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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20대를 위한 세상공부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신(新) 새내기론(論)

by 전경일 2009. 2. 4.


대학시절이었던가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을 나온 제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추상적이고, 철없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합니다. 80년대 혼동의 시대에 대학을 보낸 친구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그때의 구호는 이 사회가 정의롭고, 원칙이 중용되는 민주사회가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타는 목마름의 대상이자, 쟁취되어야할 목표였죠.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의 대학 풍토는 억압적 분위기였지만, 진지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어느 친구가 ‘프락치’라는 것을 알고 배신감과 낭패감을 이기지 못해 주점으로 들어서기도 했고, 가방을 뒤지는 전경들이 교문 앞에 포진해 험상궂은 눈으로 노려보던 광경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군요.

저에게는 그 무렵 하나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흑백사진처럼 바랬으나,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바로 얼마 전,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고 학교에 갔었습니다. 전경이 내 앞으로 가로막더니 가방을 뒤지는 것 아니겠어요? 녀석의 무례에 화를 내자 그가 나의 멱살을 붙잡고 골목으로 끌고 갔습니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녀석이 화이바로 내 머리통을 내려쳤습니다. ‘이 싸가지 없는 쫄다구 놈이!’ 그 순간, 그 놈을 죽도록 패주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제대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방에서라라면 넌 죽었다!’ 저는 속으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웃긴 얘기지만, 그 시절에는 전투경찰이 교내에까지 난입하며 난투극을 벌이는 일이 왕왕 벌어졌었습니다. 그래도 취직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랑 그때 학창시절을 보내고, 맞닥뜨린 전경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때론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들이 그때에는 왜 그리 살벌하기만 했었는지 그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요즘도 그런가요?) 이데올로기란 그러기에 허울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 옛날엔 나름의 치열함과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점은, 왜 내 생각이 요즘 친구들처럼 유연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대 탓인지 모르죠. 대학을 떠나고 이십여년 지나서야 민주주의는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여전히 혼란스러운 제3세계 국가를 보면 너무나 극명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죠. 다원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사회, 이런 게 민주주의의자, 21세기형 가치 아닐까요? 

다시 대학 얘기로 돌아가, 대학에 입학하며 저는 처음으로 세상이 찾고 있는 진리에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각성은 뜨거운 혈기와 만나 저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에 다가서도록 했습니다. 젊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젊음이 만일 자기 한 몸만 생각한다면 세상은 온통 보수주의와 이기주의로 가득 찰 것입니다. 진취성은 사라지고 온갖 관습과 전례만 굳고 말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는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 직장에서 마주하는 친구들이 지닌 정서와는 사뭇 다른 것이겠지요.

요즘의 신입사원들과 얘기하다보면 두 가지 상반된 면을 발견하곤 합니다. 비유하자면 한쪽은 말랑말랑한데, 다른 한쪽은 너무 무관심하거나 무지합니다. 유연성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글로벌화되어 있고, 자신을 한국이 아닌 국제사회에 포지셔닝 해 놓으려고 합니다. 선배세대들과 다른 인생과 직장의 포지셔닝 전략을 지닌 것이죠. 물론 자기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자 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신입사원이었을 때와 현격히 다릅니다.

요즘 후배들에겐 장점도 많습니다. 받아들일 줄 압니다. 세계관 때문인지 멀리 내다볼 줄 압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이다,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해외로 나갈 때 기성세대들은 외화유출이라고 낙인찍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국제화되어 있는 젊은 친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자원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멀리 갔다 와 보고, 너른 시각을 가지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투자, 꼭 필요한 투자를 한국사회는 한 셈이지요. 이제는 그런 경험을 살려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요즘 후배들을 평가할 때 아쉬운 점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이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스킬(skill)에 민감합니다. 도구, 툴(tool)을 다루는 기능적 능력은 어느 세대보다도 뛰어납니다. 마치 달인의 경지에 오른듯 합니다. 이런 기능적 재주는 업무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도 그럴법한 것이 요즘엔 대학 수업시간에도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발표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기능적 요소보다 좀 더 중요한 걸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깊이 있고 폭넓은 식견입니다. 독서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많은 신입사원들의 독서 수준을 보면 수능시험 이상이 아닌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마치 정신적으로 성장하다가 어느 선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창의적 상상력이 미흡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각 기업에 필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새로운 가치를 잉태해 내는 주물의 틀과 같은 것입니다. 회사 업무에서의 기획력, 새로운 사업모델 창출, 신규시장개척, 신제품 발명 같은 것들은 깊고 넓게 파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몇몇 사원들의 책상에 꼿혀 있는 책들을 보면,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재테크, 내집 마련, 주식투자, 자격증 준비서, CEO되기 등등 온갖 얇은 욕망의 인스턴트 해법서가 난무하고 이런 게 독서의 주종을 이룹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나름의 의미는 충분히 지니고 있죠. 미리미리 준비해서 고용 불안의 사회에 대비하자는 걸 모르는 나이도 아닙니다. 선배들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뭘할지 고민하지 말자는 주장에 동의 못할 선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긴 시간을 통해 보면,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좀 달리, 좀 멀리 내다 볼 필요가 있을 듯싶네요. 깊이를 모르고서 깊은 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얇은 시냇물에서는 고래를 키울 수 없습니다.


전공은 회사에서 익히는 실무만 못하고,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다방면의 독서는 너무 기능적인데 치우쳐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은사 중 한분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깊이 새겨두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책들만 읽는 사람과 고전부터 독서를 다져오는 친구가 있다고 치자. 후자는 적어도 3년간은 어디 가서 아는 척하며 소위 ‘요즘 대화’에 끼어들기 어렵다. 그러나 그 후 3년이 지나면 지식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요는 고전적 가치를 더 알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 불변의 고전을 접하지 않고서는 인류 문명을 꿰뚫는 지식의 보고, 상상력의 원천을 접할 수 없습니다. 가볍고 인스탄트적인 내용으로는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세익스피어는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팔리는 문화컨텐츠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류 영화와 드라마의 본류입니다. 그런 것에 관심을 더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윽한 차 맛처럼 오래갑니다.

요즘 직원들은 여러분이 직장생활의 목표로 하는 CEO들이 왜 고전을 읽고, 동서양예술사에 심취하며, 클래식 음악분야에서 전문가적 소양을 갖추고 있고, 문사철(文史哲)을 가까이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한 가지 사실만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깊은 강만이 바다에 이른다는 것을요. 

저는 얼마 전, 우리나라의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논의되는 고은선생과 황석영 선생 얘기를 꺼냈다가 사원들로부터 “그 사람은 잘 모르는데요.”라는 반응을 접하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뭘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장의 새내기들은 보다 원천적이고, 항구적인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게 오래가고, 라이프 타임 경쟁력이 됩니다. 티백처럼 계속 우려내도 차의 맛을 내는 지식, 경험을 얻고 쌓아야 합니다. 개인으로서 곧 소멸하거나 조로하지 않고 오랜 시간 번영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열린 생각과 세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위에 고전적 가치를 얹는다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이 될 것입니다. 새내기는 시간이 가면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고, 햇내기는 한해 지나면 곧 묶은 해가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그걸 아는 직원만이 훗날 원대한 리더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내면의 각성을 통해 직장생활을 단순히 스킬업하는 시기가 아닌, 인생을 완성해 가는 시기로 만들어 보세요. 틀림없이 보람 있는 삶의 시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이 글은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신입사원에게 멘토링한 내용을 책으로 썼던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20대를 위해 계속 블로그 멘토링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