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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비즈니스 모델 연구: 고어&어소시에잇츠의 Core-Copycat 전략

by 전경일 2026. 10. 13.

 

Case Study1_고어&어소시에이츠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던 맬러리의 시체가 75년 만인 1999년에 발견됐다. 설산에서 엎드린 자세로 미라가 된 맬러리의 시신은 6mm의 얇은 옷을 입고 있어, 그가 처했던 극한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당시 그들은 해발 5,000m를 넘으면 산소 양이 평지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도, 폐수종을 피하려면 8,850m 등정에 성공한 뒤 죽을 힘을 다해 내려와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기능성 소재로 만든 방한복과 최첨단 장비들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한계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만일 맬러리가 오늘날 흔히 고어텍스로 통칭되는 기능성 등산복을 입고 최첨단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1953년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초등의 역사는 수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등반이 가능하게 한 아웃도어 방수투습소재 전문기업이 바로 고어&어소시에이츠(고어와 그의 동료들)이다.

 

독일 뮌헨 시내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화학섬유업체 고어앤어소시에이츠의 유럽본부가 나타난다. ‘비즈니스 리더’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이곳 총책임자 토마스 보거(Tomas Bogger)씨는 기업에 대한 자랑을 ‘작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고어-텍스(방수, 방풍의 원단)’로 더 유명한 고어사는 듀퐁사에서 일했던 화학자 빌 고어(Gore)씨 부부가 지난 58년 미국 델라웨어에 설립한 기업이다. 현재 전 세계 25개국 48개 사업장에서 6,6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매출 20억달러를 올리는 거대 다국적 업체로 성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지가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항상 속하며, 1969년 아폴로 13호의 달 탐사 때는 케이블을 공급했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보거씨는 “전 세계에 나가 있는 고어의 웬만한 기업들은 사업장마다 200명을 넘기지 않도록 조절한다”면서 “적정한 규모로 운영함으로써 모든 직원들이 회사의 상황을 공유하고 협조받을 일이 있을 때 직접 담당자에게 접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외형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오히려 생산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섬유, 전자, 의학, 산업용 소재의 4가지 분야로 구성된 고어 본사는 실제 연구 개발을 제외한 대부분 생산은 아웃소싱(외주제작)에 의존한다.

 

고어사의 특이함은 이 같은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뿐이 아니다. 보거씨의 직함은 그냥 ‘비즈니스 리더’'. 무슨 본부장이나 하는 직위도 없고, 회장이나 상무, 이사 등직급도 없다. 회사 게시판엔 ‘직위도, 직책도 없다(No ranks, No titles)’는 문구가 붙어 있다. 보거씨는 “오직 팀장(리더)과 팀원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수평적이고 자유스런 조직 문화는 사규(社規)가 없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회사 이름을 ‘고어와 그의 동료들’이라고 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고어사가 무조건적인 자유나 수평적 사고를 원하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담당 세레나는 “원하는 사람에게만 팀장이나 팀원의 역할을 맡기고 원하지 않는 사람에겐 절대 일을 맡기지 않는다”며 “일단 자신의 일을 맡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롭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다가 큰일을 당한다. ‘공정함(Fairness)’과 ‘평등(equality)’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고어사의 문화는 4가지 경영 원칙에 잘 드러난다.

◆ 매 순간 자신의 업무를 자신이 정하고 진행할 것(COMMITMENT)

◆ 고객과 동료 직원에게 공정할 것(FAIRNESS)

◆ 새로운 도전과 경험에 대한 기회는 보장할 것(FREEDOM)

◆ 피해가 예상되는 심각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동료들이나 팀장과 상의 할 것(WATERLINE) 등이다.

 

고어사에서 유럽본부의 위치는 남다르다. 유럽본부는 고어사가 차세대 핵심산업으로 주력하고 있는 ‘윈드 스토퍼 소프트 셸(Wind stopper Soft shell)’의 마케팅 및 연구 개발 사령부이다. 이 제품은, 바람은 막고 습기(땀)는 통과시키면서도 디자인 기능을 대폭 강화한 스포츠, 레저용 원단이다.

 

고어사는 가장 큰 특징은 엄격한 품질관리다. 고어사는 원단을 만드는 업체다. 실제 소비자가 입는 옷은 고어에서 나온 원단으로 의류업체들이 가공한 것이므로 굳이 옷의 품질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고어사는 다르다. 마치 IT업체인 인텔사가 자신의 CPU(중앙연산처리장치)제품을 팔면서 컴퓨터 완제품마다 ‘인텔 인사이드’란 문구를 집어넣듯이, 고어 역시 원단업체이면서도 의류에다 ‘고어-텍스’란 마크를 붙인다. 고어-텍스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반드시 완제품이 나오면 고어에서 다시 인증을 받아야 ‘고어-텍스’란 마크를 쓸 수 있다.

 

세레나씨는 “우리는 항상 최종 소비자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등산복, 등산화, 스키복 등 다양한 아웃도어 용품에 부착된 고어텍스는 알고보면 제품이나 브랜드 명이 아니라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스판덱스와 같은 원단의 이름이다. 다만 뛰어난 방수투습 기능을 갖도록 특별히 고안된 기능성 소재라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면 전 세계 기능성 원단 시장을 석권한 이 회사의 시원은 어떻게 될까?

