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경영/통섭 / 초영역인재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11. 5. 2. 10:06

기존의 혁신과 통섭형 혁신의 차이

1997년 11월 이후, 정확하게는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에서처럼 ‘혁신’을 좋아한 국가나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간 혁신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혁신만능에 빠진 혁신피로가 우리 사회를 장시간 가위눌리게 한 적도 없다. 혁신을 하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으로 생각해 과대망상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혁신에 대한 오해도 적잖은 몫으로 작용해 왔다. 이처럼 과거 10년은 혁신 증후군이 전 사회를 지배해왔다.

혁신은 등가죽을 벗기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대신 등가죽속 살과 뼈를 통 채로 들여다봄으로써 안팎을 꿰뚫어 보고, 몸 전체를 들여 다 보아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혁신의 본질이다. 투시적 혁신이 경영에 도입되면 가죽만 벗겨내는 구조조정이라든가, 사업 재편, 인적 청산, 효율성 중시와 같은 매몰된 혁신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가 나올 법하다. 분석적인 것만이 아닌, 전체를 꿰뚫어 보는 가운데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간 한국 기업의 선진문물에 대한 벤치마킹은 나름 유의미했으나, 그것은 잠망경을 끼고 물속에서 수면 위를 올려 다 보는 식에 불과했다. 관망을 통한 사업 기회 창출이 대세였다. 이런 태도는 경영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 넣은 면도 있지만, 그것으로 활력의 원천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기업은 원천소스(source)보다는 어플리케이션(응용)의 적용에 급급해 왔다. 그 결과 현재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미래를 담보하는 성장 엔진을 찾기도 어려웠거니와, 이전의 틀을 뛰어 넘는 시도조차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ㆍ경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과거에 성장 원천이었던 핵심경쟁력이 환경이 바뀌며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로 전환되는 극적인 현실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실의 모순에 대한 각성은 과거에 일어난 창조적 활동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살펴보도록 만든다. 전환기 한국 사회는 창조의 본질을 보다 적극적으로 희구하고 있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보다 강하게 창조성을 구현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경영은 숫자를 도입하여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것이며, 상상력은 숫자가 창의적 방식으로 마법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숫자는 상상력을 이끌지만, 그 결과 상상력을 압도하기도 한다. 이 양자간 결합이 경영인 것이다.

어느 시대건 궁극적으로 창조적이지 않은 경영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 이 점에 주목할 때 경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지를 열어젖힌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선 세밀화를 보듯 과거를 세세하게 알아야 한다. 민족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발성이 발현된 시대와 인물들, 그리고 그 시대의 담론, 책무, 비전을 읽어 내는 통사적(通史的) 접근은 전 역사를 꿰며 시기별로 발현된 창조의 근간을 꿸 수 있는 주요한 방법론이 된다. 역사의 힘이 경영에 접목되는 과정이 이러하다.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법 및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 통합적 시각 없이 ‘소 닭 보듯’ 분리되고 격리된 시대의 제한적 프레임으로는 산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없다. 기존을 뜯어 고치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작가 조정래는《오, 하느님》에서 지금까지의 문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 나간다. 이는 다른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받아낼 수 있는 그의 언어예술이 정석 변환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부단한 창작활동을 통해 창조성이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예술적 경지에 이르는 경영은 현재의 문제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규명해 낸다. 그러므로써 표리(表裏)가 상통(相通)하는 투시력을 얻어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격을 달리한 혁신 역량이며, 본질적 혁신을 갱신해 낼 수 있는 조직의 역량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혁신의 방식조차 바꾸게 된다. 요즘엔 혁신의 의미가 보다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일은 혁신의 과제가 아닌, 지적ㆍ경험적 광합성에서 나온다. 즉, 건전한 경쟁을 통해 조성된 기회의 빛면을 성장을 축으로 하는 수종 분야에 투영함으로써 땅 밑에서부터 끌어 올린 수분으로 조직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두터운 창조적 인력의 풀은 이 같은 혁신 수행에 절대적 요소가 된다.

역사적인 예로써, 세종시기 왜구에 대한 대비책은 국방 안정에 매우 중요했는데, 이때 세종은 조선 선박에 비해 일본 선박이 빠르고 경쾌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원인을 분석해 조선(造船) 기술의 개량에 나선다. 그 일환으로 세종 27년에 일본 기술자를 초빙 귀화케 해 ‘호군(護軍)’이란 벼슬을 주어 배를 만들게 한다. 당시의 호군(護軍)이란 직책은 장군(將軍)급인 정사품 무관직에 해당되는 자리로 선박혁신을 위해 세종은 파격적인 인사를 취했던 것이다. 세종은 벤치마킹을 통해 우리만의 고유한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강화해 나갔다.

이 무렵 인재들은 한계나 정해진 선을 두지 않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각종 프로젝트에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불어넣었다. 이들 창조적 집단은 지식과 경험을 조립하고 분해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상상력을 월등히 차별화시켜 배가시켰다. 당연히 지식이 축적되며, 모방의 단계를 뛰어 넘어 창조의 임계치에 이르게 되었다. 세종 시기의 특징은 다방면에 걸친 지식의 어우름과 통섭형 지적 경험을 통해 복합 시너지를 냈다는 점이다. 각 방면에 걸친 지식과 연구 활동이 크로스 오버(cross over)되며 새로운 창조 영역을 개척해 내는 효과를 내게 된다. 연속순환 창조의 사이클이 만들어지며 지속갱신 문화융성의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활자분야에서의 기술적 진척은 합금술의 발전을 가져오고, 종이제조 능력을 배가시켰다. 나아가 종이의 원료인 일본산 닥나무의 도입을 가져오고, 자체 경쟁력화시키는 상호 유기적 발전구조를 가져왔다. 그 시대의 실험을 통해 얻은 창조적 지식은 경제와 문화역량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얻어진 ‘원천적 종자지식(original seed knowledge)’이 사회 전 분야에 확산되며, 세종시대는 말 그대로 르네상스가 만개되는 황홀한 경영세계를 펼쳐 보이게 되는 것이다.

본질과 괴리되어 온 혁신시대는 밀쳐두고, 이제는 통사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조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 우리의 역사는 가장 뛰어난 통섭의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집현전이 역사 속에서 꺼내져 새로운 창조시대를 여는 창조집단으로 기능하였듯이 영역을 뛰어 넘는 인재들의 활발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인재와 경영의 선순환 사이클 구조를 시스템화시키하지 못하면, 기업은 성장원천에 접근하기 어렵다. 혁신만으론 부족하다. 여기엔 그것을 뛰어넘는 창조가 있어야 한다. 창조의 끝은 창조다. 창조의 파노라마가 기업의 뼛속에 박혀야 미래에 생존할 것은 자명하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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