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복잡계 경영이 정치사상 이데올로기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단순 이데올로기가 복잡계의 표피를 두른 채 무한 자국, 자사 이익을 위한 글로벌 경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경영 환경의 격변은 새로운 국면에서의 진로를 살펴보게 하고, 역사를 단순히 박물관 속의 학문으로 꿰는 것이 아니라, 경영현장에 투영하도록 하고 있다. 역사는 경영의 금맥이다. 현재의 성장 및 미래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동력원(動力源)이다.
지난 역사에서 국가경영상의 교훈을 얻는 민족만이 생존과 번영을 이뤄내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상생의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나아가 변화하는 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역사를 심경(深耕)하다보면, 두꺼운 미래의 불확실성, 불투명성도 꿰뚫어 볼 수 있다. 역사는 어느 시대나 현실 문제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보고(寶庫)이다.
역사는 사실(史實)를 통해 다면적 인지를 부여하며, 총체적 해법을 제시한다.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아, 오늘의 역사가 과거의 역사로 자리매김 되지만, 다른 한편 과거사는 미래사로 새롭게 부각되기도 한다. 역사에서 계승해야 할 가치를 찾아 현실 경영에 반영해 미래 비전을 열어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역사의 특정 시점, 특정 기간에 뚜렷한 방점을 찍으며, 주목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영학은 단순히 경영방식이나, 물적 기반이 옮겨지는 실체에 대한 관점에 주안점을 두어 왔다. 국가나 기업 환경의 변화가 광속으로 치닫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만으론 미래를 현재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시대를 앞서간 창조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앞선 시대를 여는 탁월성의 경영을 꾀할 수 있다. 낱개로 흩어져 있던 지식을 모아 새로운 지적 질서를 이뤄내야 한다. 지금의 변화는 안에서부터 내재된 변화 욕구가 외적 요인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시점이다. 질부터 달라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현실 경영에 나타나는 복잡성을 탐침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터 센게는 복잡계 시대의 총체적 인식과 그것의 만만찮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구름이 짙어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나뭇잎들이 위쪽으로 떨리면, 우리는 비가 오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또한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는 땅 위를 흐르는 빗물이 지하수를 보충하고 내일이 되면 하늘은 맑아지리라는 사실을 안다. 이 모든 것들은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이지만, 동일한 패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사건은 나머지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폭풍우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패턴을 고려했기 때문이지 그 패턴의 특정 부분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비즈니스와 인간들이 하는 기타 모든 일들 또한 시스템이다. 그것들은 서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구조들로 묶여져 있다. 우리 자신이 그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변화의 패턴을 관찰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상 모든 일은 상호침투하며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느 변수는 상수를 변수화 시키기도 한다. 피터 센게가 말하는 것도 불확정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이런 제요인을 전체로써 경영환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대에 국내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이미 세계화의 한 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복잡계는 실타래나 미로처럼 엉켜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미국 경제의 추락은 한국 경제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서민층의 가계를 추락시키고 있다. 북경 나비의 날개 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이 영향이 증폭되어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된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한편, 유가, 환율, 금리 등 거시 경제적 흐름(큰 고래)에 서민 경제가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새우 등)도 이와 같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의 제롬 싱어(Jerome L. Singer) 교수는 복잡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복잡계란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행위자들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행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행동은 비선형적이어서 개별요소들의 행동을 단순히 합해서는 유도해 낼 수 없다.” 즉, 복잡계란 “다양하고 많은 수의 구성요소들이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요소 하나하나의 특성과 사뭇 다른 새로운 복잡한 현상, 하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보여주는 시스템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요소의 결합과 작용이 복잡계를 대표한다는 것이며, 이를 꿰뚫어 볼 때 경영의 지평을 달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복잡계 환경은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식 양태와 흡사하다. 이 학문 저 학문을 다 불러다 엮는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 경영의 새판이 짜여 지는 시기에 지식의 급회전, 합동연횡, 융합합성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적인 지식 시대를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종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등은 가장 좋은 창조경영의 교과서가 되어 줄 수 있다. 과거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지녔던 문제를 돌아봄으로써 현시대의 문제를 꿰는 통찰력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인식의 확대는 시대를 관통하며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창조경영’으로 나타날지, ‘모방의 덫’에 갇히고 말지를 결정한다. 통섭, 융합의 초영역 인재상을 다루며 우리가 세종 시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미래를 개척해 간 창조의 원류라고 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조선 초 과학 기술의 창조적 원류는 이슬람 유산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이를 단순히 모방 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 맞게 독창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세종시기의 창조성이 돋보이는 대목이 이 점이다. 세종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우리가 지닌 ‘독특한 역량(distinctive competence)’을 알고, 이를 국운 융성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들어 냈다. 그 시기 국운 융성은 창조적 발상과 변화하는 환경을 창조적으로 해석해 내며 사물과 각종 프로젝트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데서 출발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가치 가운데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 이를 이노베이션(innovation)ㆍ인벤트(invent) 해냄으로써 본질적인 측면에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했다. 원래는 외부의 역량이었으나,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ㆍ혁신해서 독창적 가치(unique values)로 발전시켜 나갔다. 새로운 생명력으로 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뒤덮였다.
