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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위기관리 _레드 플래그(Red Flag)

엔론 사태, 큰 쥐의 법칙

by 전경일 2009. 2. 6.

 제10법칙: ‘조직을 송두리 채 갉아먹는’ 큰 쥐의 법칙

 -어느 조직이건 상부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행동은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층부의 도덕적 해이나, 방만한 경영, 혹은 무능과 부정 따위는 그 영향력의 크기나 비중으로 인해 터지고 나면 후폭풍조차 만만치 않다. 어떤 때에는  조직을 단숨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작은 소용돌이는 어느 불안정 상태를 만나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엔론(Enron)은 그와 같은 사례로 가장 적당한 예에 해당될 것이다. 래드 플래그의 누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 붕괴는 표면화 되고 만다.

1986년 이후, 미국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는 기존 천연가스 생산에 대한 가격 규제를 해제한다.  60년간 지속되어 온 전력 산업에서 규제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 들어 미국 전력산업은 생산과 유통 가격이 완전 자유화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천연가스의 가격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생산자나 소비자는 많은 부담을 갖게 된다. 가격 변동성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시장에 변화가 생긴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에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부담을 제거하는 은행 기능을 맡아서 시장 개척자로서 등장하는 회사가 엔론이다. 이 회사는 금융기관처럼 천연가스의 가격 변동성을 축소시킬 금융 상품에 주목한다. 아직까지는 미답의 새로운 시장이었고, 그래서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엔론은 천연가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 중개기능을 수행하면서 이에 대한 스프레드를 통해 급격히 성장해 나간다. 천연가스를 가스은행에 예금하고, 일반 소비자는 예금된 가스를 대출받는 대출자 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먹혀들어간 것이다. 엔론은 이처럼 금융기관과 천연가스 회사의 혼합을 통해 장기적으로 고정가격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갔다.

성장 일로 있던 이 회사의 연혁을 한번 살펴보자.
엔론은 1985년 텍사스 휴스턴의 내추럴 가스와 네브라스카 주의 오하마에 있던 천연가스 공급업체인 인터노스의 합병으로 탄생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엔론은 천연가스 회사로 미국 내 최대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독립적인 가스개발회사로서 가스 생산에 주력했다. 2000년 매출액은 1,008억 달러(약 131조원)로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6위를 차지했다. 또한 미국 내 7위 기업으로서 에너지 분야에서 1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하였다.  닷컴이 유행하는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중후 장대형 에너지 사업에서 경박 단소형 첨단사업으로 변신하는데 또 한번 성공한다. 그런 성공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에는 e-비즈니스 업계의 기린아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더구나 구조조정의 선두주자로 주주들로부터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엔론은 한순간 거품이 꺼지듯 붕괴되고 만다. 실적부진, 분식회계 소문이 난지 불과 2개월도 안돼 1,000억 달러짜리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엔론의 파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당시의 사회상도 크게 한 몫 했다. 당시는 9.11테러로 미국 사회 전반이 뒤숭숭하기만 할 때였다. 그런 와중에 회계부정이 불거지자 여론이 급냉했고, 미국 사회는 흥분하게 된다. 국민감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수사 확대와 응징요구가 분출했다. 이로 인해 엔론의 회계를 맡았던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인 아더 앤더슨까지 한꺼번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엔론은 어떻게 해서 파산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엔론의 사업은 크게 에너지 중개, 에너지 유통, 초고속통신 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업별 매출 규모는 에너지 중개와 관련된 매출액이 대부분으로 971억 달러에 달했고, 에너지 수송 등 유통 관련된 매출액은 27억 달러, 초고속통신사업은 9억 달러의 매출을 보이고 있었다. 엔론은 2001년 3/4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전까지 주목받는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 예로 포춘지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5위에 랭크되기도 했고, 5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이자 설립자인 레이(Lay)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CEO 25인 중 한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2000년 최고의 에너지 업체로 엔론을 선정하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화려하기만 했다.

