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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그리메 그린다

[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 그리메 그린다] 그림 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by 전경일 2013. 1. 11.

[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 그리메 그린다] 그림 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다빈치북스 / 전경일 지음

다방면에 걸쳐 저술 활동을 해온 저자가 김홍도, 장승업, 김명국, 신윤복 등 우리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책 '그리메 그린다'를 내놓았다. 10여 년간 조선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운필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삶의 흔적을 더듬어 낸 결과이다.

저자는 "그림은 그림을 그린 환쟁이의 삶을 어김없이 비추어낸다. 나의 삶이 이러했다고 소리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림과 삶, 그리메(그림자)를 주제로 그려낸 15명의 조선화가들을 만나보자.

화가의 삶은 다양하다. 천재화가와 문인화가가 있는가 하면, 멸문지화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거나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술독에 빠져 살다 비명횡사한 환쟁이도 있다.

그림으로 세상을 마음껏 비웃기도 하고, 세상을 등지고 적요 속에 잠기기도 했다.

다섯에 붓을 잡고 열세 살 무렵 금강산 장안사의 벽화를 그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이정의 삶은 '수향귀주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미친 세상 미치지 않고 어찌 살랴

어부가 배를 저어 다른 시공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이 그림은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힘들고 먼 인생길을 가는 자신을 그려 넣은 듯하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지닌 최북이 스스로 한 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고흐생각나게 한다. 무를 갉아먹는 생쥐의 모습을 통해 생명에의 강한 욕구를 표현한 '서설홍청'에서 '무 밑둥이 파먹히더라도 버팅기는' 이파리가 그의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그림이 화가의 내면을 보여준다면, 허균, 서거정, 오세창 등이 남긴 옛 사료는 화가들의 일화와 그림에 대한 당시의 평가를 들려준다.

박지원은 '연려실기술'에서 종친의 서자이지만 당시 이름난 화가였던 이징이 인평대군의 담벼락을 칠하는 수모를 당한 일을 전한다. 서자에 대한 편견과 냉대로 움츠려 들었던 것일까?

그림으로 세상사 영욕을 잊다

박지원은 그의 그림을 평하며 "일정한 화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서 범상함이 그의 폐단이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 획을 그은 비범한 화가들과 더불어, 천재 안견의 그늘에 가려 살리에르의 절망을 보여준 최경, 자신과 달리 속화를 선택한 신윤복을 노여워하는 아버지 신한평 등의 모습도 나타난다. 이들은 15명 화가들의 삶과 엮여서 조선시대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저자의 시각을 따라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느 순간 김홍도가 마지막 그림 '추성부도'를 그리기 전 인생의 쓸쓸함을 느끼며 가을 풍경을 보던 그 시선을 따라가거나 장승업이 강약과 경중을 조절하며 '호취도'를 그리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림으로 다시 사는 화가들이 전하는 '삶의 그림자와 그림자 같은 그림'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윤수정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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