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건대, 경영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 수많은 시행 착오와 판단 미스, 그리고 성공과 좌절을 동반하는 창업과 수성의 역사가 경영행위 아닐까? 과거의 사례가 있으면서도 후대에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게 있다면 바로 경영이란 게 아닐까 말이다.


무릇, 모든 기업(起業)에는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의 역사가 있을 터. 창업은 천하의 패권을 움켜 쥐려는 욕망의 발현이요, 수성은 이를 지키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무엇인가? 바로 국가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 즉 창업과 수성이 반복되는 한편의 대 파노라마인 셈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영욕은 기업 경영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같다.


이런 본보기를 우리는 15세기 신생 조선의 역사에서 찾게 되니, 바로 창업과 수성의 두 주인공, 다름 아닌 태종 이방원과 그 후계자 세종을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둘은 어떤 경영 방식을 취했을까? 차이점은? 그리고 아쉬운 점은? 특히, 후계 구도에 대한 입장은?

단적으로 말해, 두 국가 CEO 간의 차이점은 후계 구도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후계구도에 대한 신념과 태도가 달랐다

창업시 이미 무력 쿠테타와 반대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통해 ‘피의 경영’의 진수를 보여준 태종 이방원은 그의 <하여가>만큼이나, 매우 흥미를 끄는 CEO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냐’는 말엔 권력을 향한 그의 집념과 저 음험한 밑바닦의 욕망이 거침없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그가 일개 야비한 쿠테타의 주역으로 혐하되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 역설적으로 그는 국가의 창업과 수성에 ‘강한 것만이 살아 남는다’는 경쟁의 원리를 도입해 창업을 주도한 주역이었으며, 한편으로 부친 이성계를 도와 창업 일등공신의 역할을 수행한 가장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참모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구족이 멸화를 당하는 리스크를 그 자신도 감내해 낸 진정한 정치모험가로 볼 때 어떤 측면에선 태조보다 더 창업가다운 면모를 보게 된다. 물론, 그 시대 사고를 기준으로 했을 때 말이다.

더구나 역사상 그 만큼 철저하게 창업과정을 마무리져 놓은 군주가 어디있으며, 장래의 경영환경이나 국가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불안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한 CEO가 어디 있을 것인가. 더구나 스스로 그런 오욕을 짊어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단연 창업 CEO론 모든 것을 다했다 할 수 있지.


뿐이랴. 철저히 계획된 창업 준비는어떤가? 태종의 가장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는 정적 제거 방식도 알고보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처럼 철저하게 외과 수술을 하듯 주요 제거 대상에 한 해 차별적 살육을 감행한 것을 볼 때 이는 실로 대단히 정교한 구정권 제거 방식을 취했다 할 것이다. 더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취할 사람과 버릴 사람을 구분해 사람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 매혹적인 CEO, 태종의 전략적 후계 구도 방식

게다가 후계 구도 문제에 임해서는 자칫 자식 문제로 돌려 맹목적인 정에 이끌리기 쉬운 문제를 뛰어 넘어 맏아들 양령을 내치고 삼자인 충령을 내세운 결단이며, 외척의 정치 간여를 사전 봉쇄하기 위해 자신의 처가는 물론 아들의 처가까지 수족을 잘라 버린 것은 신생 조선의 안정성을 취하려는 그의 살 떨리는 경영권 보호 장치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더구나 경영 실체의 과업이 무엇인지 망각하지 않아 ‘똑똑한 사람이 CEO가 되어야 한다’는 ‘택현론’을 내세워 가장 잘할 충령을 차기 CEO로 내세운 것이나, 이 과정에서 자신의 독단이 아닌, 조선 정부의 임원진의 동의를 얻어 낸 운영의 기교는 가히 정치 십단의 수준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차기 CEO 선정 발표를 취임일 기준 1.5개월 전에 전격 발표하고 이를 신속히 추진해 세종을 내세웠으니, 이는 오늘날 인사 조치의 비밀성, 완벽성 차원에서도 배울 점이 아닐까? 뿐이랴. 창업-수성군주간 부자의 정을 넘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역할 분담을 통해 견제원리를 일정 기간 갖게 해 스스로 상왕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대마도 왜구 문제등 주요 문제에 대해 강력 대처한 것은 얼마나 차기 CEO의 부담감을 덜어 주려는 조처였던가 말이다.

이 모두 후계 구도에 대한 국가 경영권 이양의 완결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조치였다는 건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바이다. 다시말해, 후대 CEO를 육성하고 그에게 길을 터준 진정한 배려였던 것이다. 단언컨대, 야전에서 피 묻은 칼을 핥아 스스로의 담력을 시험해 보지 않은 국가 CEO에게서 과연 이런 매혹적인 야수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단언코 말해,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여 태종이야말로 세종이 있기한 장본인이며, 자신보다 더 나은 CEO를 옹립함으로써 현자로 하여금 영구적으로 국가경영을 하려한 인물이 아닐까? 그러함에 그를 한낱 광포한 야심가로만 보려 한다면 이는 큰 잘못일 것이다.

반면, 태종이 손을 들어 준 세종은 후계 구도에 대해 어던 입장을 취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세종은 엄청난 패착을 범했다. 한마디로 문약하기 짝이 없는 의사결정에 아쉬움만이 남는다. 그가 취한 방식은 적장자 우선주의. 세종이 뛰어넘지 못했던 벽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 자신 삼자였고, 전임 CEO도 적장자가 아니었건만, 그는 왜 경영권 이양을 심약한 문종에게 넘겨 주었던 걸일까? 그가 보여준 강하고 아름다운 경영의 힘은 어디가고 명분 중심의 적장자 우선주의 입장을 취했단 말인가? 무엇이 천하에 다시 없는 현왕(賢王)인 세종으로 하여금 그리도 무력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던 말인가?


그럼에도 세종의 이런 결정엔 피치못할 이유가 있었으니, 역사는 이 점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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