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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산에서 듣는 보물 같은 이야기

by 전경일 2009. 4. 14.

 다른 사람, 다른 길 

 

 

일기일회(一期一會)! 만남이 늘 한번뿐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하라는 말은 특히 산사람에게 호소력이 크다. 산에서 만나 명함을 주고받거나 산길에 말동무가 되어 적잖은 대화를 나눴어도 산 아래에서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산의 속살에 파묻혀 하룻밤의 인연으로 끝낼 뿐, 사람 사는 산 아래로 내려오면 뿔뿔이 흩어지고 일상에 파묻히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산 아래 사는 산사람인 모양이다. 인연의 끈이 좀더 질기면 우연히 같은 등로나 산장에서 만나게 된다.

 

 

하긴 다시 만나지 못할 산 위의 인연이라도 그리 섭섭하지는 않다. 우리 각자는 개체지만 산 위에서는 비슷비슷한 산꾼으로 다시 만날 테니까. 그렇다면 만날 사람이 나와 생각이 꼭 같거나 이전에 만났던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하다. 어쩌면 산상(山上) 만남엔 재회가 쉽지 않아 여인의 허리처럼 더 세게 끌어안게 되고 잠시라도 가까워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가끔은 산 아래에서의 삶이 궁금해 전화를 넣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언제 산에 가느냐고 묻다가 ‘즐산’으로 안부를 마무리하고 만다. 그게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의 법칙이자 만남의 깊이다. 그런데 산에 오르며 산꾼에게서 돈을 캐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산행법은 독특하고 여유로우며 다채롭다.

 

양재득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는 산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로 사업의 전환점을 찾았다는 남다른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야말로 길에서 귀인을 만난 셈이다. 사실 귀는 항상 열려 있다. 단지 우리 스스로 쳐놓은 벽이 생각을 가로막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그 벽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을까?

 

양 사장은 등로를 굽어보며 말문을 열었다.

 

“불교에 말이죠. ‘준비되어 있으면 스승은 나타난다’는 격언이 있어요. 내가 뭔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니까 남들이 하는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셈이죠.”

 

어라, 궁금증이 일어 대뜸 그게 뭐냐고 물었다.

 

 

“등산처럼 발이 편해야 하는 스포츠도 아마 드물 겁니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니 무엇보다 발이 편해야 하죠. 물론 국산이든 수입품이든 이미 내로라하는 상품들이 시장에 쫙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산행을 하는데 어떤 여성분이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신데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 주고 겨울철에 잘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이 있으면 노인들이 낙상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쓰던 무릎 보호대를 노모께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번쩍하고 머릿속에 전기불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곧바로 해외 제품들을 조사한 끝에 힐링슈즈를 찾아냈죠. 그때까지만 해도 노인화는 갈색 계통의 일반 범용 신발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 틈새시장을 주목하지 않았던 겁니다. 생각을 한쪽으로 마구 밀어대면 남들이 하는 얘기가 사업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매출액 100억 원대의 국내 1위 아웃도어 인터넷사이트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처음에는 포털에 그저 산행기를 올리던 커뮤니티였는데 그게 사업화가 된 겁니다.

 

 

디카를 팔고 사진 찍은 것도 보여주는 커뮤니티로 있다가 사업이 확대된 디씨인사이드처럼 말이죠. 왜 등산용 카메라는 따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배낭 메고 가면서 사진을 찍으면 메모하기가 어려운데... 언제 어디서 어떤 감상으로 찍었는지 간단하게 녹음하고 나중에 스냅사진과 함께 열어볼 수 있는 그런 편리한 카메라가 있으면 좋잖아요.”

 

 

양 사장은 산길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 그는 등산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힐링슈즈, 다양한 인터넷사이트 개발, 디카의 산행용 변형품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꼬박꼬박 메모하고 있다. 만약 산행을 하다가 멈춰 서서 메모를 하는 산꾼이 보인다면, 시인이 아닌 이상 십중팔구는 양 사장일 것이다. 가히 메모꾼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메모하는 데 선수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귀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만나게 되죠. 이야기하다가 묻고 나누고 비틀어 생각하면 그게 다 사업거리가 됩니다. 남들은 머리를 식히러 산에 온다지만, 나는 아이디어를 캐러 산에 옵니다. 사무실에서는 늘 판에 박힌 생각만 하게 되는데, 산에 오르면 생각이 자유롭게 사방팔방으로 튑니다. 고걸 움켜쥐면 돼요. 날다람쥐처럼 나타났다가 도망치는 아이디어를 잽싸게 붙잡는 겁니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