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플레이를 하라]
세종은 일이 되도록 하는데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에게서는 국가 CEO라고 해서 강압적인 측면을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자신과 남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릇 역사상 ‘경계’를 뛰어 넘지 못하는 CEO들이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었다. 세종의 이같은 측면은 역사상 다른 CEO들과 비교해 분명 차별화의 요소다. 세종은 개인과 팀을 구분해 접근하되, 그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한 조직 운영 및 정책상의 배려를 각별히 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유일한 개인 개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가 ‘천민(賤民)’을 ‘천민(天民)’이라 한 것도, 각 두뇌집단에 소속된 멤버들에 대한 경력 관리를 개인의 특성에 맞게 실시한 것도 모두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개인성ㆍ개인차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구나 ‘공동작업’의 형태로 진행되는 국가 경영상의 업무에 대해 그는 팀원들에 대한 인식과 배려를 통해 팀웍 향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명확하고 동시에 광범위한 계획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도록 실행의 방식을 설계해 놓고, 이를 작동시켰다. 그가 팀원들에게 강하게 주문한 것도 바로 팀웍이었다. 예컨대, 부서간 의견 조정과 수렴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황희와 맹사성으로 하여금 통합 보고케 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팀의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그는 실제로 조심스럽게 보고받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과학적 인사관리 시스템이 팀웍 향상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그의 팀웍 배양의 방식은 팀 자체의 목표관리뿐만 아니라, 팀원 개개인에 대한 성향과 능력 평가를 통해 과학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의 도입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세종 인사 정책의 특징의 하나로 신생 조선의 혁신을 주도하게 한 강한 제도적 배경이 되었다.
그리하여 각 프로젝트들은 팀웍의 산물이었다. 강력한 R&D 분야의 이론과 실무,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바로 이러한 각 팀원들의 팀웍을 반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R&D분야는 장영실만을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로는 이론과 프로젝트의 방향을 지도한 정인지 등이 있었고, 실무 팀원들로는 각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개발자들이 대수 포진해 있었다. 「훈민정음 TFT」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이론 체계화 그룹 - 실무 그룹- 장인 그룹이 의미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개인기뿐만 아니라, 팀 속에서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소화해 냈다. 이러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최상의 팀 멤버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강희맹ㆍ강희안ㆍ권채ㆍ김담ㆍ김빈ㆍ김수온ㆍ노사신ㆍ박서생ㆍ서거정ㆍ성임ㆍ신숙주ㆍ신석조ㆍ신장ㆍ양성지ㆍ유성원ㆍ유효통ㆍ윤회ㆍ이순지ㆍ이예ㆍ정인지 등. (무순)
그렇다면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들은 그 당시 국가 경영이 필요로 하는 다방면의 학문에 정통한 준재형 멀티 플레이어들이었다. 예를 들어, 신숙주는 경서와 역사책을 한 번 읽으면 다 기억해 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세종 20년(1438년)처음으로 시(詩)와 부(賦)로 치르는 시험에서 수석 합격을 했다. 그는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중국어ㆍ일본어 등에 능통하였으며, 외교가ㆍ시인ㆍ정치가 및 국방 전략가 등의 임무를 두루두루 수행했다. 이처럼 팀원들 각자의 개인기는 탁월한 CEO를 만나 환상적인 팀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눈빛만 봐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안다]
CEO와의 이러한 ‘교감’은 실로 강력한 인터페이스였다. 그들은 여러 번에 걸쳐 매우 험난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해 오면서 공통되는 점을 상대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을 해 오며 서로가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는 끈끈한 ‘팀웍의 경지’였다.「훈민정음」창제에 대해 정인지가『해례』에서 서술한 세종의 마음은『칠정산』편찬시 세종이 정인지에게 이르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두 사람 모두 우리 민족 문화의 창조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CEO와 그를 보좌하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정인지 사이의 강한 인간적 구속력을 의미했다. 그것은 비단 정인지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CEO의 외투가 자신의 몸에 둘러진 것을 발견한 ‘그날 아침의 신숙주’ 또한 조회와 경연에서 CEO의 얼굴을 보고는 스스로 말 못할 감동에 젖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로 CEO와 신하들간의 만남은 세종의 ‘심금을 울리는 경영의 정수’를 엿보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까이 있어도 너가 그립다]
이처럼 정책 집행자와 그것을 실행하는 고급 두뇌 집단간의 협동 체제는 그대로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아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학문과 과학 기술에 특출한 재능과 남다른 열정을 가진 조선의 CEO 세종과 뜻을 함께 하고 최대한의 충성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 측근 멤버들은 바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강한 유대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간의 관계는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처럼 CEO 세종에게서 풍기는 강한 인간적 매력과 합리적 경영 스타일은 조정 내 창조적 분위기를 이끌어 냈으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은 CEO 앞에서 ‘술수와 음모’는 수준 낮은 저급한 행동이었으므로, 세종시대에는 결코 발붙일 수 없었다.
