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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마흔으로 산다는 것

자연과 접촉하라

by 전경일 2009. 2. 3.

“전국민의 5% 정도가 우울증 환자라고 추정된다. 또 전국민의 20% 정도는 평생 한 번 이상 우을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립연구소(NIMH)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6~7%(1700만명 이 넘음)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병은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중증의 정신질환이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완전히 폐인이 된 적 있다. 정신적 공항 상태에서 그는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을 꺼리는 것은 물론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환멸을 느낄 정도 였다. 그나마 큼지막한 부채는 정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각종 세금 및 준조세가 3년간에 걸쳐 밀어닥쳤다. 사업에 넌덜이를 냈을 것은 자명하다.

그처럼 사업에서 실패한 경우보다 직장에서의 불안은 그래도 덜 한 편이다. 어차피 임노동으로 먹고 사는 일이니, 사업보다는 위험부담이 덜한 편 아닌가? 직장인이라면 갑작스런 실직이나, 전근 또는 부서발령의 형태를 띤 지위의 추락도 40대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차피 지금 또는 향후 몇 년내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직장 생활도 그만큼 힘들어 진다. 그러다보니 주말까지 희생하가면서 실적을 만들어 내고자 부단히 애를 쓴다. 회사의 누구도 그렇게 하는데 내가 안하면 당장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일찌감치 밖으로 눈을 돌린 친구들은 투잡스(two jobs)에, 아파트 청약 대기 줄에 가서 새벽부터 서지만, 그것도 이 시대 생활 스트레스의 전형인 것은 분명하다.

현대인의 일상은 질병의 산물

이 모두 일상에서 우울증을 양산해 내는 실체들이다. 사회 생활의 총체가 물욕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욕망을 채우지 못한면 당장 경쟁에서 밀려나는 느낌이다. 그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는 무가치하거나, 불필요한 경쟁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겠금 되어 있다. 옆집애가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것에 심리적 위협을 느껴 애들 손을 끌고 근처 학원을 찾게 되는 것은 비단 부모로서의 근성스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영어 학원에 다닌들 인생의 주요한 성공 기준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애들을 붙잡아 둘 수 없어 학원에 보내기라도 해야하니 뭐라 말하겠는가?

어찌보면 쓸데없는 경쟁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것도 인간이 이성적으로 만들어가는 문명의 일부라 할 수 있을가? 만일 문명이 이런 것이라면 정말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말처럼, “문명이란 사실상 불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끝없이 늘려 가는 것”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루 하루가 정말 인간으로서 필요하지도 않은 신기루 같은 삶의 잣대를 세워두고 이를 얻기 위해 모든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격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 마흔넘을 때까지 이때껏 살아왔다는 게 경이롭기도 하고, 이렇게 산다는 게 서글프기조차 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우울해 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자연엔 감동이 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여기 몇가지 처방이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다. 자연 만큼 위안을 주는 존재는 없다. 온갖 형태의 제인간 관계에서 벌어지는 숫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삶에서 가장 큰 교훈을 자연에서 얻음직하다. 삶의 무망함과 헛됨을 느껴야 하는 것은 무책임속에 자신을 은닉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순환의 원리하에 움직이는 제행무상의 원리를 당신에게 펼쳐 보일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자연의 숭고한 변화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깊은 감명을 준다.

내게 산행은 마주치는 뭇사물들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가장 완벽한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접하는 것이다. 40은 자연과 가장 닮아가는 시기다. 열심히 뛰어 왔으나, 그 모든 것이 억지로 되지 않는 것도 깨닫게 되고, 때가 무르익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는 나이다. 가장 농익은 나이로 치닫고 있어 가장 힘을 쓸 것 같아 보이나, 주변에서 갑작스런 낙과(落果)를 목도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껏 멀리 갔으나 결국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자신의 계절로 돌아온 듯한 느낌. 이런 느낌과 사념이 어울려 자신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권하건데, 마흔엔 산으로 가라. 스무살 무렵엔 바다를 찾았고, 서른 즈음엔 새들이 나는 하늘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제 마흔엔 든든한 산 하나를 찾아라. 그곳은 언젠가 당신이 묻힐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정감어리지 않는가? 자신의 욕망을 세우고 그것을 묻어버리기도 하는 산. 바로 거기다가 당신의 중심을 세워라. 마흔은 이런 것을 해야 할 나이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