여기다가 경영을 숫자로 보기 좋아하는 경영학자들은 한술 더 떴다.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바틀렛은 “엔론의 최고경영자 스킬링과 창립자 레이는 기업가적인 행동양상과 성장엔진을 창출했다”고 치켜세웠다. 경영 컨설턴트인 하멜은 “엔론은 무한한 성장가능성이 있는 혁신적인 e-비즈니스 개념을 창출하고 있다”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이들 경영학의 주술사들에게 취한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그리하여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엔론의 주가상승률은 1,415 퍼센트로 S&P 500의 주가상승률 383 퍼센트에 비해 3.7배나 더 높게 올랐다.

하지만 열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조한 실적 발표가 나온 이후 SEC의 내부자 거래 조사, 회계장부 조작, 합병 실패 등 잇따른 악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미국 속담에 “비가 오면 몰아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되었던 것이다. 엔론은 파산보호 신청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주주는 630억 달러, 채권자는 176억 달러, 파생상품 거래 파트너는 40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만 여 명의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회사의 파산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까닭에 평생 저축한 돈을 한순간 날려 버렸다. 퇴직연금 자산의 60퍼센트 정도를 엔론 주식을 사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잘 나가던 엔론은 왜  갑자기 붕괴한 것일까?  몰락의 원인은 여러가지였다. 래드 플래그는 눈에는 잘 띠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펄럭이고 있었다. 우선, 사업다각화에 문제가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사업 구조를 재편한 엔론은 가스, 전력 등 에너지를 개발, 생산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유통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집약적 사업에서 벗어나 사업자간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는  신부가가치 사업에 더 주력했다. 이 시기 엔론이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e-비즈니스 강화와 첨단 금융기법이었다.  오프라인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년간 준비 끝에 1999년 11월 인터넷에서 에너지를 거래할 수 있는 ‘엔론 온라인(Enron Online)’이 그 무렵 출범된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당시 붐이 일던 인터넷에서 가스, 전력, 철강, 목재 등 다양한 상품거래를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론 온라인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박을 터뜨렸다. 하루 거래금액이 3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고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에너지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거래에서 재미를 본 엔론은 그 범위를 확장해 이번에는 순수 금융상품도 취급하게 된다.

이 무렵 엔론이 개발한 대표적인 상품 하나가 날씨 파생상품이었다. 날씨변화로 기업들이 입게 될 손익을 일종의 권리형태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었다. 신상품 도입 초기에는 에너지 관련 업체들이 주요수요자였지만, 나중에는 기후에 영향을 받는 모든 회사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금융기법개발을 위해 엔론은 상위 비즈니스 스쿨에서 매년 25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사업구조 재편으로 인해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매출액이 1996년 132억 달러에서 1997년 203억 달러, 1998년 313억 달러, 1999년 401억 달러, 2000년 1008억 달러로 늘어나면서 연평균 66 퍼센트의 성장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총 자산도 약 650억 달러에 이르며, 2000년 한때 엔론의 주식은 90 달러 이상을 호가했다. 물론 이 같은 신장은 나중에 회계조작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때 엔론의 매출 증가에서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점이 있다.  인터넷상의 에너지중개 플랫폼인 엔론 온라인이 설립된 이후 매출액이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매출액의 급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수익성은 급감하고 있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996년 15.7 퍼센트에서 2000년에는 8.5 퍼센트로 줄어들었다. 매출액이 급성장한 5년(1996~2000) 동안에는 자기자본이익률이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수익성이 저하된 원인은 사업다각화에 따른 투자 실패와 에너지 거래업에서의 경쟁심화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인도의 다브홀 발전소에 투자해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고, 최대고객은 전기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영국에서 추진 중인 수력 발전 사업은 당국의 요금 인하 정책으로 지진부진 했다.

