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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마흔으로 산다는 것

쌓아두기만 하지마라

by 전경일 2009. 2. 3.

최근 몇 년 사이 재테크 열풍이 온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돈을 벌고 관리하는 측면이 사회 전면으로 부상한 느낌이다. 그와 함께 돈에 대한 뻔뻔함도 보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돈을 번다’거나 ‘부자가 된다’는 생각이 돈에 대한 경직된 사고를 연화(軟化)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 준 측면도 없지 않다. 얄팍한 상술이 상도를 제압한 것이다.

가장 강력한 수단: 돈

한편으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거나, 짠돌이가 되는 것이 부를 이루는 방법으로 소개되어, 부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소개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돈이 없으면 40대같이 가장 왕성하게 돈을 써야 하는(물론 가장 많이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곤혹 수준을 넘어 인생의 후반전이 매우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돈은 그 만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밑받침해 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수단인 것이다. 너무나 강력해 그 자체가 목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나이들어 돈이 없다면, 특히 요즘같이 경제력으로 자신의 활동 공간을 넓혀 나갈 수 있는 시대엔 자신의 활동 영역이 크게 줄어 들기도 한다. 어디 동창들 모임엔들 쉽게 나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소탈함만 가지곤 어울릴 수 없는 모임도 많다. 물론 모든 게 다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나이-사람 구실, 이 3자가 상호 연결돼 돌아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돈을 모으고자 하는 것 아닌가?

돈의 나이?

그런데 돈의 나이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만원권 지폐같이 한국은행에서 발행돼 세상을 돌며 쓰이다가 마침내 닳아 없어지는 그런 돈의 수명 말고, 돈을 만지는 사람들의 나이 말이다. 누구나 만져보기에 특별히 돈을 만지는 사람의 나이가 중요할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살때의 돈은 돈이 아니고, 10대때의 돈은 용돈이란 이름의 돈이고, 20대의 돈은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 필요한 돈이고, 30대의 돈은 자기가 사회에 나가 제대로 일해 버는 돈이고, 40대의 돈은 자신을 떳떳하게 만드는 돈이고, 50대의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기도 하는 나이의 돈이고, 60대의 돈은 구차스러위지지 않으려고 지키는 돈이고, 70대의 돈은 별 필요성을 못느끼는 돈이고, 80넘어서의 돈은 성가싫기만 한 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만큼 돈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필요하다. 그게 돈이다.

이 다른 시기의 돈이 다른 용도로 필요하기에 우리는 돈을 모으고자 한다. 특히 40대는 자신을 가정과 사회에 바로 세워놓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이라는 차원에서 볼때 돈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먹고 살려는 활동속에 돈이 있다

하지만 명심하라.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먹고 살수는 없으며, 돈은 입을 수도 없고, 덮고 잘수도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가치를 지닌 수단일 뿐이다. 식의주에 필요한 물건을 얻는 매개체라고나 할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지,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사람과 책 Men and Book』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은 우리가 사도 되고 안사도 되는 상품의 하나이며, 우리가 마음껏 탐닉할 수도 있고 절제할 수도 있는 사치품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돈보다 더 탐닉할 수 있는 많은 사치품들이 있다. 그것은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 시골 생활, 마음이 끌리는 여성같은 것이다.”

돈에 대한 신화의 상당 부분은 돈을 의미없이 축적해 두는 것을 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의 경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돈을 벌어 쌓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마치 평생 모은 돈을 땅속에 묻어 둔 항아리에 넣어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쌓아두기만 하는 것을 부자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균형잡힌 생각은 그래서 중요하다.

40대: 나는 돈을 지배하고 싶다

40대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경제적 문제에서 온다. 현실적으론 돈으로 인생의 주요 부분들이 해석되기도 한다. 앞서 애기한 것처럼 나이에 맞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여부를 돈이 결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문제는 항상 같다. 돈의 수요는 항시 공급을 뛰어넘는다. 특히 40대에는 말이다.

차를 바꿔야 하고, 집 평수를 넓혀 이사가야 하며, 대학 마칠 때까지 영어를 한 것도 부족해 별도로 영어 과외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그런 사람이라면 애들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게 하기 위해서도 자녀를 조기 유학이라도 보내고 싶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저런 쓰임새 때문에 돈이 유별나게 필요하다.

어디 가서 돈벼락을 맞거나, 로또라도 맞어 인생역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돈은 댐의 수위 조절과 같아서 적당한 형태로 갇어 두고, 내보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 가장 가물어 타들어 가는 곳이 있다면, 작은 물줄기나마 흘려 보내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흔엔 바로 돈 씀씀이가 마음 씀씀이와 조금은 이어져야 한다. 두개가 같아 질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작은 노력을 더 늦기 전에 쌓아야 한다. 40대, 벌기도 어려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해야하냐고 당신은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쌓아두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런데서 돈의 자연스런 선순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당신은 돈을 자연스럽게 지배하게 되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평온하지 않을까?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