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때, ‘꽃이 핀다’는 말을 하게 된다. 세종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극적인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표현이다. 세종시대에는 어느 분야에서건 그야말로 ‘꽃 피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종 정부에 참여한 수많은 인재들로부터 그 아래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는 그야말로 국가경제와 정신ㆍ문화 등 모든 면에서 대 르네상스를 맞은 시기였다.
‘변화에 대한 통찰 +행동 =창조적 경영’의 법칙
그렇다면 세종시대의 이러한 창조적 원천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견해와 통찰력을 갖고 자신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세종에 의해 제시되고 주도되었다. 나아가 그의 탁월한 경영 능력과 감각이 빛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대가 거대한 변화에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세종 또한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전임자들로부터 별로 계승할게 없었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그의 업적을 돋보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사실 전임 CEO인 태종이 어떤 식으로든 ‘국가 경영권’을 확실하게 마무리 져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세종은 더 이상 국가경영의 안정성을 염려하는 일 따위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는 보다 창조적인 일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세종은 이렇듯 변화하는 여건에서 국가 경영에 끊임없이 자기 창조성을 실험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실 세종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알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것을 의미한다. ‘시대’를 알고, 그에 맞는 자기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CEO로서 세종의 탁월함이다. 이렇듯 경영자의 ‘탁월함’은 가장 상식적이며, 보통의 평범한 일 속에서 비범함을 실현해 내는 것이다.
그는 결코 뒷짐 지고 있지 않았다. 실로 대단한 실험가였고, 혁신 주도자였으며, 멘토였다. 경영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인 변화하는 환경에서 얻어지는 자료들은 세종에게 실로 새롭고 놀라운 국가 경영의 아이디어들을 보여 주었고, 그러한 ‘발견’으로 인해 세종시대는 활력에 넘쳐날 수 있었다.
CEO의 ‘환경 적응력’이 ‘냉철한 판단력’과 ‘민주적 원칙’을 만날 때
세종은 적응력과 판단력이 매우 뛰어난 경영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맞춰 신생 조선을 업-그래이드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전임 CEO들로부터 받은 사고의 틀조차도 완전히 새롭게 혁신해 내는 것이었다. 신생 조선이 동북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변화하는 방법 밖에 없었고, 변화하려면 CEO부터 세상을 다시 제대로 보아야 했다. 바로 그러한 원칙을 15세기에 세종은 신생 조선을 경영하는데 그대로 적용해 나갔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예지적 힘은 민주적 절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묻고, 심지어는 현재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고, 해답을 찾고자 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지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생 조선의 조직적 목표를 진작시키는데 강력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업무 수행 방식은 일방적 지시가 아닌, - ‘일방적 지시’로 보이는 게 있다면, 그것은 세종 자신이 가장 철저하게 연구했고, 이미 답을 얻어 실행하는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참여 속의 권위를 내재한 보다 수준 높은 경영 방식이었다.
나는 복사(copy)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종은 실로 창조할 줄 알았다. 단순한 계승이나 카피(copy)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새롭게 만들어 낼 줄 알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종은 삼국과 고려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토착 문화를 외래문화와 융합시켜 새로운 독자적인 한국문화를 낳게 했다. 당시 우리의 문화는 토착 문화와 당나라의 귀족문화 그리고 원나라의 세계문화 등 세 갈래 문화를 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는 사실 고려 말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을 받아들인 후로 통합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때는 또한 주자학이 들어온 지 대략 150년이 지난 시점으로, 문화적 조종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를 한국화 할 수 있는 CEO의 문화적 소양과 능력은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이것을 문화의 전도사, 비전의 창조자인 세종은 방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신생 조선’을 새롭게 태어나겠금 하고자 했다. 만일 세종이 조선을 업-그래이드 시키는데 실패한다면, 조선은 고려로 회귀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창업’의 의미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런 복잡계의 시대에 세종이 취한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혁신과 창조의 경영’이었다. 그는 어디에선가 배워와 창조하였고, 창조된 것을 다시 육성하고, 이를 전파했다. 그가 수행한 어떤 프로젝트도 혼자만의 성과나, 몇 몇 특수층을 위한 성과로 국한되지 않았다.
그 시대 국가 경영의 특징의 하나인 ‘전파성’과 ‘파급력’은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 넘어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국가 경영의 모범적인 전형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그 시대의 찬란했던 인쇄ㆍ출판 등 지식기반 사회로의 이행은 바로 세종의 노력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가 추구한 국가경영의 비전이 실행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계승치 못한 과학기술
그렇다면 그렇게 찬란했던 그 시대의 과학기술은 왜 그 이후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시기 과학기술이 바로 정치의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세종 당대에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ㆍ조사의 필요성이 인지되지도 않았고, 후대 CEO들에게 이를 계승하도록 ‘시스템화’ 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의 신선함은 곧 시들해 졌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으로 남지 못했다. 더구나 신생 조선의 ‘유연한 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한 신분제도라는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모든 분야에 걸쳐 그토록 광범위하게 등장했던 천재적인 인재들은 초기 ‘생생지락(生生之樂)’의 활력소였던 유교가 숨 막히는 신분제도의 사상적 기반으로 변질되면서 압사당해, 다시는 제대로 출현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그들에게 활력이 되어 준 국가 CEO의 관심도 세종 이후의 CEO들에게선 제대로 찾아 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설사 장영실 같은 인재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신분제의 한계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은 결코 인재를 키우지 못했다. 더구나 그 시대는 지금처럼 과학으로 출세하거나, 돈을 벌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듯 신분이 고정된 사회에 사는 한, 누구도 창조적으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권력을 생산해 내는 성리학에 비해, 과학기술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초라해 중인 따위가 하는 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세종시대 과학과 IT기술, 그리고 이를 주도했던 수많은 인재들은 그렇게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CEO와 함께 사라졌다. 이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아쉬운 일로 남게 된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조직 내 창조적인 힘의 원천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견해와 통찰력에서 나온다. CEO가 탁월한 경영 능력과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접하는 ‘시대’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이것을 자신의 ‘시대’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 ‘경영권’을 확실하게 해 놓아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발목이 잡혀 자신의 에너지를 보다 창조적인 일에 쏟아 붓기 힘들 것이다.
* CEO의 역할은 ‘시대’를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CEO로서 당신의 ‘탁월성’을 드러내 준다. 이 가장 상식적이며, 평범한 일 속에 당신의 비범한 능력이 있다.
* 변화하는 환경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하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발견’하라. 그것이 조직을 ‘활력’으로 넘치게 한다.
* 직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묻고,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고 해답을 찾고자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라. 그것이야말로 조직적 목표를 진작시키는데 강력한 기반이 된다.
* CEO의 능력 중에 하나는 문화 조종 능력이다. 무엇이든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적 소양은 CEO의 가장 큰 능력 중에 하나이다.
* ‘혁신과 창조의 경영’은 시대를 불문하고 요구되는 경영 원칙이다. 그것이 경영의 모범과 전형을 만들어 낸다.
*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결코 신선함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며, 동시에 ‘시스템화’ 되지도 않을 것이다. 동기를 부여하라. 그것이 ‘변질’을 막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