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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경영의 산을 오를 때 내면에 차오르는 것들

by 전경일 2009. 10. 13.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말했던가.

"산은 내게 경영의 모든 것을 가르쳐 줬다."

10대부터 아버지와 함께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는 그. 그는 새로운 등로를 개척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도전하며 스스로 모든 선택과 결과를 달갑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암벽 등반과 경영은 꼭 닮아 있다고 말한다. 암벽 등반에서 180도 오버행을 하는 것처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이 뒤흔들렸었던 지난 1년간의 경제위기. 눈사태가 난듯 한차례 위기를 겪고 나서 일어서려는 경영자들에게 '바위'는 말 그대로 불확실성의 경영세계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환경을 딛고 일어선다는 점에서 산과 경영은 닮을 꼴이며, 그러기에 경영의 가장 큰 잠언이 된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오히려 에베레스트에서는 정상에서 서미트를 즐기려는 경영자들로 북적인다. 더러운 담요와 샤워조차 할 수 없는 롯지와 험블하기만 음식과 혹독한 날씨가 지상 최대의 상품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영자들은 세찬 경영환경보다 더 혹심한 자연 환경에서 생존함으로써 스스로 거듭나고 싶기에 그곳을 찾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무실을 떠나 2만9천 피트에서 근 70여일 간의 에베레스트 장정에 오르는 것인지 모른다. 산은 깨달음을 줄 것이기에...

산에 올랐으나 그것은 산의 끝이 아니라 산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이 서미트가 주는 교훈일 터다. 티벳과 네팔로 이어진 연봉들은 그러기에 경영 현장임에 틀림없다. 겨울 한철 그나마 무릎까지 빠지는 국내의 설악이나, 한라 따위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만년의 설산에 경영자들이 배낭을 꾸려 깃드는 까닭이다.

산의 적요에 들며 경영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남체에 있는 에베레스트뷰 호텔에선 주위에 펼쳐진 산군을 조망하고, 산군과 하나 되며 스스로 산이 된다. 그곳에서 경영자들은 목표를 향해 나가듯 자기와의 싸움을 처절하게 치뤄낸다. 그럴 때 어제와 다른 경영자로 거듭난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칙이 있다. 비스타리 비스타리. 네팔말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어차피 인생이든 경영이든 앞을 가로 막는 산은 없어지지 않을 것, 우보(牛步)처럼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뜻이겠다.

바야흐로 여름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우리의 가을 산에는 억새부터 흩날린다. 덕유산 억새든, 천관산 억새든 풀들은 억센 힘으로 대지를 부여잡고 바람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생텍쥐베리의 말처럼 뿌리가 없어 떠돌기만 하는 인간은 그저 자연에서 산사의 목어가 울어댈 때 가슴에 커다란 울림이 함께 하듯, 느낀다. 느낌은 울림이 되고, 울림은 영혼을 새벽처럼 일깨운다.

지난 주말, 아직 단풍이 시작되기 전의 설악을 두 밤이나 품고 돌아왔다는 양형주 사장은 산꾼 일기를 이렇게 전한다.

"성(盛)한 것들이 쇠(衰)해 가려는 길목에서 내 나이 오십 언저리를 바라 볼 수 있었죠. 오십이 넘어도 펄펄 뛰어야 할 나이지만, 내 인생에 가을이 서서히 깃들고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더군요, 머잖아 올 가을의 산도 울긋불긋 인생의 장년처럼 불콰해지겠죠. 문득 고정희 시인의 싯구절이 생각나더군요. '알곡이든 쭉정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나이는 그렇다 치고 사업은 추수 끝난 텅 빈 가을 들판 같지는 말아야 할텐데, 하고 생각했죠. 사는 게 늘 절박해요, 절실해요. 산이 그걸 제게 알게 해요. 그래서 인생도 사업도 이제는 좀 아는 나이가 된 모양이네요."

며칠 수염을 깍지 않았을 때에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만 살고픈 생각이 들었지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업체들과 약속을 하고, 매출 목표를 어떻게 해서든 달성하려고 뛰다보면 산은 저 만치 멀리 가 있는 것 같은데, 돌아서면 불현듯 산이 가슴속 어딘가에서 바람처럼, 쓸리는 갈대처럼 울어대고 있는 걸 알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경영자의 외로움일거라고 그는 빙긋이 웃는다.

가을 산이 그렇게 무너지고 나면, 이제는 모든 속을 내보이며 빈 손으로 밥그릇을 들듯,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할지 모른다는 조평호 사장. 그는 낙엽이 지고 나면, 산정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 풍경은 기도하는 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산꾼 CEO의 가슴엔 강이 흘러요, 겨울산에 가면 산맥이 요동칩니다. 내가 저 산과 같아야 할텐데. 왜 이리 일희일비하고 속을 복닥이는건지..."

그는 산을 오르는 건, 경영의 산을 오르는 것이며, 그 속에서 나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 그러기에 그에게 산행은 산을 타러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을 타러 가는 것일 게다. 얻으려 가는 게 아니라, 덜러 가는 것일 터다. 그렇게 눈 덮인 등로를 러셀을 만들듯, 조금씩 조금씩 사업을 진척시켜 나가며 올 해도 반절 이상 지나왔다. 경비를 줄이고, 목표를 명확히 하고, 시간을 재고... 그런 식으로 숫자도 맞춰 나간다고 했다.

"내 안에 산이 있어요. 그 산을 넘어서는 게 목표죠. 내년엔 경영 목표를 적은 플랑카드를 들고 직원들과 함께 오를 겁니다. 어려워도 당차게 내일을 맞이해야죠."

누구는 비좁은 국토에 산만 많다고 푸념이지만, 우리에겐 되려 산이 있어서 다행이다. 국토의 어느 능선만 올라도 굽이치는 산들을 보며, 한편으론 산에 올라 오히려 산 아래로 굽이치는 강물을 내려다 본다. 산은 산을 보게 하고 강을 보게 한다.

가을 산 아래 느릿한 강. 어느 강이든 강물은 사행(蛇行)이다. 그래서 산꾼 경영자들은 내려 보이는 강물에서는 곡선의 힘을 통해 시류에 맞는 경영을 배우고, 깎아지른 바위나 고샅을 지날 때에는 수직의 힘에서 추진력을 배우는 것인지 모른다. 산행의 일투족(一投足)이 모두 깨우침과 맞닿아 있다. 깨달음이란 회사의 사무실이나 생산 현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높은 산에 올라 오히려 깊이를 더한다고 할까?

우리가 경영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산에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나,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봉들을 바라볼 때면 보다 심원하고 영구적인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내면에 알 수 없는 감동을 깃들게 하며, 경영자들을 성숙한 한 인간으로 빚어낸다. 그런 경영자들에게 혹여, 운 좋게도 별똥별이라도 날아간다면, 그들이 합장하는 영혼의 기도는 더욱 맑아지지 않을까?

ⓒ전경일, <아시아나 항공>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