 

고어텍스의 역사는 1957년 빌 윌리엄 고어(Bill William Gore)에 의해 시작된다. 당시 미국 듀폰사의 연구원이던 빌 고어는 불소수지막 PTFE(Polytraflore Ethylene)의 용도를 찾아내는 연구를 하던 중 이 물질이 전선의 피막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낸다. 그는 곧바로 상사에게 보고하였으나 상사가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자 1958년 아내 비브 고어(Vieve Gore)와 함께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연구를 지속하며 창업을 하게 된다.

 

빌 고어는 고어사(W.L.Gore & Associates, Inc.) 설립 이후 처음으로 PTFE를 이용한 절연전선 Wire과 케이블 제품을 출시하였고,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이듬해인 1969년 달에 착륙한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전선 제조에 참여하게 된다.

 

같은 해 빌 고어의 아들 밥 고어에 의해 PTFE를 팽창시켜 의류, 신발 등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놀라운 성질을 가진 최첨단 물질 expended-PTFE가 개발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능성 소재 고어텍스의 실질적 효시이다.

 

고어텍스는 기존 방수 방풍 원단에 사용하던 고무 코팅 대신 불소수지막 e-PTFE를 얇게 붙여 투습기능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수분흡수는 차단하고, 몸에서 발생한 땀은 쉽게 밖으로 내보낸다.

 

이런 특별한 기능의 비밀은 고어텍스의 얇고 하얀 막 멤브레인(Membrane)을 구성하는 e-PTFE에 있다. 이 물질은 1평방 인치당 90억 개 이상의 미세한 기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공 하나의 크기는 0.2미크론이다.

방울 입자보다는 5천~2만 배 이상 작고 수증기 분자보다는 700배 이상이나 커서 물방울 입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아주고 수증기는 밖으로 쉽게 배출시키는 원리다. 이런 원리에 의해 고어텍스는 비나 눈에 잘 젖지 않으며 운동이나 산행 시 몸에서 땀이 나더라도 밖으로 잘 빠져나가 쾌적한 상태를 유지시켜 주게 된다.

 

고어텍스는 접합방식에 따라 크게 2레이어(2-Layer)와 3레이어(3-Layer) 제품이 있는데, 최근에는 겉감 + 고기능 non-waven fabric + 고어텍스 멤브레인 + 니트 안감으로 구성된 4레이어(4-Layer) 제품도 출시된다.

 

2, 3, 4레이어 고어텍스는 근본적인 투습방수 기능에 있어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고어텍스 멤브레인에 겉감만 붙인 2레이어 고어텍스는 일반 등산복과 스키복 등에 주로 이용되며, 멤브레인 안쪽에 안감을 덧댄 3레이어 제품은 약간 무겁고 둔하지만 내구성이 뛰어나 전문 산악용 제품에 많이 쓰인다. 견고함을 더욱 보강한 4레이어 고어텍스는 등산화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제조 과정에서 원단을 비교해보면 쉽게 몇 레이어인지 구별이 가능하지만 완제품으로 2, 3, 4레이어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보통 고어텍스 재킷의 경우 2레이어를 사용할 땐 얇은 나일론 안감을 사용하고, 3레이어는 안감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 완제품의 두께는 비슷하다. 더구나 덧대는 안감이나 겉감의 소재에 의해 경우에 따라서는 2레이어 제품이 3레이어 제품보다 더 두꺼울 수도 있다. 보통 3레이어가 2레이어보다 조금 더 무겁고 비싸다.

 

등산용품 등 아웃도어 제품으로 알려졌지만 고어텍스의 출발은 원래 산업용 소재였다. 개발될 당시 고어사의 첫 제품도 절연전선과 케이블이었으며 고어텍스 원단이 처음 개발된 것도 1976년의 일이다. 1981년 NASA의 콜롬비아호 우주복에 고어텍스가 사용되면서 점차 군복과 등산복, 아웃도어, 레저용 의류에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고어텍스는 의료용으로도 이용된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의료용 고어텍스는 인체의 세포조직이 고어텍스의 기공 속에 들어가 완전히 일치되기 때문에 생체의 거부반응이 거의 없어 현존하는 인공혈관의 소재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인공심장의 판막, 인조 뇌막 등에도 이용되고 있으며, 1990년대 들어서면서 성형외과용 수술에 특히 많이 활용된다. 주로 코를 높이거나 가슴확대 수술, 무턱 수술 등에 사용되는데 조직적합성이 좋아 실리콘에서 볼 수 있는 과민반응 등의 문제점이 적다.

 

그 이외에도 고어텍스는 전자, 화학 분야에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 치실, 기타줄, 연료전지의 원료, 휴대폰 제조에까지 쓰인다. 고어텍스가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섬유 분야. 등산, 레저, 스포츠, 여행 등 아웃도어 시장은 기능성 소재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고어텍스가 새롭게 진출하고 있는 분야는 기능성을 살리면서도 일상생활에 침투하는 것이다. 요즘 등산복이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에전엔 시장이 아니었던 곳이 거대 시장으로 변모했다. 최근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버버리, 프라다, 휴고보스 등이 앞장서 고어텍스 소재의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제일모직, 금강제화, FnC코오롱 등 국내 브랜드에서도 고어텍스를 소재로 한 정장, 캐주얼화 등이 생산되고 있다.

©전경일/인문경영연구소/강의문의: humanity@kinds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