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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누르하치: 글로벌 CEO

불모의 자연조건이 야생성을 강화시킨다

by 전경일 2010. 5. 15.

예로부터 농경민과 유목민이 만나는 접점은 조용할 리 없었다. 거기엔 교역이 있었고, 끊임없는 욕망이 들끓었다. 주로 이 지역의 자연 현상은 최소한의 강우량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물 부족은 주기적으로 흉년을 가져왔다. 농경민과 유목민의 교역은 쉽게 정치적인 관계를 가져왔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만일 중국의 힘이 약화되면 이는 곧 중국과 민족의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예컨대, “거란족이 세운 요는 지리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북경과 만리장성 바로 북장 현 열하지방에 중심지를 잡았다. 이 지역은 살 수 없을 만큼 춥고(열하에서는 1년중 100일만이 서리가 없는 날이다.) 강우량도 겨우 10내지 15인지 밖에 안된다.” 열악한 자연 환경에서 정복자는 나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업도 열악한 조건에서 창업돼 회사를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없는 자원 대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국내 기업으로 대표적인 예가 포스코이다. 철강을 뽑아내는 원광석의 대부분을 수입해 가공 처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포스코는 세계적인 제절 회사로 자리 잡았다. 없는 요소 보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던 것이다.

중국의 일부 또는 전체를 지배한 민족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초원에서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원의 주인이 교체되는 배경은 초원과 농경의 접점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때로는 극한의 자연 조건이 왕조 교체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사실상 중국 역사의 상당부분은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연은 그리 순종적인 대상이 아니다. 이들 초원의 부족들은 평소에는 그들 지역에서 살다가 가뭄이나 식량 부족이 생기면 중국 본토로 자연스럽게 진출해 나갔다. 치열한 생존 싸움이 이 접점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초원은 마치 그들 유목민을 물처럼 가득 가두어 놓고 있다가 일시에 중국 본토로 풀어 놓는 보(洑)와 같았다. 만리장성 밖의 중앙아시아를 보러 라도 크기는 중국 본토보다 2배나 되었지만, 인구는 거의 25분의 1이나 3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다.

유목민의 생활은 알다시피 말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은 기동력의 상징이며, 동시에 말을 탄 궁사들로 이루어진 군사적 우월성은 한족에게 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는 강력한 기동력의 원천이었고, 속도를 통한 경쟁력이었다. 중국을 지배한 온갖 민족들의 경쟁력은 근세 이전까지 말(馬)에서 나왔다.

목축 경제는 곡물보다도 동물과 함께한다. 그러다보니 이동성이 생긴다. 유목민들은 양가죽으로는 의복을 만들어 입고, 양모로는 천막을 만들어 하늘을 가린다. 초원에서의 양은 부의 척도이다. 이들은 주식인 양고기와 치이즈 버터도 모두 동물로부터 얻었다. 자립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목축 경제는 생필품을 얻기 위해 정착지역과는 최소한의 교역만을 필요로 했다. 육식을 보충할 곡물의 확보는 이 같은 교역을 통해 얻어졌다.

하지만 자원이 부족해지면 이들 유목민들은 태도를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가뭄, 기근 등의 자연 현상에 따라 주기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유목민들은 농토를 떠나면 생산수단을 잃어버리는 농경민들과 전혀 달랐다. 초원의 목자(牧者)들과 수렵자들은 중앙지도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세력을 모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약탈을 통해서라도 생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즉각 동원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맡은 바 임무에서도 멀티형 인간들이었다. 그게 초원에서의 생존 방식이었다.

“초원의 목자(牧者)-전사(戰士)-수렵자(狩獵者)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단 한가지 직업에만 자신을 국한시킬 수 없었다. 부녀자들은 야영지의 사역군들이며 관리자들이자 그들 자신들도 전쟁과 정치를 제외하고는 유목 생활의 모든 문제를 다룰 능력자들이었다.“

이 같은 기록은 유목민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을 위한 삶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말안장만 타면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안장 위에서 태어나, 안장 위에서 죽었다. 안장 위에서 세상을 보고, 세상과 교류했으며, 더 큰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내다보았고, 내려 보았다. 달리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 사항이었다.
ⓒ전경일, <글로벌 CEO 누르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