게다가 해외사업의 영업마진은 1.5퍼센트로 미국 내 영업 마진(2.7퍼센트)의 절반에 불과했다. 또 에너지 중개사업의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낮아지자, 2000년에 야심차게 시작한 초고속통신망 사업에서도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광통신 시설 매수에도 12억 달러나 투자했으나 닷컴 열풍이 잠잠해 지자 한꺼번에 무너졌다. 게다가 2001년 10월 엔론의 1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이 부채로 밝혀지면서 엔론의 회계 투명성은 의심을 받게 된다.

주력 중 하나였던 에너지 거래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엔론이 인터넷상에서 가스, 전력 등 에너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비즈니스 모델은 초기 투자부담이 적어 진입 장벽이 낮았다. 이런 약점을 발견한 신설업체들은 엔론의 우수한 직원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에너지 거래 사업에 진출했다. 당연히 경쟁은 심화되고, 수익성은 악화되어 갔다. 에너지 거래의 평균 마진도 1998년 5.3퍼센트에서 2001년에는 1.7퍼센트까지 하락했다. 사업다각화란 이름으로 신규사업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회사가 여러모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을 때, 경영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불법적인 행위로 이를 은폐하고자 했다. 엔론의 최후를 장식하는 내부 통제시스템이 드디어 전방위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층의 모럴 해저드, 이사회의 독립성 부족, 경영자와 회계법인간의 담합 등은 부적절한 관계의 극치를 이룬다. 이사회 멤버를 살펴보면, 그들 중 상당수가 엔론과 거래관계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었을까?  이사회 구성 멤버인 웨이크함은 엔론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그람과 멘델손은 엔론이 기부한 재단의 책임자로 앉아 있는 식이었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경영자의 경영능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사회 멤버들은 기업 재무에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다. 사설 펀드를 통한 부외금융, 파생상품 등 복잡한 금융기법을 통해 부채를 숨기고, 이익을 부풀리는 것을 잘 알지도 못했다. 더구나 CEO인 스킬링과 CFO인 앤드류 파스토우가 갑작스럽게 사퇴하게 되자, 잇따른 악재를 맡아 신속하게 조치하지 못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더구나 이사회는 최고경영자인 스킬링이 이룩한 과거의 성공담을 맹신하고 있어 이사회 본연의 감독업무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사회는 독립성이나 전문성이 부족해 스킬링과 파스토우를 빼면 자회사와의 거래, 부외금융 등과 같은 복잡한 사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파스토우가 엔론의 CFO로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규모가 큰 파트너십인 LJM Cayman LP를 소유하고 이를 엔론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3천만 달러 이상이나 이익을 챙긴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이사회의 사업 내용에 대한 이해부족과 이해상충은 혼동 그 자체였다.

이런 엉망진창인 회사에 끼어들어 부정을 단합하며 따로 한몫을 챙기려는 회사가 있었다. 바로 세계적인 회계 법인이었던 아더 앤더슨이었다. 도덕적 해이의 대명사가 된 이 회계감사법인은 엔론의 회계감사와 컨설팅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거액을 챙겼다. 엔론의 분식회계를 도운 댓가였다. 2000년 한 해에만 이 회사가 회계감사 수임료로 챙긴 돈은 2,500만 달러에 달했고, 그 외에도 컨설팅 서비스 대가로 2,700만 달러를 거머줬다.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문제가 터지자, 이 회사는 엔론 관련된 서류를 파기해 파문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엔론의 경영자들은 떠날 때를 확실히 준비해 둔 듯했다. 그 예로 레이 회장은 2001년 1월부터 7월까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엔론 주식 2억 5천만 달러어치를 팔아 치웠고, 스킬링도 얼마 지나지 않아 1,75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아 치웠다. 또 최고경영영자인 루 파이는 6천만 달러 이상을 챙겼다. 나아가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거래에 참여했던 경영진과 외부 투자자들도 수백만 달러를 챙겼다. 파산 보호 신청을 하루 앞두고 500여명의 직원과 11명의 임원에게 50만 달러에서 5백만 달러에 이르는 특별 상여금을 지급했다. 배가 침몰할 것을 미리 알고 쥐떼들이 피하는 꼴이었다.

