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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세종의 휴가 100배 즐기기

by 전경일 2009. 2. 3.

"내가 올 때 도로가 극히 평탄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궁전 역시 장대하다. 이와 같이 큰 폐를 짓고 여기에 편안히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등창으로 고생한 세종은 신병 치료를 위해 종종 온천으로 휴가를 갔는데, 휴가를 가고 오며 보게 된 백성들의 노고에 대해 경영자로써 느낀 자기 심경을 피력한 말이다.

그 무렵, 임금이 온천행을 할 때에는 어떤 행차가 필요했을까? 당연 가마와 마차가 필요했을 것이고, 행렬이 지나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했다. 가마꾼만 해도 대략 500여명이 필요했다. 물론 욕실과 거처도 새로 지어야 했다. 또 수백 명에 이르는 수행원들을 접대해야 하니까, 임금이 지나는 길에는 실로 엄청난 민폐가 뒤따랐다. 문제는 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래에서는 알아서 긴다는 것.

임금이 떳다하면 임금의 온천행을 구실로 지방 수령들이 백성들로부터 접대비용과 욕실 및 행궁 건축비를 마구 거두어 들였다. 물론 의전 및 기타 제반 비용에만 쓰이지 않고 지방 방백이 상당수 챙겼을 것은 두 말할 나위없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우려한 세종은 민폐를 철저히 방지하도록 조처하고, 자신의 온천행을 구실로 백성들로부터 특별세를 거두어 들이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세종은 욕실 건물도 새로 짓지 아니하고 이전의 시설을 재수리해서 쓰도록 지시했다.

물론 세종이 휴가를 간 것은 단순히 놀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요양을 겸한 출장식 휴가였다. 그리하여 세종은 휴가를 가서도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훈민정음 창제 초안을 퇴고하기조차 했다.

그런 임금이 강원도 평강 온천에 갔을 때, 백성들의 사는 모양을 보고 황보인과 김종서 등에게‘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세종이 군림하는 CEO가 아니라, 백성과 함께 한 CEO라는 것은 이런 인간적 면모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세종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그의 일관된 국가 경영 정신, 즉 위민(爲民)철학 때문이다.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그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 한 몸 편하자고 임금 노릇을 한 CEO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떳떳할 때에라야 스스로 위민(爲民)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 철학이 바탕이 되어서일까? 세종은 말년에 접어들어 눈병과 다리 통증이 더욱 악화되자, 온천 발굴과 온천행을 통해 알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특이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다름 아닌 찜질방 사업.

잘 알다시피 세종은 젊어서부터 다리가 아팠다. 이는 너무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생긴 병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때 그가 택한 자기 치료법은 온천욕. 그리하여 온천욕은 세종의 재임 기간 내내 치료와 요양의 수단으로 계속되게 된다.

온천욕을 하다보니 직접 효험을 보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세종은 백성들과 함께 사우나나 찜질을 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원책을 내놓는다.

우선, 한증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시설을 만들려고 했다. 또 온천 발견자에게는 포상을 내리는 제도도 마련했다. 그리하여 1423년 대사승 명호(明昊)가 목욕탕 시설을 만들어 병든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나서자‘한증보(汗蒸寶)’라는 온천 찜찔방을 세워 지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한증 치료로 병을 고친 환자가 계속 늘어났지만, 가난한 환자들은 치료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바로 한증보(汗蒸寶)였다. 한증보(汗蒸寶)의 ‘보(寶)’가 바로 요즘의 재단(財團)법인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단은 이렇게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이 때 세종은 한증보의 운영 경비로 쌀 50섬과 무명 50필을 기탁한다. 결코 작지 않은 지원이었이다.

그 후 세월이 한참 흘러 세종 30년 2월이 되었을 때에도 세종은 전라도 무장현 염정에 목욕간을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목욕하여 병을 낫게 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온천욕이 효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일본인 병자들에게도 치료받게 해 주었다. 정말 훈훈하고 정감 어린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바야흐로 휴가철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내주까지는 피크를 이룰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 CEO들은 이번 휴가를 어떻게 보내기로 했는지?

오랫만에 가족과 함께 행락객의 일원으로 쉬고 오는 것도 의미있다. 하지만 좀 더 뜻깊은 휴가를 계획해 봄은 어떨지?

휴가 기간 동안 남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작년 수해 복구 현장을 찾아가 일손을 덜어주고, 어려운 이웃들이 모여 있는 각종 사회 복지단체를 찾아 힘이 되어주는 CEO들이 늘고 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휴가를 통해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돌아보며, 자기를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물론 멋진 휴가를 보내는 한 방편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릇 그대는 세상을 경영한다고 하는 사람 아닌가?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