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반열에 진입했다. 또한 교역 면에서도 세계 7위국이 됐다. 국력 신장의 배경에는 그간 기업들이 추구해 온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주효했다. 이는 고속성장 시대 선진국 제품을 모방해 저임금으로 ‘빨리빨리’ 만들어 판 방식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 산업이나 상품이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는 시기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론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게 됐다. 한마디로 말해, ‘20세기 방식은 끝났다.' 우리가 이룩한 과거의 산업적 모델은 오늘날 초경쟁 환경에서는 통하지 않는 낡은 고물이 되어 버렸다.
21세기 경쟁에서는 ‘초경쟁(Hyper-Competition)’이란 말이 의미하듯, 질적 차이(質的 差異)를 이뤄 내야만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붕괴시켜 버려야만 한다. 이미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산업, 사업, 지식, 경험, 혁신, 사고 등 모든 면에서 경계는 파괴되고 있다. 과거처럼 많이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에 숭배해 오던 효용성도 더는 우선순위가 되기도 어렵게 됐다. 모든 면에서 명실상부하게 20세기식 성취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술력 측면을 살펴보아도 이 점은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기술력 면에서도 선진국 대비 70% 내외 수준으로 R&D 재창출 기반 및 표준화 주도력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된다. 주요 수출품도 핵심부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구체적 예를 들어 보자.
반도체는 매출의 12%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지불하고 있고, 일본 기업에는 투자비의 70%를 지불하고 있다. LCD 핵심 원료인 액정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 쓰고 있다. 또, 휴대전화 부품도 56%를 수입해 다 쓰고 있다. 카메라폰의 경우에는 부품의 70%를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하며, 산업용 로봇은 80%의 부품을 수입한다. 등장한지 너무나 오래된 PC는 여전히 매출의 10%를 IBM에 지불하고 있고, 부품의 40%를 수입한다. 지난 5년간 CDMA 단말기 업체의 로열티 지불액만 1조원이 넘는다. 3G 기술사용료로는 매출액의 5~10%를 로열티로 내고 있고, 거실마다 걸려 있는 디지털 TV는 매출액의 11%를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원천 기술, 원천 경쟁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지표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자원도 빈약해 원유, 석유가스, 유연탄, 원면, 양모를 100% 수입해 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갈 길이 멀다.
이런 압착 상태를 벗어나려면 기업은 '원천'에 집중해야만 한다. 원천이 없을 때에는 조그마한 외적 변동 요인에도 뿌리째 뽑혀 나간다. 어느 때보다 도약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쓰는 글로벌화로 기업들은 5가지 심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5가지 도전은 다음과 같다. ① 초경쟁 환경 ② 성과의 지체(Lagging) 현상, ③ 경쟁사와의 갭(Gap), ④ 성공의 덫에 빠지는 현상, ⑤ 패러다임 전환 실패와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중국의 맹추격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면, 중국은 산업 전반에서 매출뿐만 아니라 기술 측면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 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중국의 시장이 된다면 이것야말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철강회사인 바오산강철을 예로 들면 이 회사는 우리나라의 포스코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외판을 바오산철강으로부터 구입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3-4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와도 같은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은 기술 부족으로 외판을 생산하지 못했다.
2008년 말 기준 중국의 정유 및 에너지 회사인 시노펙(Sinopec)은 매출액과 자산면에서 삼성을 앞질렀다. 덩치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한중일 3국을 비교해보면, 중국은 2010년 기준 세계 태양전지 시장점유율을 32.7% 유지하며 일본(12.6%)과 한국(3.15%)을 따돌리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 개발투자비도 2008년 한 해에만 664억 달러를 투자해 우리나라(313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조선 산업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 2월 일본을 추월한 후 지난 1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해 왔으나, 2010년 이후부터는 수주량 면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는 추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인가?
이제는 근본적인 경쟁력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최근 경영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 영감, 초영역, 범람우위, 신시장 공간 같은 용어들에 대해 보다 깊은 심사숙고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목 밑까지 차오른 이전의 경쟁 방식을 버리고 차원 다른 혁신에 나서야 한다. 다른 혁신이 다른 혁신기업을 만들어 낸다. 이 말만큼 정곡을 꿰뚫는 말도 없다. 그 밥에 그 나물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경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창조 경영은 기존 시장 내의 경쟁에서 이겨서 수익을 창출하던 전통적 제로섬 게임과 같은 경쟁이 아니다. 이전의 관점을 넘어 창조적 혁신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쟁 우위를 달성하고, 경쟁사와 격차를 달리하는 것이다.
