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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산을 걷다가 차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by 전경일 2009. 9. 21.

조약돌 하나에 세상 모든 게 들어 있다.


간혹 어떤 사람은 상처를 치유할 목적으로 산을 찾는다. 산에 와서조차 버리지 못하고 상처에 베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그 상처는 나무등걸처럼 썩어 없어지거나 고사목이 되곤 한다. 나아가 그루만 남은 둥치 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트기도 한다. 고통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가? 그들 내면의 꿈틀거리는 소생력을 보면 자연이 주는 치유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무엇을 표준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 무수한 등로와 하산길의 갈래를 보면 자연스럽게 인생이 연상된다. 길을 닮은 사람들, 인생을 닮은 길... 바로 그 길에서 한 산꾼을 만났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등에 시퍼런 칼을 꽂히는 기분이 어떤 줄 아십니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기분 모를 겁니다. 동업이 깨지고 사업이 무너지면서 재산을 몽땅 날린 사람의 눈에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깊이 절망감에 빠져들었던지 ‘저 사람 다 망가졌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사업체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목이 뻣뻣해지고 몸에 쥐가 나서 손조차 펼 수 없었습니다. 이를 갈면서 악에 받쳐 발악을 하기도 했죠. 억울하다고,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간이 엉망이 되면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죠. 거기다 아내가 점점 집을 비우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산꾼 친구의 권유로 산에 오르게 됐지요. 지금은 내 손이 부서지나 이 차돌이 부서지나 내기 하면서 어금니 꽉 깨물고 삽니다. 또 다시 당할 수는 없잖아요. 요렇게 단단하게 돈 벌 겁니다.”

산행에서 만난 김명철 사장은 자신의 의지를 드러낼 때마다 어김없이 입에 힘이 모아졌다. 눈은 매섭게 빛났고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손을 펼쳐보이자 손안에는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해진 사리 같은 차돌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 내가 사업을 다시 한다면 이 차돌처럼 단단하게 할 겁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를 거란 말입니다. 저 산에 있는 바위가 죄다 바스러질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를 생각입니다. 난 반드시 일어날 거고요.”

그는 사뭇 결심을 확인하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참견을 했다.

“산을 무슨 악으로, 깡으로 다니십니까? 즐기며 다니셔야지...”

영락없이 꾸짖는 투다.

“모르는 소리 마세요. 한을 품어야 산도 오르는 겁니다. 내 원이 모두 풀리면 산에 오를 일도 없을 걸요.”

그와의 대화는 여기서 잠시 끊겼다. 길을 보아하니 우린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을 잡고 하산해야 했다. 나는 김 사장에게 면박을 준 사람처럼 ‘무슨 억하심정으로 산을 오른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가 들고 있던 차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는 그의 마음이 늦가을의 서리처럼 싸늘하게 다가왔다.

그의 의식을 통째로 두들겨 피멍이 들게 한 사업이란 대체 무엇일까? 기다렸다는 듯 김 사장은 볼트와 너트처럼 꽉 물린 턱을 열었다.

“배웠다는 놈들은 한마디로 남 등치는 데 선숩디다. 간까지 빼줄 듯하더니 요리조리 핑계를 대가며 자기 지분을 늘리다가 결국에는 죄다 빼서 나가더라고요. 그 일당들 등쌀에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다 주고 나왔어요. 떠날 때 이를 갈았죠. 어디 두고 보자고요. 나중에 두고 보자는 놈 무섭지 않다는 얘기 틀렸다는 거 꼭 보여줄 거라고 작심했죠. 똑바로 살라고 말하려면 내가 다시 오뚝이처럼 보란 듯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사는 겁니다.”

나는 산장에서 소주 한 잔을 건네며 그와 말을 틀 때부터 하산길이 어떨지 눈에 그려졌다.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더니 딱 그 전형적인 예를 보는 듯했다. 사람은 제각기 모든 산의 이름으로 솟아 있다. 산에 오른다고 산기운에 호연해지는 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 사장은 말을 끝맺었는지 앞서 산길을 재촉하며 나섰다. 산행 동기야 어찌됐든 나는 그가 산의 정기를 받아 앞으로 하는 사업이 차돌처럼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며 작별의 인사말을 했다.

산에서야 무엇인들 작심하지 못하겠는가? 진짜 문제는 저 아래에 있지 않은가? 자기 마음으로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요, 그것을 시험하는 것이 산의 풍경이라면 결국 산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김 사장이 털어놓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허방(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을 딛고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꿈을 천만 번도 더 꾸었습니다. 사업에서 밀려나니 나만 모자란 것 같고, 그게 발목을 잡아 더욱더 일이 안 되더군요. 그 징크스를 깨기 위해 산에 오르고 차돌을 늘 손에 쥐고 다닙니다.”

나는 그가 생활과 사업이 놓여 있는 산 아래에서도 차돌을 손에 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산에 오는 이유는 정말 천태만상이다. 죽기 싫어서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피해서 오기도 하고 갈 데가 없어서 하염없이 산에 파묻히기도 한다. 머리를 깎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고 속세를 더욱 세게 껴안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산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포용력으로 세상만사를 붙잡아주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이 사라진 산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겨 터벅터벅 내려왔다. 나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곤 했다. 차돌은커녕 잘 부스러지는 서벅돌 하나 챙기지 못하고 참 물렁물렁했다. 오래 전, 첫 직장생활을 할 때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김 대리는 1전짜리 딜에 너무 약해. 거기에 대충하니까 다부지지 못한 거야. 우리가 뭘 먹고사는 줄 알아? 귀 떨어진 돈이야. 온전한 엽전이 아닌, 엽전 귀퉁이에서 쬐끔 흐르는 쇳가루를 먹는 거야!”

나는 얼마나 다부져야 김 사장처럼 손에 사리를 들고 다니게 될까? 출산(出山) 중에 보이는 바위나 등산화에 걸리는 뭇 자갈, 심지어 팔색조조차 여물고 단단하기는 나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의 행장이 단단하게 조여진 그 어느 배낭보다 더욱 야무질 것만 같았다.

계곡 사이를 돌 때, 나는 산귀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재빨리 조약돌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부터 내 안에 놓일 악착같은 삶의 사리여, 나를 일으켜 세워주게나.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