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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남자, 마흔 살의 우정

[남자 마흔 살의 우정] 친구의 인생엔 비가 내렸네

친구의 인생엔 비가 내렸네


“나는 어쩌다가 흠뻑 젖어 버린 셈이지. 비 오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거야. 내 스스로 나를 유기해 온 것인지도 몰라. 인생 퇴물이 되어 버린 거지. 요즘은 통 의욕이 일지 않네. 이렇게 무감각해진 삶이라니.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회사에 나가고, 너무나 뻔한 일로 목청을 돋우고, 그러다가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말 못 할 정도로 마음은 불안하고 흔들린다네. 사는 게 극도로 피곤하지. 아주 오래 전에 나라는 존재는 닳아 없어진 것 같아. 매일 쓰는 세수 비누처럼 닳고 닳아서 점점 녹고 작아지는 것 같아. 아무 의미 없이 지워지는 그런 존재가 되는 거지…….”

그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가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제법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하고 회사에서는 사십대 초반에 탄탄한 대기업 임원이란 훈장까지 달은 친구였다. 누구보다도 잘 나가고 있던 그 친구가 어이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는 세상 전부를 얻은 것처럼 자신만만했었다. 그랬던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결국 나는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서가에 꽂혀있는 심리학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친구는 분명 병을 앓고 있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생긴 병, 정신과 용어로는 러스트 아웃 증후군이었다. 그는 힘도 좋고, 건강했고, 늘 의욕에 넘쳤다. 세상을 당차게 살았고, 문제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찬 삶을 살았다. 무쇠처럼 단단해서 전혀 무너질 게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고로 정상적이고, 가장 열심히 살았고,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는 사람, 이런 것이 그 친구의 이미지였다. 그런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니…….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평소 골골 앓던 친구라면 그럴 만도 하겠건만, 하필 그라니! 

그가 들른 정신과 의사는 그에 대한 상담 내역을 개략적으로 내게 설명해 주었다.

“누가 봐도 정상일지지라도 마음의 일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안에 자기도 모르는 병이 자라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이런 정신적 상태는 무기력과 우울증과 피로를 동반하지요.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강해 보이는 건 오히려 겉모습일 뿐입니다. 속으로는 다들 곪아가고 있지요. 특히나 이런 과중한 경쟁사회에서는 말이죠.”

정신과 의사의 얘기에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서서히 젖어들듯 마음을 좀 먹고 활력을 둔화시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친구에게 이런 병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손쓰기에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한마디가 가슴을 더욱이나 철렁하게 만들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스스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도 절대적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그 친구를 붙잡아 두고 위로랍시고 말을 꺼냈다.

“네가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된다. 기운을 내라. 아직 팔팔한 우리 나이에 왜 이렇게 의기소침해졌냐……?”

찻잔이 식을 때까지 무수히 떠들어 댔지만, 나는 내가 하는 말이 그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의 표정에는 몇 십 년간의 피로가 무겁게 쌓여있었다.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자신의 기대에 치인 보잘 것 없는 사내……. 그게 그렇게 잘 나가던 친구의 모습이었다.
  “나는 지쳤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구. 살면 더는 뭐가 되는데?“

무엇이 친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와 헤어지고 난지 몇 달 후, 나는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낙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그를 만났다. 충남의 고향에 안착한 그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여기엔 경쟁 같은 건 없어서 좋아.”

그 말 한마디로, 나는 그가 사회적 성공의 가도에서 왜 물러나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되었다.

“자연과는 그저 함께 살아가면 되고... 사람들과 부대낄 일도 없고, 마음 상할 일도 없고…… 여기선 나보고 ‘배운 사람’이란다. 나처럼 주제도 모르는 놈을…우습지?”

아이들과 부인을 서울에 떼놓고 홀로 시골에 내려와 지내는 그를, 집에서는 ‘요양 중’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애들까지 끌고 내려오면 교육이니 뭐니 다 망친다며, 떨어져 살아도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아내가 결사반대하더란다. 게다가 아내는 남편의 좌절을 인정하려 들지 않더란다. 당신이 원래부터 그렇게 약한 사람이었느냐고…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래서 혼자 내려왔단다.

“집사람은 너무 똑똑해. 그렇게 애들 키워 뭘 하려는 건지 몰라. 나는 그냥 순응하며 살고 싶은데, 아내는 매일 투쟁하듯 사는 걸 좋아하거든. 남들이 인정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지?”

남들 눈에는 이게 패배로 보일지라도, 자신은 그런 경쟁의식이 만들어 낸 인정이나 평가 따위엔 이제는 관심 없다는 게 친구의 주장이었다. 그의 삶은 매우 단순해져 있었다. 너무나 단순한 단 하나의 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처럼 삶을 치렁치렁 치장하면서 복잡하게 만들고 스스로 혼란스러워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한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시골 원두막에서 그와 수박을 쪼개 놓고 앉아 묵묵히 시선을 강 너머 옥수수 밭에 두었다. 그랬다. 내가 몰랐던 것을 그가 먼저 깨달은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없었다.

“제길……팔자 좋은 놈…….”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게 내가 하고픈 애기 아니었을까.  ⓒ전경일, <남자, 마흔 살의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