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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바닷길을 여는 집단지성을 살려라!

by 전경일 2011. 3. 23.

지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사실’보다 지금까지 믿고 지켜온 ‘관성’에 집착한 역사가 오랫동안 바닷사람들을 지배해 왔다는 점이다.

바닷길은 바람과 함께 해류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170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대서양 지도에는 해류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역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은 북아메리카 연안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해류를 이미 경험하고 있었고, 이 해류가 멕시코 만에서 흘러나온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지역의 이름을 따 ‘멕시코 만류’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항해자들은 해류의 존재를 인식했지만, 그것이 하나의 ‘지식’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해류를 무시한 항해는 항해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었다. 정확한 바다 지식은 효율적인 항해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이 지켜온 ‘관성’은 계속 지켜졌다. 1768년 영국의 보스톤 관세국은 영국에서 뉴욕으로 수송되는 우편물이 로드아일랜드로 가는 상선보다 항상 정해진 것처럼 수 주일이나 더 많이 시일이 걸린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왜 우편선은 상선보다 늘 느릴까? 여기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한 사람은 열성적인 과학자 벤자민 프랭크린이었다. 그는 이 두 도착지 사이가 하루의 항해 일정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우연히 런던에 있는 사촌인 포경선 선장 티모시 폴져에게 이 문제를 물어 보았다. 당시 폴져는 직업상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고래를 쫒아 만류 가장자리를 늘 항해하고 있었으므로 이 만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폴져는 상선의 선장은 대부분 아메리카인이기 때문에 서쪽 방향으로 항해할 때에는 만류의 흐름을 거슬러 가지 말 것을 포경선 선장에게서 배워서 알고 있지만, 영국 우편선의 선장을 그렇지 못하다고 말해 주었다. 영국인 선장은 해류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포경선이 고래를 뒤쫓을 때 우편선이 흐름을 거슬러 나가는 것을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선원들은 그때마다 그들이 해류를 거스르고 있고, 유속이 시속 1.8km나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며 흐름의 밖으로 나와 항해하도록 충고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부들이 뭘 안단 말인가? 그들은 그들보다 지식이 짧고 정규 교육도 받지 않은 어부들에게서 바다의 지식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프랭크린은 이 해류에 대한 주의 내용을 담은 해도를 작성해 영국 폴머스 우편선 선장들에게 발송했다. 그러나 많은 선장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해도를 처박아 두었다. 지도가 발행된 다음에도 그 후 수십 년 동안 아메리카로 항해하는 모든 배의 선장은 지도를 무시한 채 만류를 거슬러 항해하여 수 주일이나 더 허비했고, 결과적으로 계속해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그간 쓴 시간과 비용을 따지자면 엄청난 돈이 바다에 그냥 버려졌던 것이다.

프랭크린의 연구를 더욱 강화한 것은 미해군 지도 제작관인 매튜 폰테인 모리였다. 그는 1800년대 몇 만권이나 되는 항해일지를 정리하여 바람과 해류의 관찰 내용을 세심하게 선별해 해도에 표시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고자 해군과 상선의 선장에게 특별히 만든 ‘항해일지 요약’을 배부한다. 각 일지의 뒷부분에는 12페이지에 달하는 여백이 남겨졌고, 선장들은 그 여백에 항해시 발견되는 특정 해류, 바람, 수온, 기타 관련 현상을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모리가 작성한 해도를 이용해 어느 작은 상선의 선장이 보통 110일 요하는 발티모어와 리오데자네이로 사이의 왕복을 35일이나 단축하면서 모리의 해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식이 검증된 것이다. 모리는 항해일지 기입에 협력해 준 선장들에게 그의 출판물을 제공했고, 그로 인해 자료는 속속 더 많이 모여들었다. 모리는 해류의 움직임에 대해 더욱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 하던 중 드디어 그 자료를 손에 넣을 새롭고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된다. 선원들에게 때때로 날씨와 배의 위치를 기록한 종이를 병에 넣어 바다에 던져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이 종이에는 이 병을 발견한 사람에게 발견한 날짜와 장소를 기입해서 워싱턴의 모리에게 회송해주도록 부탁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선원들은 이 종이를 병 속에 넣어 해류에 던졌고, 얼마 있다가 이 병들은 건져 올려져 모리에게 종이가 전달됐다. 이런 정보 입수 방법을 통해 모리는 해도에 해류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랭크린에서부터 모리까지 이들은 평범해 보이는 현상에서 원인이 뭘까를 찾아내고 이를 지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현장의 어부에게 지식을 전해 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가장 정확한 해류 지도를 만드는 집단지성을 활용했다. 인터넷과 소셜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훨씬 전에 만인의 지식을 끌어 모아 새로운 지식세계를 열었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현상 속까지 파고들려는 호기심과 치밀한 노력은 오늘날 기업에서 애기하고픈 창조니 혁신이니 하는 말들의 대표격 아닐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