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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진정한 프로는 어디든 있기 마련

by 전경일 2009. 5. 28.

회사 내 직급이 직급이다 보니 직원 채용 차 내 손에 넘어오는 이력서를 종종 보게 되었다. 이력서를 써 본지는 꽤 오래전 일이지만, 남의 이력서를 받아 보게 되는 것은 뜸한 일은 아니다. 가끔 받아보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프로답지 못한 신변 기술이 주종을 이룬다.

“저는 ○○에서 태어나 엄한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이렇게 시작되는 그들 특유의 자기소개서는 식상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감응이 없다고 생각해 온 게 몇 해 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이런 소박함이 몰개성으로 낮게 평가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예전의 내 생각과 사뭇 달라진 것이다. 거기엔 개성은 없어도 인간적인 면은 배어 나왔다.

반면, 요즘 튄다는 친구들은 어떤가? 솔직히 튀는 게 뭔지를 알고 저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아는 잘 나가는 광고기획사의 한 간부는 온갖 요란을 다 떤다. 머리 염색에서부터 한밤중 선글라스까지...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일까? 경쟁력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특한 개성과 진정한 프로 의식에 대해 나는 내가 살아오며 겪은 한 사람의 카메라맨을 잊을 수 없다. 오래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 네트워크 TV 방송사에서 일할 때였다. 흔히 나이 들면 방송사에서는 단순 카메라맨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경우란 드문데, 그 분은 나이 육십 넘어서도 여전히 계약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러며 저녁에 퇴근하면 일찍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이어폰을 낀 채 히스토리 채널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새로운 촬영기법을 공부한다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카메라 워킹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겉모습에 그 분이 그렇게 프로 같아 보이거나 하지 않은 건, 속이 그득 찬 프로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의식하고 거리로 나가면 카메라부터 흔들린다.”

“집중에는 어떠한 쇼맨십도 요구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내게 프로가 뭔지를 잠시나마 일깨워 준 그 카메라맨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진정한 프로는 자신에 몰두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 때문에 겉멋에 신경 쓸 틈도 없다는 것이었다. 남의 쓸데없는 주목을 받지 않으려면, 남처럼 보이게 하라. 그게 일에 집중케 한다. 바로 그런 것을 알게 해 준 분이었다.


현장을 가보면, 이 같이 수수한, 그러면서도 속은 꽉찬 프로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이 해 내는 일은 그야말로 신기의 경지에 이른 것들이 허다하다. 우리는 인생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이런 대가들에게 제대로 배우기나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그런 장인들을 만나지 못해 불행한 것 아닌가.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직장생활에 뛰어들어 몇 해 지난 후, 한 선배를 만났다.


“언제 또 할 생각이냐?”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 다시 시작하면, 차돌처럼 단단하게 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도 많이 배웠네...”


 내가 보통의 직원들과 프로 근성을 연결시키려는 것은 게중에 우리가 못 보는 진정한 프로들이 겨에 쌀 섞이듯 숨어 있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느냐 마느냐는 경영자가 누구냐에 달려있다.

서로가 서로를 찾지 못할 때,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손실이 작지 않다. 그러니 어디에 꽃 잎 하나하나라도 제대로 피우기 위해 그 작은 소임에 충실한 프로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지 찾아 볼 일이다. 꽃은 어디에고 피고 지었으나, 어떤 꽃이 진정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지, 그걸 모른다면이야 말해 무엇하랴.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