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지(李純之)씨의 경우]
이순지는 문과에 급제한 양반 집안의 준재로 앞길이 보장된 인재였다. 그런 그에게 세종은 중인 계급에서나 하는 학문인 산학(算學) -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고급수학ㆍ통계학 등을 말한다. - 을 연구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가 보여준 수학적 재능은 그에게 천문과 역법을 맡기기에 충분했다. 당사자로서는 자신의 신분보다 낮은 일을 맡으라는 지시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순지는 선뜻 세종의 뜻을 따랐다. 15세기 최고의 천문학자 이순지는 이렇게 탄생한다.
세종의 용인술의 핵심은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배치한다’는 것이었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반드시 후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인재는 모이고, 자라나며, 아낌없이 능력을 드러낸다. 세종의 인재 육성책은 바로 이같은 식이었다. 만일 세종이 이순지를 일반 업무에 종사케 했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도 없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조선 최고의 수학자로써 역사 속에 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인물의 능력과 경력관리를 병행해서 추진한 세종은 가히 그 시대 최고의 인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인재는 물과 같다. 땅속으로 스미거나, 땅 밖으로 넘치거나]
어느 시대나 인재는 있다. 하지만 인재는 끌어 올리지 않으면 땅속으로 스며 버리는 물과 같다. 아니면, 바다를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냇물을 이루거나, 갇혀 버린 호수의 물이 되어 버린다. ‘샘이 깊은 물’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이 얘기는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재들이 고일 수 있는 ‘우물’을 제대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세종은 그런 차원에서 집현전을 운영했고, 임용시험제도를 실시했으며, 특별 발굴ㆍ추천제도를 마련해 지방 수령에 대한 상시 면접을 통해 인재 발굴을 실시했다. 다시 말해, 다각도로 인재 발굴을 위해 ‘우물’을 만드는데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혁신적인 인재 등용 정책을 실시하라]
그의 인재 등용 정책은 실로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혁신은 어느 시대나 저항과 만나게 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왕이라해도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선발과 대우는 신생 조선을 정해진 시간 내에 목표지점까지 도달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처였다. 그리고 세종은 그러한 ‘인재 풀(Pool)’의 일원이 되어 함께 땀을 적셨다.
CEO의 이러한 모범적인 행동에 신하들은 사명감으로 불탔고, 세종은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으로 두뇌강국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국가 경영의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났다.
[패러다임 전환기의 인재관]
세종이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치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CEO로서 세종 자신의 지도력과 결단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밖에도 고려할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조선 창업이 기정사실화 되자 초기에 참여를 거부했던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들어 국가 경영권이 안정을 찾게 되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또한 온갖 과학 기술과 제도 혁신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대되어 국가 재정이 넉넉해 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고려 말로부터 유학 등의 학문의 발전이 사고의 틀, 혁신의 틀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신생 조선으로써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칭찬과 보상 체계를 갖춤으로써 그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도록 하는 인사 정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사 정책은 세종의 취임 년도부터 마지막 재임 년도까지 시종 일관되게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취임 년도에, “재주와 도덕을 가지고 초야(草野)에 숨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짐을 구하지 않는 선비는 내가 장차 고문(顧問)하여 직임(職任)을 맡길 것이니, 감사가 널리 구하여 이름을 자세히 적어서 아뢸 것이다.”(『세종실록』원년 11월 3일)라고 인재 발굴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취임 3년째 되는 해의 종합 시정책에서는 “초야에 은거한 사람들 가운데 재주와 도(道)가 높은 자를 찾아 보고할 것”이 뚜렷이 명기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인재발굴에 대한 관심과 의지는 결코 줄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물이 땅속으로 스미는 것을 막으려 했고, 땅속으로 스민 인재를 널리 구하기 위해 ‘깊은 샘’을 팠던 것이다. 세종은 우리 역사상 인재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실천한 몇 안 되는 CEO 였다.
[돈 가는데 마음 간다. 보상 시스템을 갖춰라]
세종시대 과학과 IT기술의 유례없는 발전의 원동력은 그것을 헌신적으로 떠맡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관료 학자들과 과학자ㆍ엔지니어ㆍ기술자 집단이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강렬하게 불타올랐을까? 그들을 움직이는 힘의 하나는 바로 ‘보상 체계’에 있었다.
정신적 멘토는 물질적 영역의 풍요로움 마저 바르게 제시함으로써 ‘생생지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언제나 실적 없는 CEO는 힘을 쓸 수 없다. 팀원들이 배고픈 가운데, 리더십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세종은 정신적 지도자였지만, 또 한편으로 현실 세계에서 경영을 하는 국가경영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신하들에게 물질 및 정신적 지원을 통해 그들을 지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니까, 당연히 아웃풋(out put)은 커졌고, 팀원들은 그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연려실기술』에는 세종이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데 물질과 마음 모두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국가나 기업 경영에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세종 7년 10월에 양각(兩閣)을 준공하여 임금이 친히 내감에 가서 두루 보고 이르기를, ‘기특하다. 훌륭한 장영실이 귀중한 보배를 성취하였으니 그 공이 둘도 없다.’하고 천민의 신분을 벗겨 주고 승진시켜 실첨지(實僉知)(하지만 이 직책을 수여하는 것에 대신들이 극력 반대하여 세종은 태종의 지지 아래 다시 논의하여 장영실에게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座) 자리를 제수할 수 있었다. )를 제수하고 겸하여 물시계의 일을 살피게 하여 서울을 떠나지 않게 했고, 감조관(監造官) 윤사웅 등 세 사람에게 안마(鞍馬)를 하사하셨다.”
『연려실기술』에는 또 다른 일화가 나온다.
