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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새로운 경영의 요구, 인문의 힘

by 전경일 2009. 9. 29.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주로 경영대가 주관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은 퇴조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인문사회과학대에서 주최하는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은 크게는 3: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어 왠만한 사람이라면 대기표를 받아야 할 형편이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CEO들의 경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일까? 전혀 아니다.

대학 측의 얘기에 의하면, 경영자들은 이제 기능적 해법보다는 뭔가 본질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는 것. 굳이 "경영학은 인문학이다."는 말로 경영에 인문적 요소를 끌어 들이고자 했던 피터 드러커의 얘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기능적이며 효율성에 근간이 되었던 경영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 게다가 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경영학은 어떠한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경영 환경이 복잡계로 진입해 들어갈수록 전체를 볼 수 있는 장기적이며, 심도 깊은 시각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고객의 빠른 취향 변화와 변심(?) 또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는 인문적 요소를 갈급하게 요구케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무빙 타킷(moving target)을 어떻게 따라잡느냐가 기업 사활을 결정하고 본질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보장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경영학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것을 도와주는 학문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통합하는 학문이다. 즉, 사람에 대한 학문인 것이다."라는 드러커의 부연 설명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경영의 구체적 환경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 기
업들은 생존과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해 단기 효율성을 넘어선 혁신적 발상을 찾고 있다. 인문경영이 요구되는 것도 사고의 축을 원천적인 데에 두어 기업이 360°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즉, 과거 프로세스 중심의 효율성 만능주의에서는 현실의 장벽을 뛰어 넘는 획기적인 혁신, 즉 창조가 제대로 발현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쟁 밀도가 높아질수록 앞서고자 하는 기업은 전인미답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 에 다가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합된 ‘넓고 깊은' 사고가 요구된다. 하이브리드 시대, 이질적인 생각은 보다 높은 차원의 문제해결 능력을 가져온다. 나아가 지식과 경험, 고객의 욕구가 유비쿼터스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인문경영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움직이고, 인간을 만족시키는 경영의 본질에 훨씬 가까이 다가가 있다. 다시 말해 다면적 이해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이 된다는 얘기다.

위대한 기업의 탄생조건은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 분야의 통섭을 통해 사람을
알고 감동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어느 위대한 혁신이나 발견, 발명의 창조적 행위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willingness)에서 시작됐다. 다시 말해 어느 하나의 단편적 이해로는 기업이 직면한 문제의 해법이 되지도 못하고, 직원들에게 요구되어 온 단순 스킬 중심의 직무지식으로는 변화경영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이 작용한 결과이다.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의 변화혁신 노력을 평가하며, 직무 중심의 교육 결과, 단기적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장기적 발전을 꾀하는 환골탈태형 혁신에는 이르지 못했다. 효과도 미미해, 해마다 하는 혁신이 통과의례 정도로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인문경영은 사람까지 바꾸는 원천 솔루션이 되고 있다. 조직내 인간으로서 보다 깊은 상호 이해와 신뢰의 조건을 만들고, 성숙되고 완성되어 가는 직원을 키워 낼 수 있다. 동기부여, 커뮤니케이션, 깊이 있는 사고, 탁월한 분석력 등 기능적 직무교육이 추구한 바가 오히려 인문경영에 의해 폭과 깊이를 더 해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통섭이나, 융복합 현상이 과학, IT분야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적 요구도 크게 작용한 터다.

포스코를 비롯한 리딩 컴퍼니들이 퇴근 통섭을 해법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정체를 뛰어 넘는 경영해법으로 인문경영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존조건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면 창조성을 근간으로 삼아 '남의 집 담장도 제 집 담장 넘나들듯' 하는 통합성, 총체성이 필요하다. 흩어진 것들을 묶을 때 나타나는 힘을 경영은 결국 인문에서 빌려오고자 하는 것이다. 각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에 인문 대세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대학들이 앞 다투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는 인문적 토양을 탄탄히 하는 기업만이 혁신의 질을 달리 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지금의 선택은 생존과 쇠퇴를 결정한다고 볼 때 인문은 그저 취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리더십센터와 인문경영연구소가 새로운 시대 담론, 경졍의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 여는 '인문경영'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를 뛰어 넘을 공개 담론이 될 게 분명하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한국리더십센터 계간지 UP&UP>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