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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사페라 베데아레(Saper vedere) 찬양

by 전경일 2023. 5. 7.

사페라 베데아레(Saper vedere) 찬양

 

보는 방법을 아는 것(saper vedere)이란 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로 그 뜻은 미학과 예술 용어로 작품을 감상하는 심미안을 갖춘 것을 말한다.

 

즉 다빈치에게 한계란 현존하지 않는 것, 즉 예측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시도할 때 보이고, 그럴 때 답답하게 짓눌러 왔던 문제가 극복된다. 숨어 있는 가치, 만져지지 않는 가치를 아는데서 비롯된다.

 

사물이나 문제가 간단할 때에는 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복잡성을 띨수록 제대로 이해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평면적 시각이 아닌 입체적 시각으로 사물과 세상을 볼 수 있는 남다른 통찰력이 요구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가변적 세계의 최대 특징은 아마도 복잡계(複雜系, complex system)현상일 것이다. 이 키워드가 이끄는 흐름을 읽어 내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다빈치식 역량이 요구된다. 그는 미술에서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이란 걸 처음으로 생각해 낸 인물이다.

 

다빈치에게 있어서 회화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참 학문이었고, 자연이 낳은 적출(嫡出)의 딸이었다.” 이 점에서 다빈치는 동시대 화가들과 다른 새로운 경지를 펼친다. 이탈리아 미술가 마테오 마랑고니에 의하면, 다빈치는 조형적 형태를 중시한 피렌체의 미켈란젤로식 미술에서 빛이 승리하는 베테치아식 근대미술로 이끈 장본인이다. 미술에 빛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물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모든 것을 빛과 그늘의 소용돌이로 표현해 냈다. 그것은 다른 한편, 인간(인물)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결국 미술은 빛을 그리는 것이며, 우리는 빛 속의 세상을 보고 있다. 성서(聖書)적 표현을 빌리자면, 태초에 흑암의 깊음 위에 놓여 있던 땅의 실체를 빛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변수 요인이 유기적ㆍ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복잡계 이론에 대해 미국 예일대 제롬 싱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복잡계란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행위자들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행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종합적 행동은 비선형적이어서 개별요소들의 행동을 단순히 합해서는 유도해 낼 수가 없다.”

 

다양하고 많은 수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해 하나하나의 특성과 다른 새로운 질서가 생성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은 경영학자인 피터 센게의 주장에서도 찾아진다.

 

구름이 짙어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나뭇잎들이 위쪽으로 떨리면 우리는 비가 오리라는 것을 안다. 또한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는 땅 위를 흐르는 빗물이 지하수를 보충하고 내일이 되면 하늘은 맑아지리라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들은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이지만, 동일한 패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사건은 나머지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신이 폭풍우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패턴을 고려했을 때이지 그 패턴의 특정 부분을 고려했을 때가 아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왜 필요한지 적절히 설명되어 있다.

 

이 같은 복잡계에 대한 인식은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컨셉의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 Projective Geometry)에서도 찾아진다.

 

사영이라 함은 물체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나, 그 그림자를 뜻하는 것이다. 평면도형 또는 입체에 평행광선을 보내 그림자가 평면 위에 생기게 하는 것이다. 3차원 물체나 경치를 평면에 투영시켜 표현된 제도나 그림에 대한 원근법을 이해하는데 쓰인다.

 

이 견해를 정리해 새로운 수학을 구상해 낸 이가 프랑스 수학자인 장 빅토르 퐁슬레이다. 그는 1821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시 공병 중위로 종군했다가 퇴각 시 꽁꽁 얼어붙은 드네프르 강변에서 포로로 붙잡혔다. 포로가 된 전우들이 끌려가며 속속 길가에 쓰러져 죽는 상황에서도 그는 흑빵 한 덩어리를 움켜쥔 채 영하 39도의 혹한에서 5개월간 걸어 마침내 볼가 강변의 사라토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는 봄이 될 때까지 전혀 기력을 펴지 못하다 차차 건강이 나아져 4월의 태양이 내려쬐일 무렵부터는 차츰 힘을 회복해 학생 시절에 배운 것들을 회상하곤 하였다. 책도 종이도 없고, 수학을 얘기할 상대도 없는 가운데서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감옥 벽에 화롯불의 숯 찌꺼기를 들고 와서 작도(作圖)하기도 했다. 노트와 연필을 구한 다음에는 일곱 권의 메모를 했고, 그것을 18149월 프랑스에 귀국할 때 가지고 돌아왔다. 이 노트에 정리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영기하학 원리이다.

 

사영기하학은 공간의 성질과 공간 안의 물체에 대한 성질을 다루는 수학의 주요 분야이다. 사물과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나아가 이 같은 관점은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해 볼만 하다. 1820년경 프랑스의 공학자인 장 빅토르 퐁슬레는 3차원의 물체나 경치를 평면에 투영시켜 표현된 그림의 원근법을 이해하게 하는 사영기하학을 만들어 냈다. 이 새로운 수학 영역은 멀리서 보아도 변치 않는 기하학적 도형의 특성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위 그림의 오른쪽에 색칠한 카드가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평면적으로 피라밋상을 연상한다. 하지만 이 모양은 실은 왼쪽의 수많은 조각들의 입체적 모임이거나, 공간을 통해 눈에 투영되는 각도 때문에 그것들이 하나의 질서정연한 패턴으로 보이는 것이다. 왼쪽의 조각들만 봐서는 오른쪽의 피라미드가 생길 것으로 예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예술 분야에서 앞서 했던 사람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였다. 세티냐노 채석장의 석재 채취꾼들과 석수장이 틈에서 어려서부터 유모로부터 돌가루와 젖을 먹고 클 정도로 돌에 익숙했던 그는 사암의 하나인 피에트라 세레나를 깎고 다듬으며 위대한 입체(立體)를 감지한다.