이런 행태는 직원들이 퇴직연금을 부어가며  연금 자산의 60퍼센트를 자사주에 투자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더군다나 회사 간부들은 주식을 처분하면서 직원들에게는 퇴직 연금주식에 대한 매각 금지 조치를 내렸다.

특히 엔론 사태가 알려진 후, 정관계 유착이 일부 밝혀졌는데, 레이 회장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전 부시 대통령이 ‘케니 보이’라는 별명을 붙여 줄 정도로 특히 부시 집안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레이는 부시 현 대통령이 치른 두 번의 주지사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이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시 대통령에게 50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서 딕 체니 부통령과 칼 로브 대통령 정치 고문 등은 에너지 정책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엔론의 간부들과 자주 접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통을 이루는 부분이 어디까지 인지 의구심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판단컨대, 엔론의 경영층들은 머리로만 사업을 하려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은 파생상품 및 신용파생상품 거래 등 금융성격이 강한 사업구조로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편법적인 자금조달 기법을 동원했다. 사업보다는 머니 게임에 머리가 돌아간 것이다. 가스, 전력, 철강, 목재 등의 중개사업, 날씨와 같은 파생상품 구축시에 신금융기법은 교묘하게 쓰였다. 편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 능력이 탁월해 이들은 금융성격이 강한 거래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거래 상대방이 엔론의 신용과 자금조달 능력을 신뢰할 수 있도록 부채규모를 축소하고 자본을 확충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했던 것이다.

자본조달 방식상의 문제도 불거졌다. 내부유보,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본 확충보다는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막대한 부채를 장부상에 나타나지 않는 부외부채로 조달한 점이다. 엔론은 사설 펀드(SPEs:Special-Purpose Entities)를 만들어 자산과 부채를 이곳에 매각했는데, 이러한 사설 펀드는 회계장부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사설 펀드에 외부 투자자가 3퍼센트 이상 투자하게 되면 모회사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엔론은 마틴 워터 트러스트와 합작해 아틀랜틱 워터 트러스트라는 사설 펀드를 만들었다. 이 사설 펀드는 출자금과 추가 차입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엔론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함으로써 엔론은 상당 규모의 부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엔론은 이면계약을 통해 엔론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주가가 하락하면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되사도록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상황이 악화될 때에는 사설 펀드의 부채 9억 달러를 엔론은 떠안게 되는 식이었다. 따라서 사설 펀드의 부채에 대한 위험을 최종적으로 떠안는 것은 엔론이기 때문에 이는 엔론의 회계장부에 나타나야 하지만 실제로는 엔론의 재무제표에 표시되지 않았고 회계감사에서도 지적되지 않았다. 용케 발각되지 않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엔론은 30여 개가 넘는 파트너사로 부터 돈을 차입하였고, 가스, 전력 등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면서 신용이 낮은 기업들에 대해서 지급 보증을 하는 업무도 수행했다. 파산보호 신청 당시 엔론의 부채규모를 살펴보면, 모회사의 부채가 131억 달러였고, 자회사의 부채는 181억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다가 공식적인 부채 외에도 200억 달러의 추가 부채가 더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1997년부터 2001년 3/4분기까지 엔론의 투자자산 처분이익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 퍼센트나 되었다. 엔론은 매출인식에 있어서도 분식회계를 자행했다. 가스와 전력 등 에너지 거래에서 상품의 양수도 시점이 아니라, 계약 체결 시점에서 매출과 이익을 반영함으로써 이익을 부풀렸다. 미국 SEC가 엔론의 사설 펀드에 대해 조사가 들어간 후 엔론은 1997년부터 2001년 3/4분기까지의 재무제표를 재작성하게 된다. 재무제표의 재작성으로 1997년부터 2001년 3분기까지 엔론의 순이익은 29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2000년 매출액은 당초 발표한 1,007억 달러가 아니라, 3억 달러에 불과해 매출 기준 기업 순위도 7위에서 287위로 하락한 실정이었다. 이처럼 과거 5년간 엔론은 순이익을 6억 달러인 20퍼센트 정도 부풀려 왔던 것이다.

