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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너의 다원성을 불러내라

by 전경일 2011. 8. 10.

우리나라 대학의 학과와 전공 교수의 특징을 밝힌 보고서를 읽고는 깜작 놀랐다. 2006년 2월 기준, 수도권 대학 경제학과 교수 중 미국 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85.7%에 달했다. 흔히 주류경제학이라 불리는 이론을 전공한 비율은 90.5%이고, 아예 100% 미국 박사만으로 경제학 교수진이 채워진 대학도 6곳(경희대, 중앙대, 단국대, 동덕여대, 홍익대, 서울여대)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은 좀 바뀌었을까? 지금 분위기에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벗어난 경제 질서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 경제가 다원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달리 조사 할 무렵만 해도 우리는 지나치게 편중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다. 학문에 있어서도 편식이 작용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 21세기 들어 다원적 가치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편협하고 획일적인 것들은 뒤로 밀려 난지 오래다. 젊은 층 사이에 유행하는 소셜 커뮤니티는 IT를 배경으로 온라인상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며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유사 이래 이렇듯 다원주의적 힘이 세상을 움직여 온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정보교환은 물론, 상품 홍보, 심지어는 정치적 위력도 발휘하고 있다. 급전하는 세상에 우리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시기, 세상을 전변시키는 힘이 창조적 발상에서 나오고, 창조의 결과물 또한 다원적 가치를 지닌 것이며, 이런 가치가 창조 기반 사회를 만들어 내는 선순환구조에 우리가 올라 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창조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많은 전제 조건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페르케(왜why)'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적 기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깊게 파고 파서 그 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의문을 품고 해법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늘 보던 것, 생각하던 것, 행동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면 폭넓은 사고를 하기란 어렵다. 물론 창의적인 결과를 얻기도 힘들다. 기존 사고에 꽉 끼인 상태가 되면 진퇴가 불가능한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호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진퇴가 가로막힌 모방의 덫, 외통수의 사고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이 협곡을 지나는 것은 적잖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넘기만 하면 새로운 평원이 펼쳐진다. 그나마 젊은 층들이 가진 다원적 사고는 많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원적이고 창조적인 사회가 될수록 기업들이 찾는 인재상도 많이 바꾸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업에서 찾는 인재상이 급변하는 것은 현재의 방식으로는 기업이 지닌 궁극적인 문제해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절박감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식, 즉 하나의 생산기술이 도입되고 산업화 시대처럼 그 효용성이 적어도 100년은 유지되는 기반이 된다면 이런 고민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초당 테라바이트의 정보가 오가고, 기술 혁신이 일일 단위, 분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은 맥을 못 춘다. 지식이 융합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는 만화경의 시대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지금은 창조 조직으로 혁신시켜 새로운 차원의 사업기반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 존립 기반 자체가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기에 현재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혁신의 몸부림으로서 창조 사회가 부상하는 것이다.

창조적 역량은 기업의 미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생존조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창의적 조직은 꽉 막힌 한증막 같은 현실을 벗어나 숨통이 확 트이게 만들 수 있다. 그간 우리는 산업 사회의 덕목인 일사불란, 절도, 명령복종, 부지런함과 같은 인간의 다양성을 얽어매는 제한된 경영 이데올로기(대부분은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였지만)에 의해 개인과 조직의 창조적 사고와 행동이 크게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 세계 그 어느 시대의 융성도 획일화된 가치와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경우란 없다. 상호교류, 교감, 교차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혁신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기가 이와 같았고, 오늘날 한국사회가 몸부림치며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세상의 흐름을 리드하는 방법은 ‘낡은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에 물어보는 것이다. 과거처럼 유산으로 물려받은 지식이 별로 유용성을 지니지 못하는 시대에는 더 빠르게 세상에 적응해 가는 젊은 층들의 새로운 생각과 지식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

경영 현장에서도 경영자들은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미래 세대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산업시대처럼 돌격 앞으로! 를 부르짖던 경영자의 시대, 포효하듯 구호를 외치는 경영자의 시대, 날 서고, 거칠기만 하던 경영자의 시대를 신조처럼 생각한다면, 미래 인재를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보다 즐거움과 영감과 감수성을 지닌 경영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 만큼 사회적 수준이나 합의된 문화적 밑천이 현격히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바뀌고 있으나, 그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도요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들 날아오를 때 멀건이 바라보기만 한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주크버그(페이스북 창업자)를 꿈 꿀 수 없는 젊은이들에게 주크버그가 되라고 하기에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Copyrights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