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신개방과 잡종의 열풍이 불어 온다

by 전경일 2009. 10. 13.

얼마 전 IT업계의 지인을 만났는데, 마이크로 소프트와 구글, 야후 등 굵직한 회사들의 R&D센터가 있는 인도 방갈로를 방문한 소감을 내게 들려줬다. 엄격한 카스트 문화의 잔재가 짙게 깔린 대륙이지만, 인도의 힘은 과거-현재-미래의 트라이앵글이 개방성에 힘입어 국가적 자산이 되고 있다는 것. 기업이 인도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그들의 통섭력 때문이다. 세계관이 보다 개방적인 사고와 열린 마인드, 포옹력이 어우러진 통섭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그 만큼 전 세계는 기존의 상태와 일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1, 2년간 전 세계 정치는 물론 기업도 열린 사고와 수용력을 더욱 높여 가고 있다. 세계화든 FTA든 개방성은 마치 중국 CCTV에 나왔던 <대국굴기>처럼 무엇이 그 사회와 국가를 융성케 하는 것인지 생각게 한다. 요컨대 개방이 다양성을 포용하며 보다 다원적 가치를 잉태해 내고 있다는 얘기다. 카네기 멜론대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일본이 외래 유입에 개방적이던 시기 이후에는 창조성이 강하게 분출된 시기가 뒤따랐다고 지적한다. 다양성과 개방을 포용한 일본 문화가 근대 개항기에 외부 문물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고, 이 점이 이후 일본이 도약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나가는 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는 쇄국의 빗장을 걸어 잠그며, 안으로 내침한 우리와는 실정이 사뭇 다르다. 그것이 국가의 성쇠를 결정했음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같은 개방화 현상은 일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칭기즈칸의 세계제국 건설에는 문화적, 정치적 개방이 크게 한몫했다. 몽골은 샤머니즘에 근거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계 모든 종교가 존중되고 인정되었다. 유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은 다양성을 받아들였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1600년 경 들어 후금을 세운 청태조 누르하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적(敵)인 한족 출신일지라도 유능하면 관리로 발탁해 썼다. 일개 소수 부족인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덥석 집어 삼키게 된 배경은 이처럼 높은 수용성을 지닌 데 있다.

국가나 기업의 흥망을 살펴보면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는데 폐쇄된 사회는 성장의 한계를 보이며 곧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외부로 눈을 돌리면, 더 큰 세상을 감지하고 기회와의 접점을 높인다. 찬란했던 문화ㆍ문물의 영락은 이처럼 개방적 사고와 열린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 위인이나 예술가들의 경우에도 개방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에게도 한결 같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개방적 태도(연구실에 콕 박혀 있다고 사고가 폐쇄적인 건 아니다.)이다. 다양한 시도로 자신의 기존 확신을 부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과정이 남다른 발견을 가져온다.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역사적인 창조자들은 창조에 관한 한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댔다. 이렇게 쌓은 다양한 경험이 훗날 대형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통합적 지식을 가져오며 위대한 결과물을 낳았던 것이다. 그들이 지닌 영순위 조건은 개방적 통섭의 자세였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그들의 전인적(全人的) 역량은 ‘화가는 그림에만, 건축가는 건축에만 전념한 베네치아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며, 각기 분리되어 있던 지식이 통합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며 지렛대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열린 사고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르네상스 초기의 피렌체, 1800년대 초의 비엔나, 일본의 가나자와, 미국의 뉴욕과 오스틴, 아일랜드의 더블린, 인도의 방갈로와 콜카타 등은 문화적으로 열린 탓에 높은 보헤미안 지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도시가 활기를 띠며 경제가 왕왕 돌아간다. 나아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미래를 지향한다. 명실상부 개방적 다 문화권을 형성한다.

이제 세계화는 모든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인을 요구한다. 피부색이 아닌, 열린 생각의 주도권을 누가 움켜쥐느냐가 성쇠를 결정한다. 세계 경제가 그렇듯, 지식과 문화가 뒤섞이며 하이브리드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미래 지향의 선도자들은 역사와 철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이 초미의 현상을 더욱 깊게 주목하고 있다. 세상이 뭐로 다시 태어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므로 지식과 경험이 광합성을 일으키는 지금의 현상에 몰두하는 것이다.

최근 포스코는 통섭을 주요 성장 축으로 삼겠다는 발표를 했다. 확언컨대, 이제 철강으로 빚어낼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철과 녹색이다. 역설적으로 상반되는 것을 묶어 경영 해법을 찾겠다는 것. 즉 통섭이 활로라는 걸 알 수 있다.
ⓒ전경일, <행복한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