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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지식 대격변기의 생존법

by 전경일 2009. 8. 24.

지식 대격변기의 생존법

스키너 상자 속의 쥐는 대량 생산 시스템 아래에서 노동이 처한 현실을 암울하게 상징한다. 쥐 한 마리가 단추와 음식이 놓여 있는 상자 속에 들어간다. 만약 단추를 밟으면 쥐는 보상(먹이)을 얻게 된다. 그 보상에 따라 쥐는 더 많은 먹이를 얻기 위해 계속 단추를 밟는다. 늘 같은 식의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근대화,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로 넘어오면서 전혀 다른 세상과 조우하게 된다.

부의 창출 방식을 보면 노동이 가치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식 사회에서는 단추를 밟는 게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현재 같은 창조적 인간 시대의 특징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인간 자본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창조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주 계급이 된다. 이들은 산업화 시기보다 강도 면에서 더 강하지만 유연성 면에서는 훨씬 부드럽다. 이에 대해 카네기멜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적 계급은 자신의 창조성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구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계급에는 상당히 많은 지식노동자와 기호분석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노동자가 포함된다.”

다양한 지식 분야에 있는 사람이 계층을 이루며 가치를 창출해낸다는 의미다. 특히 다른 직업의 창조적 컨텐츠가 증가할수록 관련 지식은 더욱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해 가치를 인정받을수록 현재 노동자 계급이나 서비스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창조적 계급, 심지어 순수 창조의 핵으로 이동할 수 있다. 플로리다 교수는 미국 내에 존재하는 창조적 계급을 전체 노동 인구의 약 30퍼센트인 3,83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것은 1990년 약 300만 명에서 대폭 늘어난 수치로 그간 10배 넘게 증가해왔다.

창조적 계급의 중심에는 미국 노동 인구의 12퍼센트에 해당하는 1,500만 명의 순수 창조의 핵이 있다. 그들은 과학, 공학, 컴퓨터, 수학, 교육, 예술, 디자인, 연예오락 등의 분야에서 전적으로 창조적인 활동에 종사한다. 지난 세기에 걸쳐 이 계급은 1900년에 100만 명에도 못 미치는 수에서 1950년에는 250만 명으로 증가하다가 1991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1900년에는 노동 인구의 2.5퍼센트에서 1960년에는 5퍼센트, 1980년에는 8퍼센트, 1990년에는 9퍼센트로 증가했고 마침내 1999년에는 두 자리 수인 12퍼센트에 도달하며 계속 늘고 있다.

어느 사회나 창조적 계급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질적 수준은 달라진다. 전문성이 있는 창조적 집단이 늘어나면 지식은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한다. 위키피디아는 지식의 대중화에 커다란 방점을 찍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로 인해 개인이 다룰 수 있는 지식의 범주도 달라졌다. 더불어 이전에 추구했던 지식의 전문성과 달리 다양성을 포괄하는 지식이 각광받고 있다.

오늘날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가능성, 잠재성, 현실성을 두루 꿰는 인재형이다. 다시 말해 초영역 인재가 답이다. 이들은 경영 환경에 대한 복합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며 미래 기업의 창조적 기반이 된다.

이렇듯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면서 학문의 틀도 바뀌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시도하는 연합 전공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울대는 PPE(철학ㆍ정치ㆍ경제학), 금융수학(경영학ㆍ수학), 프랑스학(불어불문학ㆍ사회학ㆍ경제학) 등 여러 전공을 하나로 융합하고자 하는데 이는 복수전공과 구별된다.

융합 학문은 이미 세계적인 대학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수년 전에 나노·바이오·정보·인지과학 같은 융합 과학 기술의 틀을 제시한 미국 과학재단은 이를 적극 추진해나가고 있다. 또한 EU는 자연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인문사회과학을 함께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학문간 통합 연구는 통합-분석-합치의 변증법적 시너지를 일으키는 시대적 요청이다. 정반합(正反合)이 아닌, 합분통(合分統)의 지식 사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합분통의 등장으로 학문의 각 영역에 대한 배타적인 소관과 관할도 약화되고 있다.

창조성은 종합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을 ‘결합 작용’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말을 제대로 간파했다. 그것은 새롭고 유용한 결합체를 생각해내기 위해 데이터와 인식, 자료를 통해 이동하는 문제이다.

통섭학을 선구적으로 주창한 하버드대의 에드먼드 윌슨 교수는 “진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학문과 사고의 경계를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고 갈파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대학은 전공별로 잘 키워진 인재들(통조림형 인재(canned talents), 특정 영역에 밀폐된 채 잘 가공된 사람들)을 생산하면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기업이 원하듯 새로운 무경계의 지평을 열어 나갈 인재들을 키워냈는가? 아니면 여전히 암기식 경영을 위한 사람들을 양산해낸 것일까? 해답은 한국 사회의 속을 들여 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특정 분야에만 갇혀 있던 과거의 경영학적 지식은 보다 광범위하게 풀어헤쳐야 한다. 이미 새로운 지식 유형, 인재 유형이 몰려오면서 고정적인 경계의 말뚝은 뿌리째 뽑혀나가고 있다. 초영역 인재의 시대는 사고의 틀 자체를 바꿔버린다. 이것은 서로 다른 지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참여, 공유, 증폭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이제 지식 간 경계는 유동적이다. 심지어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실로 인류가 몇 세기만에 맞이한 지식 대격변임에 틀림없다.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