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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20대를 위한 세상공부

회사는 수많은 콩 중에서 어느 콩이 킹콩인지 늘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by 전경일 2009. 11. 20.


제가 우리 부서에서 일할 파견직 직원의 면접을 보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 직원의 자기소개서에는 이런 말이 써져 있었습니다. “어떤 콩은 콩나물이 되고, 어떤 콩은 콩나무가 됩니다.” 그 문구를 접한 순간, 저는 정말 좋은 말이로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물론, 그 응시자를 다시 쳐다보게 되었죠. 여러 가지 이유로 응시자는 합격의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갖은 젊은이라면 무슨 일이든 훌륭하게 해 낼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응시자는 가장 보편적인 직원 속에도 하늘까지 가 닿는 인재가 될 것입니다. 그런 가능성을 그 피면접자는 드러내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 후에 저는 비비안 프렌치가 쓴 <잭과 콩 줄기>이란 동화에 나오는 ‘콩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를 팔고 오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고 가던 길에 요술 콩하고 소를 바꾼 주인공 잭. 화가 난 어머니가 집 밖에 내다 버린 그 요술 콩이 콩 나무가 되어 다음날 하늘까지 가 닿아 있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환타지죠. 그 동화와 달리 우리는 일상에서 용기와 꿈과 모험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콩 하면 제게는 생각나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는 물을 부어 키우던 콩나물시루가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가 물을 줄 때마다 잠결에 시루에서 쫘르르쫘르르 물소리가 들렸던 것이 사십년 남짓 지난 지금에도 또렷히 들려옵니다. 저는 그 물소리를 지금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콩 나물들은 시루에서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었겠죠? 요즘은 콩나물도 마트에 가서 사니까 아마도 이런 추억을 간직한 젊은 분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렵에 집에서 키우던 콩 나물은 제게 안방에서 누워 듣는 시냇물처럼 평화로운 안정감을 키워 주었습니다. 지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 시대의 흑백사진 같던 기억들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건 왜 그럴까요? 추억이란 정말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콩 나물과 콩 나무는 어떻게 다를까요? 제 생각엔 겉모습엔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싹이 트기 전에라도 그 안에 지니고 있는 고유한 요소들이 다를 거라는 점입니다. 하늘에까지 가 닿을 나무는 필연코 다음과 같은 소양을 지닌 직원들일 것입니다. 겸손, 타인에 대한 배려, 지속적인 노력, 장기적 관점, 창의성, 인간됨됨이 등등. 업무를 통해 지득하게 되는 지식수준이나 업무능력 이상의 것들이 발현될 수 있는 직원들입니다. 이런 직원들의 강점은 언제부터 만들어질까요?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과 훈련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요? 다시 말해, 사람으로서 지닌 훌륭한 인성요소 때문 아닐까요?

훌륭한 인간미는 좀처럼 성인이 된 다음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밥그릇을 놓고 각축하는 직장에서는 보통 이상의 훈련이나 극기, 내공을 쌓지 않는다면 얻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터프한 곳에서의 실험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기완결성을 점검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직장이란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조우가 매일 매일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들은 저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는 가변적인 인간 유형입니다.

사람들은 변하고,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늘 업무와 사람을 대합니다. 일에 대한 판단은 옳고 그른 여부를 떠나 극히 개인적일 수 있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편차가 생겨나고, 편견도 작용합니다. 직장생활을 통해서는 한 사람의 내재적 특성이 많이 바뀌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 사고나 태도가 바뀔 수는 있겠죠.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성숙된 자아를 갖는다는 것은 그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일은 나를 대표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든 일이 곧 내 자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일을 적절히 통제하고, 분배하고, 잘 해내기 위해서는 내재된 사람 됨됨이가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콩 나무’의 조건입니다. 바르고 확고한 인성 없이 쌓은 탑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직장내 정치적 태도가 궁극적인 자기 경쟁력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사내 정치적 이슈에 우리는 무관심할 수 있을까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생깁니다. 그것이 나를 다른 형태로 움직이며, 나의 생각이나 심지어는 경력조차 바꾸어 놓을 테니까요. 다만, 과도하게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요는 여러분의 내재된 힘과 뛰어난 업무 결과만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받을 것입니다. 현실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뛰어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가 발목이라도 붙잡히고 나면, 생존은 할 수 있어도 이 무한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궁극적 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콩 나물 시루에서 수많은 콩과 더불어 부댖기며 다투어 자라나는 콩일지라도 여러분 스스로 “나는 콩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노력으로 벽을 뚫고 나가세요. 편견과 말의 숲은 넘어 의연히 걸어 가십시요.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기회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민간전승 중에 아기장수 설화가 있습니다. 80년대 대학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탐독한『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도 아기장수 설화에 기반한 희곡을 쓰기도 했는데요. 난세를 구할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용마가 알아서 나타나 준다는 게 그 이야기의 뼈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요는 아기장수가 탄생하면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 몰살당할 것을 두려워한 잡안 사람들이 아기장수를 멧돌로, 쌀섬으로 눌러서 죽여 버린다는 데 이 이야기의 비극이 있습니다. 아기장수가 죽고 나면 용마는 천년을 기다린 보람 없이 울며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죠. 민중을 위해 태어났으나 철저하게 민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현실을 우리 조상님은 어떻게 불발로 그친 수많은 민란 속에서 이 같은 이야기로 승화시켜 냈는지 경탄할 정도입니다. 제가 이 설화를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두 가지 측면에서 스스로를 콩 나무로 커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는 그대가 아기장수가 되면 용마는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변 마을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고 끝내 살아나서 비상하라는 메세지 입니다. 직장이란 곳은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수많은 욕망, 지향, 다툼이 다양한 함의를 띤 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피드백 되는 곳입니다. 이만한 인생훈련소가 없습니다. 비록 많은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구석이 있을지라도 여러분은 자신을 향한 성찰을 통해 ‘콩 나무’의 본성을 키워 나가고, 아기장수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그때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이 정도로 성장했구나 하는 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회사는 끝내 콩 나물 시루에서 킹콩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