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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출산율을 잡아라! 출산 휴가에 대한 세종의 입장

by 전경일 2009. 2. 3.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임(可妊)여성 1인 출산율이 1.17명으로 떨어져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출산은 우리의 경우 한 민족의 씨알을 유지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국가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주체를 생산해낸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극단적 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출산율이 떨어져 후세가 줄어든다면 이는 민족 보전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다음 시대를 이끌어 나갈 주인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애를 낳아 키우는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변화하는 젊은층의 결혼관, 가족관도 크게 작용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녀 양육에 대한 비용이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 하나만으로도 출산 연령층의 출산 의지를 꺾어버기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는 애를 낳아 키우는 일을 여전히 여성 개인 및 한 가정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 임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문제다. 기업에서는 여전히 출산 휴가다 뭐다해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에 애를 낳는 것 자체를 은근히 꺼려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다음 세대를 낳아 이 사회 전체가 돌보는 가운데 우리 아이를 키운다는 의식과 여건이 미흡하다.

 

임산부를 임산부와 태아를 포함한 여권 문제와 그들을 다음 세대의 생산자, 계승자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복지문제 차원만이 아니다. 여기엔 바로 한 사회를 지탱하는 건전한 의식, 그리고 국가 경영의 철학인 애민, 민본 사상이 녹아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국가경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세종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세종은 임신, 출산과 관련된 것조차 애민과 민본사상에 뿌리를 둔 정책을 펼쳤다. 임산부의 여권 문제는 세종이 반드시 개선하고자 하는 중점 사항의 하나였다. 대표적 예가 세종 12년에 실시된 임신ㆍ출산 휴가 법령의 시행이었다.

 

 

당시 가장 하층 계급이었던 관비(官婢)들의 임신ㆍ출산 현실을 본 세종은 땅을 친다. 그 당시 하급 계급의 임신ㆍ출산 여건은 인권이 가장 유린되는 처참한 영역이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세종은 자신의 여성관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행해 나갔다.

 

“옛날 공노비(公奴婢)는 반드시 아이를 낳고 7일 후에 일을 하였는데, 아이를 두고 일을 하여 어린아이를 상하게 하는 것이 불쌍하여 100일을 더 주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산일(産日)에 임박할 때까지 일을 하고 몸이 피로하면 그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를 낳는 자가 혹 있다. 만약 산월(産月)에 임박해서 일을 한 달 제해 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상정소로 하여금 이 법을 입안하도록 하라.”(세종12년 10월 19일)

 

이처럼 세종은 관비(官婢)까지 기존 산후 7일까지이던 출산 휴가를 107일로 늘렸는데, 그러다보니 분만 전 휴가를 규정하지 않아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산기를 느껴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 길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를 개선하고자 세종은 출산 전 휴가를 1개월 더 주면서, 출산 전 휴가가 2개월이 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길을 터 놓았다. 즉, 출산 휴가를 137일에서 167일까지 주겠다는 것이 세종의 취지였다. 인류 역사상 관비에게 이와 같이 출산휴가를 줄 생각을 한 군주는 예를 찾아 볼 수 없다.

 

세종이 출산 휴가에 관한 지시가 있은 지 6일 후 상정소에서는 분만할 달과 산후 100일을 관비의 출산 휴가로 할 것을 청하였고, 그대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출산 후 몸조리는 산모 혼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관비의 분만 휴가가 결정되고 난 후 4년 뒤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경외(京外)의 계집종(婢子)은 임산월(臨産月)과 산후 100일의 휴가를 주는 것을 이미 일찍이 입법하였으나, 그 남편에게는 전혀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부리게 하여 구호할 수 없으니 다만 부부가 서로 도와주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혹 죽기까지 하니 진실로 불쌍하다. 이제부터 유역인(有役人)의 처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은 30일 후에 부리게 하라.”(세종 16년 4월 26일)

 

이를 통해 산부의 남편에 대한 30일 동반휴가가 파격적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실로 이러한 혁신적인 여권 신장, 가족 중시 생각은 지금으로써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를 위해 세종은 정책 실시를 4년여에 걸쳐 꾸준히 지켜보며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이때의 세종 정책과 지금의 것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 임신 출산 휴가는 법정 기일이 90일 이나, 이 또한 직장 생활을하는 임산부의 경우에는 출산 후 복직이 쉽지 않아 대부분 출산 전까지 무리해 가며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 경영자들과 기업주들이 여성, 특히 산모를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주역인 다음 세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이런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는 실로 세종 시대 보다도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실로 퇴행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혁신적인 여권신장은 세종이 아니면 결코 생각해 내지 못할 일이었다. 여권에 대한 그는 생각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은 실로 세종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그는 진정 사랑을 베풀 줄 알았던 CEO였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가 온갖 복지 정책 운운하며 여권 신장을 주장하나, 임신 출산에 대한 사회적 여건을 보면 그야말로 미흡하기 짝이없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이런 깊은 관심과 배려에서 나와야 할 것이니, 오늘날 이같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위치에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대들이 자부하는 정책도 사실을 알고보면 600년 전보다 그리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을.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