무디스(Moody)가 엔론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하향조정하면서 엔론과 연계된 투자조합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였다. J.P. 모건은 엔론의 신용보강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으며, 이로 인한 손실 규모는 수 십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엔론 사태 피해액이 반영된 2001년 4분기 JP 모건 체이스는 5년 만에 처음으로 3억 3,2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았고,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은 2억 2,8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미 생명보험회사들은 엔론에 대해 총 여신의 2퍼센트에 달하는 39억 달러 규모를 대출해 주었는데, 존 헨콕이 3억 6천만 달러, 푸르덴셜이 3억 1천만 달러, AIG생명이 2억 6천만 달러에 달했다.

잘 나가던 시기, 엔론은 금융성격의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면서 철저한 위험관리로 정평나 있었다. CEO가 자신의 시간 중 1/3을 위험관리 업무에 할애했고, 에너지 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의 올바른 정신 무장과 업무규정을 준수할 것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현물과 선물 거래에 있어 이익을 남기는 투기거래 보다는 위험을 줄이는 헤지거래가 원칙이며, 트레이더의 투기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보너스의 75퍼센트는 위험조정성과(Risk-Adjusted Performance)에 연동되었다. 또한 현물과 선물 포지션에서 이익과 손실 규모가 잔고의 1퍼센트를 벗어나면 바로 반대매매를 통해 위험을 제한하도록 내부적으로 규정하였다.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엔론의 위험관리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 가스와 전력 파생상품의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상당수의 매수포지션을 취했지만, 이러한 예상이 맞지 않자 큰 손실을 보았고, 손실을 만회하기위해 추가적인 투기를 감행했다. 과욕이 끝내 화를 부른 셈이다.

엔론은 2001년 3/4분기의 저조한 실적 발표 이후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파산 보호신청을 하게 된다. 엔론이 이렇게 단시일 내 파산하게 된 원인은 시장 신뢰의 상실이 주요 요인이었다. 3분기 실적발표 당시 33.8달러였던 주가는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1.1달러로 급락했다. 실적 악화, SEC의 내부자 거래 조사, 분식회계 발표 등 악재가 잇달아 발표되자 투자자들은 엔론에 대해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고, 이로 인해 신규자금의 조달이 불가능해졌다. 이 같은 요소가 엔론이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이유이다.

 

 

  <엔론 몰락의 교훈>

  기업사는 한 때 잘나가던 회사들이 내부시스템이 무너지며 한순간에 붕괴된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기업 붕괴의 원인은 성장정체와 매출 급감, 과도한 부채, 새로운 경쟁사의 도전,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의 부적응 같은 것 이외에도 부정과 비리를 막는 내부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지기도 한다. 위기가 점증되다가 결국 막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터져 나오며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엔론의 경우도 이 같은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경우든 붕괴의 공통점은, 사전에 적잖은 래드 플래그가 펄럭인다는 점이다. 이를 인지해 조기대응만 잘해도 기업이 무너지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살펴본 엔론사는 끊임없이 발동하는 래드 플래그를 무시했고, 경영층은 심지어 이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엔론 붕괴의 징후들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 회사는 기업 성장에 소요되는 자금을 주로 외부차입에 의존했다.  수익성보다는 차입에 의존한 성장위주의 경영을 지향했고, 실물투자나 자본집약적 사업보다는 금융 중개성격이 강한 중개업에 집중했다. 수익이 동반되지 않는 성장, 차입위주의 경영은 곧 소비 둔화로 인한 매출 부진, 경쟁 격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 자금시장의 불안 등 경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정상적인 경영과 거리가 먼 곳에서 이미 래드 플래그는 표면화 되고 있었다.


