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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거물못 , 째못, 융습합(融習合)의 새로운 지식 세계(1)

by 전경일 2010. 5. 15.

우리의 전통 고건축은 통섭의 멋과 힘을 한껏 드러내 준다. 못하나 박지 않고도 전체 건물이 한 덩어리가 된다. 천의무봉한 우리 고건축의 비밀은 무엇일까? 나무와 나무를 정확하게 교차시키고 끼워 맞춰 한 몸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못이 없어도 홈을 파서 연결하면 시간이 갈수록 한 덩어리가 된다. 우리 건물이 소나무 재질을 쓴다면, 노송나무를 고건축의 주재료로 쓰는 일본은 시간이 갈수록 나무가 못을 조여 주게 한다. 나무를 고정시키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일본 장인이 지닌 기술 정신의 기저는 효율성이요, 우리는 합치와 조화다. 이 차이가 지금까지의 산업의 차이를 가져왔다. 이처럼 우리의 건축물은 못 하나 박지 않고도 집 전체를 하나로 묶어 낸다. 천년을 견뎌온 목조문화재의 비밀은 바로 이 같은 ‘이음법’에 있다. 나무로써 나무를 붙들고, 재질을 서로 보강해 준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한 덩어리로 묶여진다.



고건축이 아닌, 일반 건물의 경우에는
연결을 위해 ‘거물못’을 쓴다. 나무를 이으려면 벌리기도 해야 하는데, 이때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박아 넣는 ‘째못’이라 불리는 벌림쐐기가 등장한다. 벌리고 잇는 변증법적 통일 과정을 통해 나무는 전체로써 건축물이 되게 된다. 통합적 원리가 이러첨 건축물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21세기형 인재는 거물못과 같으며, 이처럼 묶을 때 보다 포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째못과 같이 자신의 고유 가치를 쪼개고, 분리해서 취사선택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다. 생명을 분해하는 일은 생명 자체를 탄생케 하지는 못한다. 어떤 것들은 이어질 때 자기 존재가 드러난다. 미래형 인재유형이 이와 같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인재를 대하는 데 있어 분리적 방법을 취해 왔다. 즉, 통합성을 막기 위해 쐐기(뿔송곳wedge,∨)를 박는 식이었다. 분리해보면 거기서 무엇인가가 나올 줄 알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개별적으로 산재된 지식에 매몰되어 총체적 지식에서 한걸음 더 멀어졌다.

이제는 묵는 게(︹)필요하다. 1은 개별이요, 2는 합(合)이다. 3, 4, 5는 섭(攝)이요, 이 모두가 통(通)하고 합(合)해서 하나를 이루면(成) 이를 크로스 오버(cross over)라고 한다. 즉, 통합성(通合性)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통합성은 총합된 새로운 세계를 가져오고, 이를 경영에 비유하면, 사업에서는 동동(同業)이 아닌, 통업(統業)을 가져온다. 21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은 통업을 기초로 하여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럴 때 각기 분리되고 따로 떨어져 있던 것들은 하나로 모여 생명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지식을 어떻게 묶을 것인가? 무엇부터 통섭해 나가야 할까? 미국 실리콘벨리에 있는 디자인 회사인 이데오(IDEO)는 통섭이 기업에 적용되는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는 주로 장난감, 의료 기계, 쇼핑 카트, 사무 가구,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데오는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 설계는 창의적인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고 본다. 창의적 인재 확보를 위해서 이 회사는 전공을 초월한 인재 채용 정책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이 회사의 채용 전략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전공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기술은 겸비하되, 전공 외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는 박식가(博識家)를 채용하는 것이다. “400여명이 넘는 직원 각각은 문화인류학, 컴퓨터과학, 공학, 그래픽디자인, 보건, 심리학 등 아주 광범위한 배경을 갖고 있다. 나아가 이들 중에는 예술가이자 MBA 학위 보유자, 해군 사관학교 졸업생이자 역사학 전공자, 건축학 석사이자 가구 디자인이나 골동 자동차에 관심 있는 자 등 창의적 인재” 가 포진돼 있다. 이데오는 이처럼 기존에 우리가 지닌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중 경력자(혹은 이중 전공자)를 뽑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지적 경험으로 삼는다. 여기서 새로운 가치는 탄생한다. 그것이 이데오가 비즈니스에서 남다른 혁신을 가져오는 까닭이다.

복합 전공 인력은 비단 이데오에서만 찾고 있는 인재형은 아닌듯 하다. 헤드헌팅업체인 HR코리아에 의하면, 최근 기업 사이에 불고 있는 영역파괴 채용 열풍에는 나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초영역 인재 채용은 지원자가 가진 창조성과 열정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많은 기업이 해당 직무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기존의 천편일률적 채용방식에 한계를 느껴 앞 다퉈 초영역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 게임업체에 입사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게임업체에서 시나리오 개발업무를 하려면 4년제 대학을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한 것보다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 구성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기업이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시나리오 구성력을 인정받은 공모전 수상자를 채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는 설명이다. 인재 채용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영의 많은 부분에서 통섭형 인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각광 받을 전망이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을, 지식 간 영역 초월을 거물못과 같은 연계성으로 뛰어 넘는다. 통섭은 이처럼 초영역 인재를 지향하는 문화와 경영 풍토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경일, <초영역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