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스트 강의/마흔으로 산다는 것

당신은 시간이 되어서 여기까지 왔다

by 전경일 2009. 2. 3.

평화는 전쟁을 통해 양육된다. 사회 생활을 전쟁에 비유하자면, 당신은 한바탕 생존 전쟁을 치르며 여기까지 왔다. 40이 될 때까지 폭풍같이 인생을 살다 문득, 시간이 되자 여기 와서 멈추었다. 40이라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간의 시점 말이다. 그리고 이 40이란 숫자는 이제 그 의미를 갖게 되었다. 40이란 나이는 당신의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파고 들어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존재로 당신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청년과 노년의 갈림길에서 갑자기 시간이 당신을 멈춰 세우고 말을 거는 순간이다.

“그런데 어디까지 갈 생각이오?”

“내겐 지난날을 정리할 시간도, 앞날을 설계할 시간도 필요해요. 시간을 더 주세요.”

그러나 시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자기 시간에 대해 보여줄 뿐이다.

시간은 존재하다 마는 것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시간이론가인 데이비드 앨런의 말처럼 ”과거란 우리들의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미래 역시 우리들의 기대속에서만 존재한다. 시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현재가 아니라 방금 지나간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방금 지나간 너무 짧은 시간들, 마흔 전까지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이 시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시간은 어느 것이 고용주의 몫이고, 어느 것이 근로자의 것인가를 알려준다. 또 어느 시간이 불행을 위해 쓰여지는 시간이며, 어느 시간이 행복을 위해 쓰여지는 시간인지도 보여준다. 그뿐인가? 태어나야 할 시간, 학교를 가야할 시간,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야 할 시간, 결혼할 시간, 일을 해야 할 시간, 병원에 가야할 시간, 그리고 이제는 죽어야 할 시간 등등을 보여준다.

다만, 시간의 혜택 중 가장 커다란 것은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어떤 행운자는 860억원짜리 로또에 맞았으나, 딸 결혼식 등으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다 깜빡잊고 당첨금을 찾지 않아 다 잃은 적이 있다. 해외 토픽에 까지 실린 이 이야기도 모두 시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마흔이란 시간이 말하는 것

그런데 지금 나이 마흔들어 40이란 시간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든, 빙하에 끌려온 퇴적물처럼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것이 당신을 지금 자리로 밀고 왔다는 것이다.

전쟁 전문가들은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집단적 반응이 전투 중에 있는 인간에게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참 정신없이 생사의 전투를 벌이다, 갑자기, 문득, 어느 명령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일순간 정적 내지 멈춤 현상이 적군과 아군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 지대의 초식 동물들이 일순간 멈추는 기현상을 보일 때처럼 말이다.

바로 그런 인생의 정적을 40대에는 겪어 보게 되는 것이다. 부지런히 살아왔으나 갑자기 몸의 이상 현상을 감지했을때나, 갑작스럽게 지인의 부고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와 같은 경우. 바로 그런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40대는 이처럼 남다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는 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대개 40대가 부르는 노래의 주요 코드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제 시간이 되어 여기까지 온 당신은 어떻게 남은 생을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이 지금부터 당신을 이룬다.

40대, 그 시간의 무게

시간은 모든 것을 초대하는 힘을 갖고 있다. 폐허가 된 집에 잡초의 씨를 불러 숲이 우거지게 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도 시간의 무게에 쓰러지게 하고, 건장한 한 가정의 가장을 나이들어 무릎꿇게 하며, 모든 것을 새로 만들고, 무너뜨려 버린다. 그것이 시간이다.

어디 그뿐인가? 당신의 유년을 끌어올려 청년을 만들었고, 이제 장년에서 노년으로 이끌고 간다. 이것이 시간이다. 나이 마흔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시간의 정점이다. 우리 인생의 정적이 깃든 정점. 그렇지 않은가?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