  -경영자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없었다. 이사회는 유명무실했고, 오히려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었다. 회계법인은 독립적인 감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과다한 수수료를 챙기며 부정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같은 여건은 내ㆍ외부로 걷잡을 수 없을 만치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기업을 갉아 먹어 마침내 침몰시킬 거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으나, 배가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위험은 감지됐다.


   -엔론의 경영층이 지닌 재무 이해 정도는 파생상품을 다루기에 부적절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진출함으로서 더 큰 실책을 범한 것이다. 또한 금융 감독 기관은 2,000개가 넘는 파생금융상품을 제공한 엔론에 대해 금융규제 및 관리감독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다. 이는 대대적 부정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엔론은 회계 처리에 있어서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경제적 사실을 숨길 수 있는 규정을 찾아 내는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사실은 상당부분 왜곡됐다. 엔론의 경영자들은 건전한 사업을 펼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골몰하기 보다는 법망을 피해나가는 방법에 더욱 몰두한 듯하다. 경영자가 기울이는 관심사가 기업 성패의 가늠자라는 점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다.  


   -기업의 생명은 경영투명성, 책임경영과 철저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엔론의 경우, 시장의 신뢰 상실은 즉각적인 주가 폭락과 도산으로 이어졌다. 엔론의 최후는 우리기업에게 지속경영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래드 플래그 제10법칙: 썩은 물고기 눈의 법칙

-조직 상부의 도덕적 불감증, 윤리의식 실종은 조직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처음에는 작기만 한 문제도 일파만파로 키워 나간다. 그리하여 건전한 부분조차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붕괴되게 만든다. 부패가 확산되는 순서는 마치 물고기는 썩게 하는 요인으로 머리 근처의 눈에서부터 부패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과 흡사하다. 어느 조직이나 맨 윗층에는 위기가 잠복해 있으며, 이는 터지기 전의 마그마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조직 성원 전체가 예측하고, 감지하고, 대비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위기는 현실화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조직 내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대화를 잘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 상호교류, 침투의 과정을 거치며 적절하고 신속한 초등대응을 통해 회피해 나가는 것이다. 만일 기업이나 개인이나 이 같은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에 소홀하다면 위기는 악몽으로 표출된다. 모든 래드 플래그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자. 이 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 신뢰를 얻지 못하는 기업에 시장이나 투자자, 고객이 애정을 갖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공유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은 위험이 동반된 것이기는 하나 기업을 더 큰 위기에서 건진다.  1982년 타이래놀 독극물 주입사건이 발생했을 때,  존슨앤존슨이 대응한 방법은 고객과의 솔직한 위험공유와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었다. 오늘날 기업들은 위험요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 개인 파산에 이르고, 이로 말미암아 가정까지 잃게 된 많은 신용불량자들은 말한다. 초기에 가족들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극복하려는 태도를 가졌다면, 파산이 되었어도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 빠지지는 않게 되었을 것이라고. 개인 파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관리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갖 위험에서도 이를 이겨낼 수 있다. 문제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은  문제가 곪기 전에 아픔을 겪더라도 터뜨려 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자정능력 없이는, 위기는 항시 폭발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참고자료>

 박상수,「엔론사 파산이 던져 준 교훈」,『LG주간경제』, 2002.1.30.

 양두진, 「미 엔론(Enron)사의 몰락과 교훈」,『세계경제』, 2002.1.

『Cases in Financial Engineering』,1994. Harvard Business School.

『Enron Annual Report』. 2000. www.enron.com.

「Editorial Comment: Houston we have a problem.」,『Financial Times』.2002.1.12.

「Investors to be more wary of credit products.」,『Financial Times』.2002.1.7.

「거대기업 쇠퇴에서 배우는 교훈」, 『CEO Information』, 삼성경제연구소, 2005.6.15.

「엔론의 파산과 미국 정계」, 『Asia-Pacific Review』, 2002.2.

 
  ⓒ전경일, <레드 플래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