“임금이 때때로 혼자 친히 첨성대에 임하여 윤사웅에게 명하여 천도(天度)를 논하다가 술을 내려주고 파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천문관의 근로와 수고를 오늘날 목견(目見)하니 천문관에게 벼슬을 설치하여 직책을 맡기는 것은 본의가 진실로 헛되고 경한 것이 아니다.’하고 윤사웅에게 벼슬을 높여 남양(南陽)을 제수하였다. 박유신이 당번을 궐(闕)하므로 곧 명하여 옥에 가두고 여러 번 형벌을 주어 거제도로 귀양을 보냈는데 마침내 풀려 돌아오지 못하였다.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변변치 못한 벼슬아치들에게 하루 동안에 특명으로 네 큰 고을 수령의 책임을 제수하오니, 듣는 사람 중에 놀라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청컨대 빨리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고, 연일 두 번씩 아뢰었으나 허락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내 덕 없는 사람으로 참람히 임금의 자리에 올라 삼가고 부지런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늘의 꾸지람이 내렸는데, 오직 이 무리들만이 여러 날 밤낮으로 몸에서 띠를 풀지 못하고, 눈을 붙이지 못하면서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였다. 혹시 이 무리들이 아니었다면 내 결코 하늘의 천상(天象)에 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너희들이 편안히 앉아 잘 먹는 것에 비할 수 없으니, 번거롭게 방해하지 말고 빨리 이들을 부임케 하라.’고 상의언에 명하여 각각 갖옷 한 벌식을 2년마다 새로 만들어 주게 하고, 내의원에서 날마다 술 5병씩 주게 하였다.”
세종의 이러한 보상 정책은 남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을 제대로 알고 이를 실천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 했다. 그가 보여준 스킨십, 지혜의 경영, 신뢰와 위임 같은 경영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으로 그들에게 느껴졌을 것이다. 세종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았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CEO라는 것은 덕(德)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신하들의 마음속에 CEO의 분신이 되고자 하는 열의를 불어 일으킬 수 있는 진정한 CEO란 세상에 실로 드물기 마련이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자기 스스로 겸허히 하고 낮추어라. 경영의 일선에서 뛰던 선배들의 고견을 경청하라.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당신이 그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다. 그러면 지혜는 저절로 모인다.
* 자신의 차별화 요인으로 반드시 ‘인(仁)’과 ‘덕(德)’을 쌓아라. 스스로 몸에 밴 자질과 철학은 그대로 드러나 당신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 줄 것이다.
* 잠재력을 가진 ‘HPI’를 육성하라. ‘핵심 인재’가 나라와 기업을 먹여 살린다.
* CEO 스스로 자신의 조직에 대해 미션과 오블리게이션 그리고 보상체계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들을 ‘청취자’ 이상으로 만들어 내라. 그것이 CEO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인재들과 ‘같은 시대에 함께 태어난 것’을 감사해 한 적이 있는가? 만일, 그런 적이 없다면 이제 당신은 스스로 인재가 되어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당신은 이 시대에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욱 고민해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이 이 시대에 태어난 이유이다.
* 인사 정책의 원칙은 세종시대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공정성과 도덕성, 합리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 나갈 때 인재는 ‘사라지지’ 않으며, 새로운 인재가 당신 주위로 몰려든다.
* CEO의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와 균형감이 인재를 더 큰 인재로 만든다. 인재는 인재를 보고 온다. 그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후원하라.
* 여기 하나의 공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제너널리스트(generalist) = 멀티형 인재’라는 것이다.
* ‘용인(用人)’은 실제 ‘손에 칼을 쥐는 것이다.’ 늘, 사람이 복이고, 화근이다. 잘 써라. 그래야 당신은 그 사람을 통해 복을 불러들일 수 있다.
* ‘경영권’은 그것을 ‘승계’할만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 만일, 이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경영권을 제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팽개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때론, ‘왕재(王才)’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 ‘인재관리ㆍ육성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라. 오직 ‘사람’뿐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그들이 당신 사업의 ‘접점’이 되고, 당신의 목표에 빗나가지 않도록 해 준다.
* 위상재인((爲商在人). “사업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 CEO는 인재를 육성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인재를 더 큰 인재로 육성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CEO의 인재관이어야 한다.
* 인사 정책의 원칙은 능력주의와 개방주의다. 이와 같이 열린 인사 정책이 인재를 부른다.
* 한 사람의 인재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라. 그를 발탁 승진시키는 이유는 실로 작은 대가로 천하를 얻는 것이다.
* 인재를 끝까지 지켜주어라. 그러면 그는 반드시 보답한다. 그것이 당신의 인사 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으면서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보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만일, 당신이 이 일에 소홀하다면, 그들은 결국 기다리다 못해 떠나갈 것이다.
*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배치할 수만 있다면, 인사 정책의 대부분은 이루어진 셈이다. ‘가능성(potential)’은 그가 하고 싶은 일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 인재가 고일 수 있는 ‘우물’을 만들라. 그것이 바로 당신의 조직이 지향하는 바이어야 한다. 필요하다 싶으면 각기 다른 우물을 파서 그들을 모으라. 그들이 한 번 ‘다른 우물’로 들어가면, 주변의 우물들은 삼투작용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 초야(草野)에도 인재는 있다. 그들을 널리 구하라. 가까이서 움직이는 자들은 많은 경우 그리 뜻이 깊지 못한 경우가 많다. 깊은 뜻을 가진 자가 천하를 돕는다.
*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데 물질과 마음 모두를 활용하라. 마음이 있어도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에 매여 있다. 얻어야 할 인물인지, 버려야 할 인물인지, 그 것을 알라.
*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CEO의 분신이 되고자 하는 열의를 불어 일으키도록 노력하라. 만일 이 일에 성공한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성공한 CE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