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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남자, 마흔 이후

[남자 마흔 이후] 액티브 시니어가 목표

액티브 시니어가 목표


무슨 일이건, 팔을 걷어 부치고 하자 꾸나 하고 덤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될 일도 소심하게 임해 그르치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인 취향은 그렇다 치고,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해야 할 시기에 정신적인 면에서나, 생활의 면에서 자라기를 멈춘 사람들이 있다. 인생을 적어도 몇 십 년 살아왔다면 수령 사, 오십 년 된 나무처럼 하늘을 가릴 줄 아는 도량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나이 들수록 반듯한 자기 모양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서적으로는 보수, 안정을 희구하나 그건 바램일 뿐 현실은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흔한 얘기로 우리 세대는 ‘젊은 노년’을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젊음은 이전 세대와 비슷했으나, 늙어 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은퇴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지금보다 더 활동적인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까? 내 연령 전후로 나를 먹여 살릴 세대를 기대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30년을 위해 무한 변화의 시대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나서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살다가 무덤까지 그들과 경쟁하고 협력도 하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또, 같은 세대 간 유연하며 우호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펄쩍 펄쩍 뛰어야만 산 걸로 대접받는 게 당연하다. 뒷방 늙은이? 그런 건 거들떠도 보지 말아라.  

활동성이 요구되니 만큼 고립되고 소외감을 느끼며 소멸해 가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각오와 모습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우리 앞에 다가온 노년은 소멸과 낡음으로 방치되는 삶과 청장년이 재생되는 두 가지 인생 모습으로 다가온다. 후자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을 부르기에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층’이라는 말처럼 딱 떨어지는 표현이 없다. 고령층이라도 젊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며, 삶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표현이다. 세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기 삶의 방식을 끝까지 추구하고 구현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노년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삶에 능동적인 사람들 아닌가.

내 아버지는 평생 농사꾼이셨는데, 서울에 올라오셔서도 대학 소유 부지에 밭농사를 지으시며 동네 분들을 능숙하고 정확한 작농 경험으로 코칭하셨다. 아버지의 경험은 농사에 관한한 가장 전문가였기에 그 앞에선 대학교수를 하다 은퇴한 분들도 학생의 신분이 되어야 했다. 다들 은퇴하셨으나 아버지는 활동성 측면에서 보면 새미 리타이어(semi retire)를 하신 셈이었다. 그런 농사 코칭은 심장병이 발발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분야는 다르겠지만, 내가 지향하는 은퇴 없는 라이프도 이런 것이다. 인간의 한 부류로 태어나 늙어가면서 오히려 시원적(始原的)인 일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 그것만큼 축복받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땅을 어루만지며, 인류가 오랬 동안 경작해온 평범한 진리를 인생에 축적하셨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진리는 흔하기만 한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가 잘 알아볼 수 없도록 한다. 나이에 대한 이해는 과거처럼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다양성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삶의 어떤 진리를 퍼올릴지는 각자의 몫이다.  


ⓒ전경일, <남자, 마흔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