희망을 얼마든지 있다
여러 면에서 한국 기업들의 혁신 노력과 성과가 밀린다고 해서 희망이 안 보이는 건 아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012년 조사한 자료(<세계 1위 품목의 국가별 현황>)를 보면 주요 상품과 서비스 시장점유율에서 50개 품목 중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국가로 미국(19개), 일본(9개)에 이어 한국(8개)이 손꼽히고 있다. 중국(6개)은 우리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폰(삼성전자)과 박막텔레비전(삼성전자), 플라즈마 패널(삼성 SDI) 등 8개 품목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메모리 반도체와 LNG운반선, DVD홈시어터, 액정(LCD)TV, PDP, 리튬전지(2차 전지), 원유운반선 등 전자, 가전, 선박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신규 지정 일류 상품(39개 품목) 가운데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제품은 그간 우리 일류 상품들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존에 강세를 보여 왔던 로로․컨테이너 겸용선(현대미포조선),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파나시아) 등 기계 분야와, LED PSS 식각장비(맥시스)와 경편벨벳(세창상사), 항균도마(네오플램), 스탬핑 네일아트 킷(코나드) 등 수출 업종 다변화와 관련된 품목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우리의 일류 상품의 미래가 밝다는 바로미터가 되어주는 상품들도 주목을 끈다.
5년 내 세계 일류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일류 상품 가운데 기존 IT 기기의 본체와 주변 연결부를 플러그인 방식이 아닌 접촉 방식으로 바꿔주는 혁신적 제품인 비삽입 접촉식 자석커넥터(대한특수금속)나 지능형 유리창 청소로봇처럼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해 제품화한 것들이 그런 예들이다. 이는 모두 기존 시장에 뛰어들어 점유율을 높이는 경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창조한 제품들이다.[참고: 「Chief Executive 124호」 中, “글로벌 무대 누비는 한국 국가대표 제품들”, 2013]
지식경제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세계 일류 상품 634개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을 143개나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대기업 제품(67개)보다 중소․중견기업 제품(76개)이 더 많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미래나노텍과 나노엔텍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기업 3M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전문 기업 미래나노텍은 설립과 동시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LCD 광학필름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수입 대체 효과를 넘어 세계 시장 점유율을 22%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나노엔텍은 세계 최초 세포분석 장치를 개발하여 그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대 기술 수출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 수가 143개에 달하지만 물론 제품과 매출 규모면에서 아직은 작아 세계 최강의 상품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운 상품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이 143개의 도전에서부터 우리 기업들은 시작해야 한다. 이를 시발로 아직 나오지 않은 상품들, 시장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들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밀고 나갈 때 명실상부 일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희망의 근거다.
문익점이 이룩한 조선 면업이 쇠퇴한 이유는 지속혁신에의 노력이 부재했던 게 주요인이다. 우리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재의 교착 상태를 뚫고나가 새롭게 차원 다른 도약을 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새로운 혁신의 연료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창조경제, 지식경제 시대의 미래를 끌고 나갈 엔진이다.
역사적 예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혁명 시기, 산업의 연료였던 코크스는 1709년 아브라함 다비라라는 한 영국 철공소 주인에 의해서 찾아졌다. 그는 처음으로 석탄을 코크스로 바꾸며 공업적인 규모로 철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때로부터 코크스는 산업 혁명을 돌리는 연료가 됐다. 그 뒤 코크스는 공장은 물론 곳곳으로 활용도가 넓어지며 1815년까지 가정용 수도의 목관(木管)을 철관(鐵管)으로 바꾸며 철을 이용하는 현대 산업의 길을 열어젖혔다.
이처럼 하나의 혁신 결과물이나 이것이 무한 확장될 조건을 지닌 씨앗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 기업들이 해야 할 혁신의 과제다. 파급력이 큰 혁신은 경쟁사와 격차를 가져온다.
수식 1ⁿ에서 아무리 1을 무한 곱한다고 해도 1은 일 뿐이다. 하지만 이 ‘1’이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처럼 '혁신의 1'이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얼마든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이 '혁신의 1'이 우리 기업들의 도약의 단초이자, 기업 혁신에의 주역으로써 우리들이 현업에서 이룩해야 할 바이다.
*이 칼럼은 이전에 쓴 것이라 2026년 기점으로 데이터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