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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산에서 나무를 보았나

by 전경일 2010. 11. 12.

나를 보되 숲을 보고, 숲을 보되 직원들을 보라. 그중 어디 하늘을 찌를 재목이 있는지...

등로 옆의 메숲을 지날 때면 산꾼 경영자들은 빽빽이 도열한 나무를 보며 상념에 젖어든다. 나무들이 이만큼 자랄 때까지 땅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작고 여린 싹을 내놓아 주었을 게다. 씨앗들은 어디선가 날아와 제자리를 잡기까지 수없이 방황하고 자기연민과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힘들게 제자리를 잡고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쑥쑥 자라난 것을 보면 감격스럽다 못해 탄성이 나온다. 대체 어떤 싹이 이처럼 우람한 모습을 만들어냈을까?

기름지고 넙데데한 땅일수록 나무들은 미끈하게 솟는다. 그런 땅을 만난 씨앗들은 누구보다 행운아이다. 그래서 나무도 팔자소관이겠거니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키워낸 토양에만 눈이 가는 건 아니다. 비탈길이든 바위틈이든 비집고 들어가 숫한 세월을 인고하며 온몸으로 바위를 붙잡고 뿌리를 뻗어 내려간 녀석들에겐 더 큰 애정이 솟구친다.

인생사 자기가 할 나름이라는 원칙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그 녀석들을 보면 환경 탓만 해온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산의 후미지고 황폐한 조건을 이겨낸 끝에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흡사 그늘에서도 묵묵히 제몫을 다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느껴진다.

 

 
열악한 자연은 그저 환경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싸가지 없는 나무들은 산 탓만 한다. 그래서 삐뚤빼뚤 왜곡되게 자라고 서로 뒤엉킨다. 늘 뭔가가 부족하니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직원들 같다.

송문호 사장은 늘 메숲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꼿꼿하게 제몫을 다하며 숲을 이루는 나무를 보면서 상념에 젖는 것이다.

‘직원들을 저렇게 키웠다면...’

속 터지게 하고 답답하고 옹그라진 직원들의 모습이 마음속을 휘휘 휘젓는다. 작은 생각만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잡목을 보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든다. 못난 숲을 보면 배퇴감(背退感)과 그 같은 직원을 길러낸 자신에 아쉬움이 앞선다. 그러나 미끈하게 뻗어 올라간 숲에서는 그 숲을 닮은 직원을 길러내고 싶은 간절함이 더해진다.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려워도 가까스로 월급 날짜를 맞춰주면 늘 월급봉투의 두께를 투정하기 십상이고, 자기가 없어서 회사가 굴러가지 않을 것 같다 싶으면 그간 공 들인 거 다 무시하고 냅다 회사를 바꿔 타는 직원, 기술이 좀 있다 싶으면 수시로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직원, 실력도 없으면서 억수로 잘난 체를 하는 직원들의 뒤틀어진 모습을 생각하면 입맛이 탕약을 삼킨 것처럼 쓰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대개 저 살 궁리만 한다. 송 사장은 눈을 질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바꾸는 게 낫지. 직원들이 내 맘 같지 않다고 탓해 봐야...’

나무는 산을 닮고 직원은 사장을 닮는다고 하던가? 송 사장은 자기 책망을 앞세웠다.

‘내가 회사의 산이니 부족한 직원들이 늘 어떤 식으로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

그는 산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직원을 보고 있었다. 산이 펼쳐 놓은 풍경을 보며 경영의 산에 함께하는 숱한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는 등로를 가로막는 치받이길, 바윗길, 에움길 같은 것들은 산행을 하며 겪는 흔하기만 한 장애물들, 그 장애를 넘어 등로변에 펼쳐진 온갖 나무들을 보며 나무를 키워낸 산을 본다. 등로를 꼭꼭 다지고 선 나무의 인고와 함께 한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을 한다는 것은 말이죠, 헛되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기껏 키워놓으면 대기업으로 날아가고 돈 많이 준다면 언제 그랬냐 싶게 훌쩍 떠나가죠. 이런 일이 일상사죠. 그렇다고 대기업처럼 대우를 해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인재 고갈입니다. 쓸 만한 사람 찾느라 발품을 팔다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그래서 산을 찾게 되죠. 산에 와서 나무들을 보면 스스로 반성도 합니다. 저런 나무를 품는 산이 부럽고 나는 왜 저런 큰 산이 되지 못하는가, 왜 큰 나무들을 품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죠. 내가 아무리 커다란 비전을 얘기해도 그때뿐이고 누구도 사장이 기울이는 공은 알아주지 않아요. 참 씁쓸하죠.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잡목만 우거진 산을 보면 불을 지르고라도 종자 좋은 나무로 다시 심고 싶다는 송 사장은 그래도 산을 내려갈 때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우리 업계에서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사업한 지 한 30년 되셨어요.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여보쇼, 송 사장. 너무 실망할 것 없어요. 당신도 언젠가 모시던 사장 섭섭하게 하고 나온 거 아니오. 사장은 전생에 죄가 있어서 하는 거라니까.”

 

그러면서 그 분은 ‘중소기업은 그저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생각하고 경영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30년을 겪어보니 그 말이 딱 맞더래요.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더라고요. 하지만 좀 억울하긴 합니다. 숱하게 소주잔 돌리고 상갓집 찾아다니며 밤샘하고 애 입학이나 졸업식 챙겨줘 가며 할 일 다 해 줘도 쥐꼬리만한 잇속에 떠나더라구요. 개중에는 형님 소리하며 달라붙던 녀석이 꼭 같은 업종의 회사를 차리기도 합니다. 실망스런 인간 참 많습디다.”



송 사장이 산을 찾는 이유는 땀을 실컷 흘리고 정상에서 바람을 맞으면 인간사에 찌든 때가 모두 씻기는 듯해서라고 한다. 마치 뽕을 맞은 것처럼 시름이 훌훌 날아가는 맛에 취해 산에 오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들이 산에 오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산 아래서도 수없이 생겨나지만, 무엇보다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면 산은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주고 가슴을 쓸어준다. 송 사장은 자신이 전생에 산에 뿌리 내린 나무라 그곳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은 뭐 좀 해보려고 산 아래로 내려간 홀씨에 불과해 바람만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아마도 많은 산꾼 경영자가 그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산을 탄다. 숯처럼 새까매진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며 산을 오른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