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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오늘을 헌 날로 보낼까, 새 날로 맞이 할까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by 전경일 2009. 11. 25.

사업하는 지인 사무실을 들렀다가 사무실 한켠에 걸려 있는 사훈을 우연히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은 다 좋은 날, 더 이상 헌 날이 아니면 다 좋은 날.”

어느 회사의 슬로건과도 비슷해 보이는 글귀를 보며 저는 잠시나마 사념에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직장인이란 이름으로 타성에 젖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새날조차 헌날로 환치시키며 퇴행적 일상을 살고 있을까? 오늘도 어제와 같고, 내일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때로 주변에서 ‘새날’과 ‘헌날’을 혼동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측은함마저 입니다. 혹여 그들 눈에 제 자신이 영락없이 같은 꼴로 비춰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제 자신을 염려해서 하는 말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우리는 월급이라는 임금을 받지만, 회사라는 곳은 월급을 곶감처럼 빼먹으러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경영자나 소유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직장은 가장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든 못하든,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를 개발시키는 곳입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경제적 성취를 이루는 곳이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고,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직장인이란 이름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합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업무를 통해 우리는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회사에서 보냅니다. 대략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는 하루의 황금시간대이자, 하루의 인생에서 가장 절정의 시간대입니다. 이런 시간은 제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오늘도 무엇엔가 가치 있는 것에 몰두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시간을 훌륭하게 보냈는지 물어 보게 됩니다. 아니면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못 찾은 채,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합니다.

십 수 년전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제가 알던 몇몇 사람들 중에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킬링 타임’이라고 표현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 친구들은 “갈 데 없어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니까,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내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시간일텐데 허망하게 보내서야 너무 아갑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근황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하나 같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투성이인 채로 ‘시간을 죽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도 핍진해 있었을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시간의 대부분을 술 마시고 취해서 보내고, 네트워킹 한답시고 서로 얽혀 보지만, 정작 회사에는 어떤 의미로운 유효경쟁력도 불어 넣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친구는 술 마셔서 간 망가뜨리고, 위장은 쓰레기로 채워 넣고, 컨디션은 늘 엉망인 채로 살아간다고 푸념도 합니다. 그러다가 사십대에 이르러 쓰러지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울분이 치솟는다고 합니다. 낡은 방식으로 새날조차 헌날로 전환시켜 버리는 셈이죠.

누구든 매일 보내는 직장에서의 삶이 뜻 깊다면, 그만한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루 24시간 중 한 시간도 일하지 않고 보낼 수만은 없습니다. 일없이 보낸다면 정말이지 넘쳐 나는 시간이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을 죽인다.’고 표현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인생은 지루해서는 안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엔가 몰두하고, 그 시간을 즐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이 인생입니다. 이왕 보낼 시간이라면 가치 있는 시간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자신의 인생을 위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낡은 것에 붙들려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은 무엇입니까? 출세하고 좀 더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한 수단인가요? 그보다일에는 좀 더 나은 가치가 일에는 숨어 있지 않을까요? 회사의 일은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이라는 의미만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여러분은 믿기 어렵겠지만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거들 떠 보기 싫은 일이더라도, 그 일은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실업, 사오정이 휘몰아치는 시대에 일은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일이 없어서, 일 때문에, 일 속에서 늘 번민케 합니다. 우리는 일에 대한 의미를 재인식해야 합니다.

대학을 나와 한 종교계 언론사에 취직한 친구와 저녁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는 저와 비교해 자신의 급여는 적으나 사소한 것에 자신은 더 큰 만족을 얻는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그것을 ‘마이크로 만족’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는 직장생활 동안 선교 활동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취재키 위해 아프리카 우간다, 남아공, 탄자니아 일대는 물론 남미의 페루, 동유럽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지 않을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은 그에게 어떤 직장도 제공할 수 없는 가치를 준다ㄱ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비지니스 하는 사람들은 늘 어떤 나라를 가든 수도나 대도시에서 미팅하고, 컨퍼런스나 전시회에 참석하고나면 획 돌아오는 게 고작인데, 그 친구는 선교회가 있는 오지까지 몇 시간이고 경비행기나, 짚차를 타고 가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생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그건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구상에 태어나 지구의 끝까지 가 보고 살다 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야말로 월급 받고 이런 일을 한다면 흥미진진한 것이죠.

그런데 더욱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자신의 삶을 늘 새로운 것으로 충전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늘 같은 곳에 있으나, 새롭게 변하는 것을 맞이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산을 타고, 산의 다른 모습을 영상에 담아두고, 산세를 기록합니다. 그는 제게 산 이야기를 한번 써보라고 권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산악인이 1천만이나 되니 책도 많이 팔릴 거고, 문학적으로도 산과 산사람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엔 별로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친구의 얘기가 아니어도 산에 푹 빠진 저는 산 동무 삼아 그와 겨울 설악산에도, 지리산에도 가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친구가 하는 일은 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셈이죠. 게다가 시쳇말로 뽀다구가 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보다도 그 친구의 만족도가 훨씬 높습니다. 저는 일에 푹 파묻혀 지내지만, 그 친구는 일을 요리합니다. 완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출을 얘기하지만, 그 친구는 보람을 이야기합니다. 누가 더 현명한가요? 누가 더 날마다 새로운 삶을 맞아들이며 살고 있나요? 한번 진진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십 여 년 전 졸업을 하고 많은 대학 친구들이 본인의 취향과 무관한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중도에 그만 둔 것을 보아왔습니다. 끝내 길을 못 찾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 즐기며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일에 대한 이전의 관념이 옳은 것인지는 사회 초년 무렵 일찌감치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즐길 수 없는 일은 고통이며, 그런 일을 하는 동안 하루하루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날에 불과할 것입니다. ‘헌 날이 아니면 다 좋은 날’이라는 어느 지인의 일과 생활에 대한 철학은 일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이나, 일에 푹 빠져 지내는 저에게나 다 같이 생각해 볼 문제일 것입니다. 헛바퀴가 돈다면, 돌을 괴서라도 빠져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새날을 맞이하는 일에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