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경영/남자, 마흔 이후 | 마흔 살의 우정

메밀꽃 피는 동네

by 전경일 2009. 9. 16.

메밀꽃 피는 동네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내게는 영수라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머잖아 중학생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 속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때로는 중학교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해 주곤 했는데, 어떤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게 되면 영어를 배운다는 얘기에 이미부터 알파벳을 외우거나, 읽기도 했다. 그런 녀석들은 공책에 알파벳을 적어가며 은근히 자랑하는 눈치였다.

영수는 공부를 썩 잘해 중학교 진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녀석은 진학 얘기가 나오면 교실 뒤편에 앉아 고개를 푹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면 녀석을 불러 설득하곤 했다.

“진학을 안 하면 뭘 하려고 그러니? 아버지께 말씀 드려서 꼭 중학교는 가도록 해라.”

하지만 선생님의 이런 당부에도, 녀석은 늘 같은 대답으로 일관했다.

“저는 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해요. 벽돌 공장 일이요.”

영수의 아버지는 벽돌공장 인부였다. 하루의 품삯을 받아 생활하는 형편이라 영수를 중학교에 보낼 만한 여력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 시절은 그야말로 먹고사는 게 고되고 엄중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곤궁허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영수는 가끔 친구들에게 벽돌 만드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곤 했다. 공장에서 어른들이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반죽을 한 다음, 틀에 부어 모양을 만들고 나면, 영수는 그 틀을 벗기는 일을 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벽돌이 마르면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도 영수의 몫이었다. 아마도 영수는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같은 반 또래들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 학기에, 녀석이 볼을 붉히며 설명해 주었던 ‘벽돌 만들기’는 겨울이 가다오면서 우리들 머릿속에서 잊혀져 버리고 있었다. 나 역시 중학교에 간 다음에는 그를 까마득하게 잊어 버렸다. 새로운 친구들이 영수의 자리를 채워 나갔고, 영수는 끝내 기억속에서도 지워진 친구가 된 것이었다.

그랬던 그의 소식을 고향 친구 편에 듣게 된 것은, 내가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에 다시 복학할 무렵이었다. 스무 살이 끝자락을 향해 치닫던 시절이었다.


“장사를 한다더라, 시골 장을 돈다던데.”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갑자기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친구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이미 고향의 벽돌공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가 만든 벽돌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제 나름의 집을 짓고 있었다. 이제 그도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그 고사리 같던 손이 왕사발만 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목구멍을 막는 무엇인가가 느껴지며 가슴 깊은데서 뭉클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미안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맞이했다. 어느 날, 같은 과 친구가 내게 과제를 부탁해 왔다. 영미시 과제로 내게 시 한 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불현듯 나는 그때 왜 영수가 떠올랐을까.
장돌뱅이로 전국을 떠돌며 살아간다는 그를 떠올리며, 나는 한편의 시를 써내려 갔다. 머릿속에서는 강원도 5일장을 떠도는 그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졌다. 그 또한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동이처럼 메밀꽃 피는 수십, 수백리 마을들을 돌며 살아 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시를 통해 그의 운명에 한 걸음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이 제 몫의 삶을 끈질기게 붙잡고 살아가는데 숙연함 마저 느꼈다. 나는 그가 누구보다도 멋진 인생을 살기를 바라면서, 순식간에 써내려간 시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영수는 어렸을 때 이후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교실 뒷자리에 묵묵히 앉아 몽당연필을 쥐고 있던 그 소년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날 쓴 시를 마음속으로 그에게 선물했다. 지금이면 그도 나처럼 마흔 넘은 중년으로 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를 생각할 때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누려 온 행복이 얼마나 컸는지 깨닫는다. 또 예전에는 몰랐던 애뜻한 마음이 인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먼 곳에 있는 친구... 우리가 말하는 이 시대의 가벼운 친구가 아닌, 인생의 숙연함을 알게 해 주는 친구는 내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전경일, <남자, 마흔 살의 우정>


* 독자들을 위해 25여년 전 썼던 시를 여기에 소개할까 한다.



장꾼의 꿈

           -장돌뱅이 친구에게


허어,
새벽 장터도 사람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이라
거침없이 주고받는 장꾼들의 욕지거리에도
허리춤을 풀어헤칠 만큼 넉넉하다

좌판은 걷어지고 장터는 전지불을 내다 건다
입에 단 소줏잔이 돌려지고
어우러져 돌아가는 한판이 무르익으면
취기에 벌어진 마음은 초겨울을 재촉하는
북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들판을 불어 볼에 닿던 건들마도
뿌연 비포장도로를 달려 장으로 가던
노곤함도
모두 트럭위에 실려 어느새 눈발은 희끗한데,
오일장이라 발걸음은 빠르고
묻어 둔 장터의 각시도 볼 겸해서
마음은 얼간히 멀찍이 앞질러 간다

신포리쯤에서 꼬기 꼬기 뭉쳐 둔
고향 땅 편지에 섞어
막 돈 서푼이나마 홀어미에게 동봉했을 때
그래도 나이를 거져 먹은 건 아닌지

남 모르게 눈두덩을 훔쳤다

내년이면 꺽어진 육십이라고
다들 놀림이지만
혼사 걱정에 태산을 베고 누워계실
홀어머니는 오늘도 경대 앞에서
쇤 머릿결을 빗고 계실지

객지 생활에
찬밥 한술 못 뜨는 적도 많건만
그래도 아랫목에 파묻혀 있을 밥주발
어머니 정성에 몸은 축나지 않고
화투장도 넘겨보지 않았다

남들은 죄다 전답 치워 상경 한다 더구만
이제 삼년이다
고향땅 물코 좋은 상답이라도 몇 마지기 될 듯하면
결심처럼 삽자루는 손에 익을까

오일장에 한 번 씩 돌아가는 화천 장터에
눈 맞은 색시하고는 혼례라도 치르고 나면
오일에 한번 씩 그 짓을 하라는 건가

사랑삼아 새끼도 내지르고
마누라쟁이도 쪼그라들 때면
손자 본 단 말 나오겠지

세상은 또 어떨 건가
비루먹을 무식 잡놈만
장바닥 떠돌던 그 오랫 적 얘기는 아니겠지

내일 장이 서고 나면 느즈막히 때를 봐서
각시한테 언질 주고
장인어른 마음도 붙잡아 두고
장터 국수집도 어떻게 해야 할 텐데...

다 된 셈이지, 이러면 어떨까
네에, 꾸벅 절하며 합가라도 하고
두 분 모시고 살림 차려 보는 건
그리고 각시 옷고름도
손끝 바르르 떨며 풀어헤치고
새살 소리 들어가며 새벽잠도 설치고...

어느새, 읍내가 이만치 와 있다

오랜만에 진짜배기 꿈 하나 키워보는데
아랫도리 그 녀석도 눈치를 챘음인지
덩달아 용을 쓴다
더덩실 달빛 안고 화천 장바닥으로 간다.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