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만일 오늘날에도 아이들 교육에 이와 같은 진부한 격언을 쓴다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깎아 내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농사가 경쟁력 없는 시대에 농사를 비교해 가며 이렇게 설명 한 들 누가 알아듣겠는가? 더구나 요즘 자라는 아이들 세대라면.

그러나 나는 이 같이 번연한 진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자라왔다. 아버지는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꽉 막힌 분이셨다. 나는 자라며 이 같은 농사군의 가르침에 진절머리가 낫다. 표현부터가 짜증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니 반백에, 내 나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많은 걸 경험한 뒤였다. 사회생활에서의 각자의 처신, 행동규범, 무게감 같은 게 쌓이고 쌓여 있었다. 중년이었고, 대기업 부장이었으며, 가정에 식솔을 데리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큰돈이나, 인맥이라곤 애당초 없었다. 재주라 할 것 같으면,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S사에 다닐 때에는 사업계획서나 분석보고서 작성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간결하고 맥을 짚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게 내가 사회생활에서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칭찬은 나를 키워 중년에 사회의 한 곳에서 나름의 밥벌이와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후론 없었다. 단 하나, 사업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자 옛 상사 한 분이 “사업에 소질이 있구나.”하며 격려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뿐이다. 그런 내가 나이 들며, 진부하기만 했던 아버지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왜 그럴까? 아버지의 ‘콩팥이론‘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다. 바뀐 것이다.


세상에 온갖 샛길들이 수없이 많고, 기회의 부적절성도 무척 많건만, 농사군의 미련해 보이는 삶의 방식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왜 일까?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평범한 진리가 가진 힘이 작용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힘이 작용하는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는 한 사람으로써 성숙하며 보다 체화된 형태로 느끼겠금 되어있다.


회사를 보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남을 위하기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 남에게 한결 부드럽고 정감가는 말로 대하는 사람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땐 행운이다. 이들의 직장 생활 면면을 살펴보면, 그건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써의 성공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써, 사회인으로서 넉넉한 인물됨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재주나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풍족하게 자라난 것도 아닌데 다들 마음씨가 곱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도 서로 돕고 싶어진다. 특별히 모나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천하무적이다. 이런 평범한 직원은 개선에의 노력도 본인이 알아서 하지만, 주어진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분발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치열하다.


모두들 자기 이해에 밝은 사회에 살고 있고, 자신을 포장하려 든다. 자신이 경쟁을 초월해 절대적인 입지를 터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에 따라 가변적인 만족을 얻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남을 인정할 수 없고, 남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런 복잡한 심리 생태계에서 유유히 이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뿌리들을 만나게 되면 절로 힘이 난다. 그들이 하는 평범하고, 극히 손 가기 망설여지는 일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나서는 생활 속의 보통의 영웅들을 만나다보면 인생의 깨달음조차 얻게 된다. 언제 그런 사람들과 소주 한잔 같이 해 보시라. 세파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버텨온 한 집안의 장남과 대작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못난 맨드래미 꽃과 같이 아무대서나 피어나지만, 오래도록 버티고 서 있는... 세상에 평범을 진리처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오래도록 영화를 누릴 것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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