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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이순신] 이순신 장군과의 만남

by 전경일 2011. 9. 30.

이순신 장군

 

장군을 만나는 첫걸음은 장군의 생애를 돌아보는 일로 시작한다. 그 작업은 나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음은 숙연해지고 담대해진다. 장군은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을까? 성장기, 남다른 우여곡절은 없었을까? 장군의 삶의 장대한 완결판을 보기 위해 나는 그 조촐한 첫출발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 서울 마르내골(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 이름은 순(舜). 중국 고대 성군인 순임금을 벤치마크 한다는 뜻에서 순신(舜臣)이라 지었다. 장군은 여덟 살 되던 때 충남 아산의 어머니 친정 동리로 이사해 글방을 다닌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사를 가게 된 배경이다.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무(武)의 기상이 넘쳤다. 결혼한 후에도 글공부와 활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산 현충사에 가면 지금도 장군이 활쏘기를 하던 활터가 남아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름엔 풍성하기만 한 진녹의 풍경이, 가을엔 노란 은행나무 잎이 장관이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문보다는 무를 선호했다.

본격적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2세, 장군의 멘토이자 장인인 방진(方震)으로부터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방진은 보성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문에서 무로 방향을 튼 것도 무장(武將)의 그릇을 알아 본 장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10년 후인 32살에 이순신은 식년무과에 급제한다. 전체 29명 중에서 12등이었다.

급제와 함께 12월 함경도 삼수(三水, 혜산)동구비보의 권관(權官, 종9품)에 임명됨으로써 첫 관직에 진출한다. 늦깎이 관직 생활을 경영의 불모지대인 국토의 최북단에서 시작한 것이다. 군인으로서 장군의 삶은 32세에 군문에 들어선 후  노량해전에서 54세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22년간 이어진다.

이순신 장군의 경력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전반 15년간은 육군에서 보냈고, 후반 7년은 수군에서 복무했다는 점이다. 특히 후반 7년은 고스란히 임란왜란의 기간과 겹쳐진다. 육전과 해전의 통합된 경험과 노련한 전략은 바로 이런 경력에서 나온다. 또한 뭍과 물의 백성의 삶을 살펴보고, 목민관의 기질을 발휘하게 되는 것도 이런 현장 경험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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