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취임 초에 집현전을 세우고 집현전 소속 멤버들을 특별 우대한 것은 학문 자체의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CEO의 수족이 될만한 세력을 키운다는 목적도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베스트 오브 베스트 멤버 10은 최상의 방식으로 선발된 핵심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학술 활동을 통해 CEO가 어떤 사안에 대해 해결방안을 물으면 이를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조사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야말로 가히 측근 브레인 집단이었다. 더불어 이들은 CEO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보활동 및 참고 활동 - ‘비고문(備顧問)’이라 불림. - 도 더불어 수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 고려의 옛 제도에 대한 벤치마킹은 매우 중요했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조선에 맞는 형식’으로 재창조되어 적용되었다. 이러한 벤치마킹은 조선 나름의 우수한 제도와 문물을 새로이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세종시대의 황금문화는 바로 이러한 아웃소싱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고려의 여러 제도와 중국의 고제(古制), 명나라의 시왕지제(時王之制)에 대한 연구는 조선의 각종 제도의 고유한 이름과 기능을 새로 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경학ㆍ사학ㆍ과학ㆍ음악ㆍ의학ㆍ문자학ㆍ음운학 등 각 분야의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결과에 조급해 하지 마라]
이러한 특별 팀을 육성하면서도 세종은 팀 활동에 대한 결과물을 일찍 보고자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시급했지만, 그는 팀을 강화하는 데 오히려 집중했다. 목표는 분명했고, 시간은 부족했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를 이루고자 했다. 10년 연구에 10년 응용의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마침내 이를 달성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세종의 모든 업적은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얻은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서적으로 편찬해 후대의 귀감이 되도록 했다.
이는 CEO 스스로 국가 경영의 각종 프로젝트를 운용하는 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은 당대의 업적으로 자리 매김 되기보다는 후세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과로 프로젝트들이 남게 하고 싶었다. 조급증에 빠져 일을 그르치지 않는 장기적인 안목과 대처 방안 만큼이나 훌륭했던 것은 그가 일을 추진하면서 속도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엔 ‘개혁 피로감’ 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기존 세력의 저항을 흡수하라]
세종은 집현전이라는 싱크 탱크를 만들어 젊은 인재를 등용하면서도 공식 루트인 관료들의 언로를 적절히 열어두었다. 새로운 이슈와 인물을 동원해 새로운 일을 만들되 기존 세력을 지나치게 위협하지 않았다. 이 점은 국가 CEO로써 세종의 조직 관리 능력에 해당된다.
그는 태종이 쓰던 신하들을 집현전의 상위에, 자신이 뽑은 인재들은 집현전의 하위에 두었다. 이것은 신ㆍ구 세력간의 균형 및 권력 이동기의 완충 작용을 위한 세종의 인사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세종은 처음에는 육조직계제(六曹職階制)를 실시하여 의정부 대신들의 권한을 낮추어 놓았으며, 세종 18년 이후에는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실시하여 의정부 대신들의 권한을 높이는 듯 하였으나, 실제 이것은 페인팅 모션에 불과했고, 이때부터는 그는 자신이 길러낸 집현전 출신의 관료들이 의정부 대신들을 견제하는 기능을 맡게 하여 실제로 대신들의 권한이 그리 세지 않았다. 세종 때의 명재상으로 불리는 황희ㆍ허조ㆍ맹사성 등은 덕망은 크지만 재상으로서 강력한 실권을 행사한 일이 없었다. 즉, 명예와 그에 따른 보상은 분명하고 넉넉하게 해 주되 국가 경영권에 누가되는 일은 애당초 범하지 못하도록 세종은 이의 방지책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ㆍ구 세력을 적절히 배합한 세종의 인사 정책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가 지향하는 ‘새로운 조선’에 맞는 개혁을 추진하되 완급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꾼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저항을 흡수하는 가장 최선의 방식을 세종은 찾아 취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시간을 두고 세대간 자연스러운 교체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완전히 굳히고자 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전임 CEO의 손발을 묶지 않는 가운데, 전임 CEO의 사람들을 예우하면서도, 서서히 자기 사람으로 채워가는, 그리하여 나중에는 자신의 인물로 하여금 국사를 책임지게 하는 방식을 세종은 취했던 것이다. 이런 전략 속에서 기존 세력들의 저항은 유야무야되었고, 세종의 개혁은 궁극적으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세종은 알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자극 받으며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 CEO인 자신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잡지 않는 한, 누구도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세종은 저항을 흡수해 나가는 방식으로 국가 경영상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대처해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숨어 있는 힘’에 당해낼 재간이란 아무도 없다. 언제나 끈기와 인내는 천하를 얻으려는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심성이 세종을 남다른 역사 속의 CEO로 만들어 주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경영상의 현안 문제에 대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청취하라. 그들은 반드시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보다 적어도 한 두 가지 정도는 더 알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들로부터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문제의 해결책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잃게 될 것이다.
* 팀원들이 강한 자부심이 들도록 하라. 그들에게 CEO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그 점을 알게 하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움직여라.
* 크게 쓸 재목들은 ‘현재’보다 ‘가능성ㆍ잠재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당신이 인재를 ‘써야 할’ 바로 ‘그 때’를 알고 장기적으로 육성하라. 그날은 그리 멀지 않다.
* 당신의 브레인 집단, 행동의 전위대가 될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멤버를 키워라. 그들은 당신을 위해 반드시 뭔가 큰일을 해 낼 것이다.
* 조직 운영은 하나의 작은 성공적인 문화가 광범위한 범위로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엔 반드시 협동과 상호책임의 의식이 함께 한다. 그것은 조직의 ‘정체성(identity)’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 필요시 ‘특별한 명령’을 내려라. 누가 거기에 부응하는지를 알 때, 당신은 당신이 해 온 일의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 인재를 모아 훈련시키는 데에는 실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이를 방기한다면, 당신은 결코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할 것이다.
* CEO와 직원들 간에 ‘믿음의 환경’을 조성하라. 그 때, 당신은 뭔가 긍정적인 시그널이 뻗쳐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 매일매일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활력을 가지고 직원들이 출근하도록 하라. 조직의 앞날은 바로 이것에 달려있다.
* 평생 동안 각고의 노력을 통해야만 이룩할 수 있는 ‘큰 일’을 기획하고, 천천히 진행시켜 나가라. 그것이 끝내 뭔가 대단한 일을 만들어 줄 것이다.
* 결과에 조급해 하지 마라. 뜸이 들지 않은 것을 ‘ 다 익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팀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라.
* 개혁의 속도감을 잃지 말라. 불규칙한 속도는 오히려 더 큰 피로감을 가져온다.
* 기존 세력의 저항을 흡수해 가면서 개혁에 성공하라. ‘물갈이’는 서서히 이루어 져야 잡음이 없다. 그러나 현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당신이 만일 모든 자리를 ‘내 사람’으로 채우려고 든다면, 당신은 가장 골치 아픈 ‘권력 집단’을 내부에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그들의 지나친 충성은 결국 당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 전임 CEO와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하지 마라. 이 말은 많은 비용(cost)를 들여가며 ‘전관예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를 보내면서 마음까지 다 저버리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세상을 경영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그는 이미 물러났고, 이제 당신은 자신의 역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
*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한다면 당신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의 성공과 당신의 탁월함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남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당신의 능력이어야 한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