이 시기 창조의 근간은 원천을 파고드는 데서 나타났다. 원천에로의 접근은 파생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다분야에 걸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활자는 활자 자체로 끝난 게 아니라, 동전 주조, 화포 주조 등 합금술 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가져온다. 신농법의 참고도서인 《농사직설》은 농업 혁명을 가져와, 이 시기 들어 매년 농사를 짓도록 토지 사용을 극대화시킨 ‘연작상경법(連作常耕法)’과 퇴비를 이용한 ‘시비법(施肥法)’ 같은 것을 가져온다. 게다가 고려말 문익점이 도입한 목화는 10년 내 전국으로 확산되며 4군6진 개척 시에 주요 경제 수단과 부업이 된다. 기회 발굴과 창조적 경영정신, 쉼 없는 노력이 이 같은 경영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세종은 당대의 모순을 상상력과 실행력으로 뛰어 넘었다. 그 점이 국가경영자로서 세종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다.
어느 경우든 창조는 극한의 상황에 처해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있을 때 발현된다. 창조란 영혼을 울리는 미래와의 교감이며, 뼈를 깎는 노력 속에서 얻어진다. 보다 큰 차원의 사고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때 손에 쥐어진다. 세종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세우고,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목표, 국가경영전략, 실행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시대의 요구에 대한 강렬한 필요(needs) 인지, 다양한 경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 자기 긍정, 반복의 습관, 긍정적 마음가짐 같은 것은 창조 시대를 창조케 한 주요 요인이었다. 여기에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현재의 문제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뒤따랐다. 전체로서 누락 없는 부분을 이뤄 내고, 부분의 합이 그 이상의 전체를 일궈 냈다. 또한 상상력 넘치는 조직으로 키워냈고, 인간 심성에 소구해 창조의 근원을 마음에 두었다. 모든 것은 사람에 있다는 점을 갈파하고 세종은 사람문제에 대응해 나갔다.
세종시대의 창조적 경영 시스템은 21세기형 경영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경영이념인 ‘백성사랑’은 놀랍도록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창조적인 국왕은 그의 정치적 신념 말마따나 천지인(天地人)이 합치되는 사람중심의 세상을 구현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창조경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방면에 걸친 지적 인프라가 요구된다. 특히 경영자를 향한 요청은 실로 중대하다. 경영자의 사고, 경영방식, 경영자의 성장, 이 세 가지 축이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자는 기업 내 가장 성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기업은 상층부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의 창조적 마인드가 어떠냐에 따라 영속기업, 초우량 기업, 지속가능 기업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사회는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정치경제학적 입지로 인해 대륙과 해양의 거센 도전 앞에 너트 크랙커에 끼인 호두알 신세가 되어 있다. 이런 불리한 조건은 우리가 현재에 어떻게 반응하고, 개척해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간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외부의 사회, 기업 모델, 기술과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성과를 얻어왔지만, 독특한 가치 및 핵심우위를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미흡해 왔다. 다양한 국가ㆍ기업 모델을 경험하면서 여러 벤치마킹의 사례는 늘었지만, 기본적인 요소는 간과되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사회의 성장을 이끌어 나갈 독특한 가치와 전략, 실행 계획을 창조해 내지 못하면, 힘겹게 지탱해 온 우리의 경쟁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미래를 사는 가장 강력한 기반은 창조적 사고이다. 개인, 기업, 국가 등 전 분야에서 창조성을 성장의 드라이버(driver)로 삼아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지정학적, 정치경제적 족쇄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해 가야만 한다. 세종시대는 그 같은 해법으로서 창조를 들었고, 그것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창제가 예로부터 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나의 뜻이 먼저 정하여 졌으니,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이룩하라.”(세종 15년 1월 1일)
세종이 박연이 편경을 제작 할 때 한 말이다. 한국의 경영자가 21세기 창조적 기업 경영을 위해 뜻을 바로 세운다면, 모든 힘을 다해 이룩하는 것은 우리의 저력이자 잠재역량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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