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영 철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웃소싱 되어, 시간을 두고 점차 한국화 되었다. 유학은 그런 차원에서 오랜 기간 서서히 민(民)ㆍ관(官) 사이에 퍼지다가 마침내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국 하에서 조선의 창업자들에게 발굴되어 국가 경영 철학으로 크게 강화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매너리즘에 있었다. 모든 것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의례 즉, ‘형식’만이 권력을 치장하고,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현 시대의 국가나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어느 조직이든 ‘혁신’은 그 자체로 어디로 굴러 가든 바퀴를 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조선의 국가 경영 이념인 주자학에서 말하는 예(禮)는 모두 고대 중국의 성왕들이 창조한 이상적인 사회를 상세히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신유학자들은 이 문헌들을‘철저하게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중국 상고시대의 ‘옛 제도’를 재창조하는 일을 그들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친 훈고주의적 태도가 유교의 ‘생생(生生)함’을 잠식시켜 버리며, 오로지 의례로써의 ‘예(禮)’만을 강제하는 규범으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경영 철학의 매우 부당한 활용으로 너무나 오랬 동안 이어졌다.
이같은 사상적 벤치마킹은 ‘전범(典範)’이라는 이름으로 편(偏)중국적 아웃소싱만을 해낸 측면이 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세계’는 ‘중국’이었다. 물론 이슬람과 서방이 여러 문물을 통해 손에 잡혀질 듯 느껴졌지만, 그것은 ‘중국’처럼 바로 손에 와 닿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중국 역사상 좋은 정치를 한 군주와 우리나라 군주의 업적을 정리하여 『치평요람(治平要覽)』이라는 책을 편찬하게 한다. 또, 당나라 현종이 정치를 잘못한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명황계감(明皇誡鑑)』이라는 책을 편찬케 해 후대 조선의 CEO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였다.
더불어 의례의 제정은 태종의 마스터플랜을 이어받은 세종의 중요한 과업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세종은 고제(古制)를 찾되 개혁을 위하여 복고적인 방법으로 중국 삼대(三代)의 예를 참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음악’은 세종의 중요한 업적으로 우리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진정 거대한 것이 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벤치마킹과 아웃소싱의 가장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touchable) 측면은 과학과 IT기술 분야였다. 거기에는 중국을 넘어 멀리 유구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심지어는 이집트 나일 강의 삼각주에서 활용되었던 고도의 수학적 원리가 녹아 흐르는 기술의 집적체가 중국을 통해 건너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현해탄을 넘어 들어온 ‘수차(水車)’는 기술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무엇이든 처음부터 시작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는 ‘벤치마킹(bench marking)’과 ‘아웃소싱(out-sourcing)’의 방법을 잘 활용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틀에 부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라. 새로움은 반드시 주목의 대상이 된다.
* 과거의 역사로부터 묻혀 있던 사실을 빌려와 이를 적극 활용하라. 때로 이럴 때의 리메이크(remake)는 가장 강력한 활력이 되어 준다.
* 자신만의 고유한 공유 질서를 만들라. 그것이 강하다면 어떠한 외풍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 매너리즘을 극복하라. 그것은 건강한 권력 유지의 한 방법이다. 이것은 또한 권력을 치장하고, 기득권을 유지해 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조직 내 매너리즘이 뿌리 깊게 확산되어 있다면, 그 조직은 금방 시들고 만다.
* 벤치마킹과 아웃소싱의 원칙을 정해라.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touchable) 것 이면에 녹아 흐르는 진정한 가치에 주목하라. 그것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