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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경성천도

[경성천도] 역사를 아는 민족만이 살아남는다

by 전경일 2012. 3. 14.

80년간 봉금서封禁書! 국내 최초 완역본 출간 서문에 붙여

일제가 조선을 합병 한 후 23년 지난 1933년, 서울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앞에는 흥아興亞연구소라는 특수 목적의 조직이 비밀리에 꾸려진다. 서울대학교 앞에 이 연구소가 특별히 세워진 이유는 아직도 비밀에 붙여져 있다. 연구소의 수장 도요카와 젠요豊川善曄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책의 일환으로 이 1급 문건을 작성한다.

이 비밀 작업은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를 서울로 이전시켜 만주와 일본열도를 잇는 거점이자 대동아공영권의 중추로써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려는 야심찬 공작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항구적 대륙경영을 위해 ‘일본과 만주의 통제공작에 화룡정점’을 찍으려는 계획 차원에서 벌어진 거대 음모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고서를 통해 도요카와는 한반도 영구 지배를 위한 한만韓滿경제 침탈의 마스터플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자유무역협정(FTA)을 연상케 하는 ‘일만日滿경제블록’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800만 조선인을 조선반도 밖으로 내쫓고 800만에 달하는 일본인을 이주시켜 일본 영토화 하는 강제 이주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이 책<경성천도京城遷都-도쿄 서울 이전 계획과 조선인 축출공작>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대동아공영권을 목표로 일제가 대륙 침략을 더욱 가열차게 벌여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 정부가 만주와 조선에 이민 정책을 쓰고 있지만 더 나아가 도쿄를 서울로 이전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본의 대륙경영이 이토록 부진하게 끝나는 것인가”라며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맹렬한 일본 제국주의자의 침략주의적 사고를 낱낱이 살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요카와는 일본 제국주의가 더 크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를 대륙을 향해야 할 제국의 수도인 도쿄가 영국 런던처럼 대륙을 등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로 인해 국력이 뻗어나가야 할 방향과 맞지 않아, 극동의 모든 공작을 지도하기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태평양과 중국 만주를 동시에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서울로 수도 이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도쿄와 만주 지린吉林의 중간지점으로 대륙과 해양 모두를 총괄할 수 있는 요지로 서울을 적지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며 그는 “극동을 지배하는 자가 태평양을 지배한다”며 경성으로 천도를 단행하여 극동을 지배할 때 미국과 맞서 서태평양 제패가 가능하다고 강력 주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리에 힘입어 일본은 1905년 조선에 대해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일본이 맺은 ‘태프트-가츠라 밀약’을 폐기하고 마침내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도요카와의 주장과 예언이 맞은 것이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태평양을 거쳐 극동을 완전 지배하고 영구 장악하려는 계획에 다름 아니었다. 극동 지배와 서태평양의 지배야말로 일본이 역사적으로 꿈꾸어 온 위업을 완성하는 역사적 임무라고 도요카와는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극동방위의 첫걸음인 후방기지 선정을 발판 삼아 자급자족적 경제블록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천황 중심의 일본을 되찾는 첫 지표라고 당당히 제국주의자다운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극동점거론’, ‘경성천도론’, ‘잘못된 도쿄 수도제 문제’ 등을 주장하며 극동은 자연스런 자급권ㆍ자위권ㆍ문화권이며, 조선반도는 이러한 극동의 통합지점이자, 일본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고까지 추앙하였다. 따라서 조선을 영구 지배하기 위해서는 ‘대아세아연맹大亞細亞聯盟’ 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 침략의 거대 음모와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FTA를 연상케 하는 ‘일만日滿경제블록’을 만들어 일본 경제를 완전히 한반도와 만주에 착근시킴으로써 경제 근간조차 완전히 식민지 상태로 만들겠다는 침략적 의도를 뚜렷이 밝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조선 침탈이 가속화된 것은 1875년 운양호 사건과 이를 이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의 상품이 무관세로 쏟아져 들어오며 조선 경제가 완전히 초토화된 데에 있다. 이미 78년 전, 오늘날 FTA과 같은 제국주의적 경제 침탈이 구체화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 자유무역 협정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는 결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이르던 때에 일제의 침략논리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자료이다. 일본이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기 위해 수도를 한반도로 옮김으로써 대륙 침략을 공고히 하는 공작에 몰두했고, 내선일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인을 없애버리려는 음모를 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에 사는 조선 민중 8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켜 버리고 대신 일본인 800만 명을 조선에 이주시켜 완전한 극동 지배, 조선 지배를 관철시키고자 한 것은 그들이 구상한 조선 지배가 얼마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인지를 알게 한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도요카와는 “한민족은 4천년 동안 조선반도에 거주해 왔을 뿐 지금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적이 없다”고 단언까지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가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스스로 맹신하고 있기까지 하다. 따라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단순히 7, 80여년 전 한 전쟁 미치광이가 작성한 몽상적 보고서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한 치밀한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오늘날 우리의 인식을 뛰어 넘는 조선과 중국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분석 작업을 수행하였다. 해양, 지리, 지질, 역사, 풍속, 문화, 군사, 일본 및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한반도와 만주 침탈의 마스터플랜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계획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광포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가 무력에 의한 학살 통치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집요한 연구 속에서 정교한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연구가 제국주의의 거대한 사상괴思想塊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몸서리쳐지는 전율마저 인다.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상황은 여러 면에서 일제 침략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무력 침공은 무관세 경제 교역 강요로 한반도 경제를 초토화 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점에서 오늘날 FTA가 가져올 우려스런 후폭풍과 자연스럽게 중첩되기도 한다. 또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공식화한 2002년 일본⟨유사법제⟩는 독도 영토 침구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의 조짐으로 읽힌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극우주의적 행태는 근대 일본 제국주의가 거침없이 팽창해져가는 상황과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필연코 역사에서 불변의 법칙 중 하나는 반복성에 있을 것이다. 식민 족쇄를 채우려 했던 저들의 교묘한 책동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면 역사를 대하는 현재의 의미는 저감될 우려마저 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일제의 침략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했으며, 완벽주의를 추구하고자 했는지 아는 것은 우리의 대왜對倭 대응 태세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취지로 일본을 알고 대비하는데 적잖은 교훈을 줄 것으로 판단해 78년간 실질적인 봉금封禁상태에 묶여 있던 제국주의 침략을 위한 이 비서秘書를 번역 출간한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는데, 큰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2년 1월

출간에 도움을 준 이들을 대표하여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