 눈부신 성장을 꾀해 내고 있는 그들의 숨은 성장 비결이 무엇일까, 지난 7년간 내가 천착해온 토요타 경영 혁신의 진짜 알맹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점을 파헤쳐봄으로써 그 본령에 깊숙히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토요타의 경쟁력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간 연구해온 ’문익점 프로젝트‘의 끝을 볼 수도 없거니와, 100년 기업의 혁신을 내재화시켜 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항시 나를 짓누를 것 같았음은 당연하다. 그만큼 나의 의식은 문익점과 토요타에 닿아 있었다.


문익점과 토요타. 이 둘은 무슨 상관이 있길레 나는 어둑시니에 붙들린듯 이 둘을 한 덩어리로 대하며 탐침하려 든 것일까?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출간될 책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일단은 그 뒷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 알의 목화씨가 불러온 경영 혁신

‘700년 전 전래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 7년간 나의 의식을 붙들어 맨 화두는 이것이었다. 이 화두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정한 도전, 혁신의 도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떤 ‘도전’이어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혁신의 출발선이 놓여 있다.

세상에는 영원히 지지 않는 도전이 있다. 처음엔 작은 시도였으나, 추구하는 바의 원대함으로 인해 훗날 큰 족적을 이뤄내는 일들이 있다. 700여 년 전,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가 바로 그렇다. 려말 원-명 교체와 고려-조선이 바뀌는 극도의 혼란기에 문익점은 이른바 <공민왕폐위사건>으로 극도의 경색국면에 접어든 원과의 현안문제를 풀기 위해 사행길에 오른다. 이때가 1363년(공민왕 12)의 일이었다. 서장관으로 간 그는 반(反)공민왕 일파에 귀부하라는 원 황제의 명을 거역했다는 죄로 42일 동안 구류에 처해진 뒤, 그해 11월 지금의 베트남인 교지국(交趾國,)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가 풀려난 건 1366년 9월, 결코 짧지 않은 유배생활이었다.

그런데 문익점은 귀양살이에서 풀려 원도로 귀환하는 도중 밭 가운데 핀 목화꽃을 보게 되면서 인생일대의 대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귀양에서 풀려 돌아 온 그를 원제는 예부시랑(禮部侍郞)어사대부(御使大夫)로 봉하였으나, 사임을 청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때가 1367년(공민왕 16) 2월로 고려를 떠난 지 근 5년 만의 일이었다. 문익점이 귀국하자 공민왕은 중현대부예문관제학겸지제교(中顯大夫禮文館提學兼知製敎)의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곧바로 고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달리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그 일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그 자신도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빗어내게 되는 게 그게 바로 목면혁명이었다. 하나의 작은 의지가 마침내 의료(衣料) 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마치 근대서구에서의 산업혁명처럼 의료(衣料)혁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목화씨 한 알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다


온갖 노력 끝에 목화는 10년 내 한반도 전역으로 보급되어 나가기 시작하고, 13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목면은 본격적인 재배에 들어간다. 심지어는 세종시기 4군6진의 개척에 따라 북진화 정책에 힘입어 북방지역의 경제 활동과 국토 확장에 크게 이바지 한다. 그리하여 의생활을 비롯, 다양한 분야에서 신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다한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익점은 목화 재배뿐만 아니라, 호승 홍원에게 직조법을 배워 기구를 만들고, 방직 기술을 개량해 낸다. 또한 일가의 헌신적 노력으로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 소사차(繅絲車) 즉, 물레를 개발해 내고 문래(文萊)의 동생인 문영(文英)은 조직(繰織) 기술을 개발해 낸다. 문영이 무명이 되는 것은 민간의 입에 오르게 되면서부터다. 그야말로 혁신의 파노라마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문익점의 혁신 마인드는 어디서 나왔을까? 문익점의 목화 발견의 의의중 하나는 그가 무한한 잠재가치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린 눈과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화를 목견했을 터인데, 오로지 그에 의해 그 가치가 픽업된 것은 이 점을 잘 드러내 준다. 이는 평소 주변 사물이나 일에 대해 고정 관념을 버리고 열린 눈과 귀로 새로운 가치를 보고자 하는 혁신마인드와 상상력이 결합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저자인 리차드 포스터와 사라 카플란은 혁신성공 이유로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를 주창하고 있는데 문익점 프로젝트가 이와 같다 하겠다. 주변의 사소한 일에도 우주적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우주적 상상을 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목화는 현해탄을 넘어서 렉서스가 되더라

문익점의 목화와 관련 기술은 임진왜란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서민 생활에 결정적으로 이바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에서 쓰인 것과 사뭇 달리 의료(衣料) 이외에 다른 용도, 즉 임란 시기 화승총의 원료나 선박의 돛 등으로 쓰이며 오히려 조선 침략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다 개항을 전후로 해서는 일본 방직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조선 면업을 초토화시켜 버린다. 이때부터 조선은 목면의 원료 공급기지와 소비지로 전락되고,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병참기지화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회사가 토요타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도요타 사치키는 실로 탁월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평생 직기개발에 힘써 인력 직기를 동력 직기로, 동력 직기를 다시 자동직기로 발전시켰고, 또 평면 직기를 환상(環狀) 직기로 개발해 내며 자동직기의 혁신에 평생을 몰두한다. 이렇게 혁신적인 발전 기회를 갖게 된 도요타는 자동직기의 개발 특허권을 영국방직회사인 플랫-브러더스사에 팔아 100만엔을 마련한다. 이 돈이 훗날 도요타 사치키의 아들 기이치로가 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하는 종잣돈(seed money)이 되는 것이다. 이 돈은 문익점이 최초로 들여 온 목화씨처럼 미래 토요타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재원이었던 셈이다.

이 시기로부터 도요타는 토요타자동차를 출범시켜,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은 혁신을 강화해 나간다. 이른바 토요타생산방식(TPSㆍToyota Production System)으로 알려진 100년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적 노력이 토요타이즘(Toyota-ism)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 역사적 변천사의 궤를 꿰며 ‘혁신’, ‘지속성장의 조건’, ‘패러다임 전환’ 등의 경영용어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목면과 기술을 받아들여 지속 혁신시킨 반면, 우리는 안타깝게도 초기의 발전을 근대에까지 이어나가지 못한 채 가내수공업에 머물러, 끝내 일본면방직업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우리로부터 도입하고 발전시킨 일본의 면업은 그후 우리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며, 자동차 산업으로 먼저 환골탈태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토요타산업기술기념관은 바로 그런 그들의 역사를 말해주기라도 하듯, 방적기 등 일본 기계공업의 역사는 물론 도요타 자동차의 발전 과정도 한눈에 띄인다. 물론,유리창속의 화승총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많은 경영자, 관리자들이 이 기념관을 찾지만,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엄연하기만 한 역사의 흐름을 꿰며 알고자 할 것이며, 기업차원을 뛰어넘어 국가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생각할까?

오늘날 한국 경영자들은 생산성 향상차원의 벤치마킹을 뛰어넘어, 목화씨 한 알을 앞에 두고 깊은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할런지 모른다. 이것이 토요타 10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우리가 문익점을 현재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기업, 나아가 국가도 혁신의 노력 없이는 일획을 긋는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문익점 시대의 탁월한 성취는 결코 역사의 일부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21세기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문익점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혁신과 도전이 멈출 수 없는 가장 분명한 이유이다.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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