[‘대특위(大特委)’가 맡아서 이를 실행하라]
세종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이른바, ‘도감(都監)’이라 불리는 ‘대역사특별위원회(大役事特別委員會)’를 조직해, 국가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토록 지시했다. 이러한 위원회가 중심이 돼서 수행한 일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각종 토목건축 사업
* 도성의 성곽 수축 공사 - 세종 3년(1421년)
* 혼천의 제작 사업 -세종 4년(1422년)
* 대규모 천문대인 대간의대(大簡儀臺) 설립 사업 - 세종 14년(1432년) 등
일례로 도성 성곽 수축 공사는 도성수축도감(都城修築都監)을 만들어 우의정을 총책임자(都提調)로 삼고, 33명의 제조(提調)와 190명의 감역관(監役官)으로 구성되었고, 동원된 인원만 30만 명에 달한 초대형 사업이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정인지ㆍ정초들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ㆍ장영실 등의 그 제작을 감독하였다.”고 해 체계적인 조사와 실제적인 제작 기술을 통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팔도지리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종 6년(1424년)에 변계량이 왕명을 받아 착수한 이 과제는 8년 만인 세종 14년(1432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결실을 보았다. 공식기록에 나타나는 인물만 보더라도 맹사성ㆍ권진ㆍ윤회ㆍ신장 등이 참여했을 정도로 강력한 팀이 구성됐다.
또한, 『의방유취』 사업에서는 김예몽ㆍ유성원ㆍ민보화 등이 1차 기초 자료 수집 및 부문별 정리 요약에 관한 일을 맡아 수행했고, 그 업적을 토대로 하여 김민ㆍ신석조ㆍ이예ㆍ김수온 등이 중심이 되어 의관 전순의ㆍ최윤ㆍ김유지 등이 실무자로 편집에 참여했다. 또한 안평대군ㆍ이용ㆍ이사철ㆍ이사순 등은 감독관으로, 최종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의학자인 노중례가 총책임자로서 감수했다.
이러한 특별위원회는 국가적 역량을 모아 국책 프로젝트를 실행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책 프로젝트를 통해 오늘날 배울 수 있는 세종의 경영 기법은 무엇인가? 그 당시 국책 과제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1. CEO의 뛰어난 학식과 확고한 열정이 밑받침이 되었다.
2. 각계의 권위 있는 학자들의 조언과 지식을 프로젝트 수행의 지적 기반으로 삼았다.
3.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진행해 나갔다.
4. 싱크 탱크인 집현전의 젊은 인재들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5. CEO가 과제를 부여했고, 더불어 같이 연구했다.
6. CEO특명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7. 반드시 토론과 이를 통한 대안 마련이 있었다.
8. 결과는 반드시 피드백 되었다.
9. 모든 일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위민(爲民)’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이와 같은 원칙과 과정을 통해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들은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기업 경영에도 반드시 요구되는 CEO의 경영 요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당신이 기업 경영을 한다면, 현장의 관리자ㆍ판매 사원과 자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업무 지시를 하라. 그가 바로 고객과 만나는 ‘근민지관(近民之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라. 그가 잘못하면 고객은 두 말 없이 떠난다.
* 실무자에게 소신껏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라. 나아가 다른 한편으로 이를 감독하라. 만일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당신이 바라는 결과는 산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 기업 내 공식적인 루트와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라. ‘크로스 체크(cross check)’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 운영이 혼란과 반목 그리고 또 다른 ‘권력’을 낳게 해서는 안 된다.
* 전문성이 강한 장기 근속자를 쉽게 버리지 말라. 그들의 헌신으로 오늘 당신의 기업은 있다. 또 그들은 많은 경우, 조직 내 긍정적인 역사를 심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경영의 성공 여부는 인사에 달려 있다. 이는 세종시대나 지금이나 결코 변함없다.
* 모든 도전에 대응한 팀이나 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 CEO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조직에 대해 생각하고, 그 효율성을 실현해 내는 것이다.
* 열린 자세와 토론의 문화를 정착시켜라. 이는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며, 동시에 당신의 성품이 그 모든 장애를 극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CEO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고, 이를 개선시켜라. 개선이나 개혁은 천국에서 조차 단골 매뉴다.
* CEO는 팀원들이 스스로 자신이 변하는 것을 보게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그들이 당신을 협력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당신의 경영의 진수를 펼쳐 보이게 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을 유일한 ‘개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라. 이러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 팀웍을 향상 시킨다.
* 팀원 개개인에 대한 성향과 능력 평가를 통해 과학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라. 이것이 제도로 정착되면, 인사 관리는 효율성과 투명성을 얻게 된다.
* 조직 내 ‘교감’을 가장 강력한 인터페이스로 발전시켜라. 서로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
* CEO에게서 풍기는 강한 인간적 매력과 합리적 경영 스타일이 조직 내 창조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라. 그것이 당신의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날마다 ‘살맛나게’ 해 줄 것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