카라라의 대리석 산에서 나오는 석재만 보고도 조각상을 끄집어내는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런 훈련과 관찰의 힘 덕분이다. 또한 그리스 펜텔리콘의 대리석산에서 굴러 나와 고대 예술품을 장식했던 오랜 거장들의 반열을 따르는 입체적 예술경지를 보여주는 근간이 된다.

 

이런 것은 당연히 오늘날 미국 버먼트주의 채석장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역사저술가인 데니스 더신은 미켈란젤로가 지닌 통찰력에 관해 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조각가가 실패하고 남긴 거대한 대리석으로 인물을 조각해야만 했다. 처음에 그 대리석을 본 순간 미켈란젤로는 선뜻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5.4미터 높이의 대리석 주위를 천천히 돌며 아래위로 꼼꼼히 살피던 그는 약 40년 전 도나텔로의 제자가 그 작업을 포기한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 조각가는 서툰 솜씨로 거대한 대리석을 망쳐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실수한 부분들을 복원할 능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날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열심히 정으로 조각한 끝에, 흉물스럽던 대리석을 새롭게 살려냈다.

*

그는 카라라의 채석장으로 향했다. 채석장에서 그는 아주 행복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볼 때마다 대리석들에게 조각상을, 투박한 기둥들에서 기념비를, 절벽 전체에서는 거상들이 만들어질 모습을 저절로 떠올렸다. 온통 못이 박인 손으로 거친 석판을 쓰다듬던 그는 그 돌이 원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상상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모든 대리석을 틀에 박힌 형태로 상상하지 않는다.”

 

이 유명한 다비드 상을 만드는데 쓰인 대리석은 처음에는 1464년에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라는 조각가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8년 뒤에는 안토니오 로셀리노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다 마침내 미켈란젤로의 손에까지 건너온다. 엉성하게 잘리고 작업되다 만 원석으로 미켈란젤로는 전혀 다른 작품을 창조해 냈다.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노골적인 부위는 고사하고, 양손과 머리의 크기도 엄청나서 모든 면에서 다윗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비드상은 처음에는 독립된 작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피렌체 성당 지붕 위에 세워두기로 한 것이다. 머리 크기와 돌을 던지려는 두 팔이 강조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워낙 아름다워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두기로 했다. 종합적으로 이 작품이 지닌 함의를 살펴보면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만든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조각가는 과감한 정신으로 양치기 소년 다윗이 가졌던 용기를 끌어냄으로써 피렌체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완벽한 작품은 육체는 영혼의 거울이라는 그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의 원천이 뭔지를 일깨워 준다. 1504, 높이 5.17m, 대리석,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 소장.

 

보는 눈이 미치는 힘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찰스 다윈은 1871년 인류의 조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하게 되는데,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그는 매우 보잘 것 없는 작은 지식을 조합해 가며 명석한 추론에 이르렀다. 그 당시엔 화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화석 연대 측정도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관해서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였다. 그럼에도 부분 지식으로 전체를 꿰뚫어 본 것이다.

 

이 같은 통찰은 칼 마르크스의 동료이자 사회학자인 엥겔스의 연구에서 특별히 찾아진다. 그는 동물들이 신체의 일부를 무기나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인류의 조상들은 자신을 확장시키는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립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관점은 직립과 노동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으로, 부분적 사실로부터 다른 사실, 전체 사실에의 가능성으로 확장해 간 것이다. 일테면 사영기하학적 시각으로 전체를 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보는 법을 알아야전체를 볼 수 있다. 또 각 구성요소를 재구성할 수 있다. 각기 다른 동기, 입장, 처지, 조건,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전체를 구성해 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그 구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거기서 빠져나와 전체를 알기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인과 관계를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입체를 구성하는 낱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새롭게 분석하고 통합하는 눈을 부여한다.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 로마, 볼로냐, 만토바 등에는 고대 로마 문학을 공부하며 라틴어로 논문을 쓰는 학자들이 그득했다. 다빈치도 그들 무리 속에서 라틴 고전 문학을 읽고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지식인들처럼 고전의 자잘한 어귀 해석과 주해에 중점두지 않았다. 대신, 마른 스펀지처럼 논리성과 합리주의, 리얼리즘이 생생한 고대 그리스 로마 정신을 흡수했다. 그가 당대 학자들에게 스스로 나는 무학자(無學者, omo sanza lettere)라고 폄칭한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작은 것만 쪼개봄으로써 전체를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신랄한 조소였던 것이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본다는 것, ‘보려는 것’, ‘보고 싶은 것을 진정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이다. ‘에서 세계관이 나오고, 가치관도 나온다. ‘은 의식의 방향이자, 추구하는 바를 담는 지표다. 누구든 자신의 이 반영될 때 삶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것이 눈을 속이지 않게 할 때라야 인간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 고유의 본성과 인간과 세계가 만나는 접점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눈에 비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볼까?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한 폭의 그림, 한 점의 조각, 한 편의 시도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그것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게 해야 한다. 그것이 마침내 내 영혼과 통해 영혼의 물결이 발밑에 와서 찰랑찰랑 부서질 때 내게는 우주적 눈이 뜨인다.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통찰해 낼 수 있다.

보는 것과 관련되어 영국의 문화경제학자 존 러스킨은 이런 멋진 말을 한 적 있다.

 

일을 바르게 보는 데에는 한 가지 방법만이 있다. 일 전체를 보는 것이다.”

 

우린 '일'을 보고 있나? 전체로서 일을 파악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