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맺게 되는 인간사 편력

 

한 십 오년 전쯤 서태지가 처음으로 반항적인 음악 세계를 들고 나왔을 때 유행했던 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는 건데 이 말처럼 맞는 말도 없다. 만일 <사회는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바꾸어 말하기만 한다면 더 잘 맞을 것 같다. 학벌이나, 인사고과 성적이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는 직원이 있을 수도 있다. 진실을 말해 주자면, 결론적으로 직무 능력은 학교 성적과는 상관없다. 성적이 아닌, 성실, 신뢰, 실천력, 실행력, 추진력 같은 것이 성공 요인임은 두 말할 나위없다. 얼마 전,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는 임원들 학력을 공개했는데, 잘 나가는 임원중에 소위 SKY 출신이 상상외로 적어 우리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었다. 대신, 부단한 노력으로 정상의 고지에 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와 견주어 보면, 국내 50대에 불과한 모 기업의 오너는 채용 원칙으로, “너저분한 대학은 다 집어 치우고 SKY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후문을 듣고는 착잡했다. 사람 보는 눈이 저리 한 곳에만 붙들려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 저 사람은 좀 더 폭 넓고, 깊고, 아우를 수 있는 오지랖은 없는 걸까.

 

어느 회사를 봐도 일과 맺게 된 인간사의 편력은 그대로 드러난다. 다들 잘 될 것 같은 사업에만 목맬 때,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는 사업을 맡아 이를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이끈 임원이 있는가 하면, 동남아 오지에서 일 년의 대부분을 보내며 벌목권을 따내 기업 성장의 발판을 만든 직원도 있다. 이들 대부분 학력을 떠나 회사가 요구하는 것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 낸 주역들임에 틀림없다. 몸과 정성을 다해 이뤄낸 성과이기에 그들의 투혼은 빛난다. 안될 것 같은 일 앞에서도, “해 보긴 해 봤어?“라며 질문을 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 고 정주영 회장이다. 그의 공식 학력은 국졸이다. 그들의 성공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경영이나 리더십이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불타는 노력 끝에 얻어지는 훈장과 같다는 걸 입증해 준다.

 

지금처럼 리더십이 상품화 된 적도 없는데, 정작 리더십은 이 같은 도전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강인하게 현장에 뿌리박은 활동의 결과인 셈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지닌 이런 비범한 면모가 기업의 가장 훌륭한 재산이다. 작고 가벼운 재기와 안으로만 파고드는 조직 내 정치 지향성으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인재가 될 수 없다. 인재가 되기를 꿈꾼다면, 생각의 그릇이 커야 한다. 자신의 소임을 정성껏 다해야 한다. 평범한 영웅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이 같은 투지야말로 가진 값진 기업의 보배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나는 미국 유명 네트워크 방송사인 CBS에서 수업을 받은 일이 있다. 나의 지도 교수가 그 방송국의 부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어래인지된 그 수업에서 나는 놀랄만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그 모든 걸 가리켜 그는 “컬리지 스텁(college stuffs)"이라는 말로 명료하게 정의 내렸는데, 말인즉, 현장의 수업과 달리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그저 대학 내 일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 부사장은 어렵사리 대학원을 마치고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통해 방송국에 입사해서 지속적인 자기계발에 모든 노력을 다 했다고 한다. 그의 첫 주급은 채 백 불도 되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성적순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성취를 이루어 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그저 그뿐이라고 생각해라. 정글은 밖에 있다. 여기엔 진정한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있다.“ 그가 한 말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딱 한번 꺼내 들었는데, 내가 국내 모 그룹에서 일할 때 그곳에서 미래 경영을 책임진다는 사람들 앞에서였다. 하버드를 나온 친구들이라는 데 컨설팅 하는 내용은 폼은 났지만, 대부분 이론 수준이었다. 나는 그때, 컨설팅에 대해 불신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컬리지 스텁(college stuffs)"이라는 같은 말을 써서 말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더는진척시키지 않고 말문을 닫아 버렸다.

 

지금도 그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통해 그 부서가 여전히 잘나간다는 얘기를 듣곤 하지만, 가장 높은 생산성과 글로벌 경쟁력의 산실은 그곳이 아니라는 얘기도 함께 듣게 된다. 경쟁력은 피 튀기는 현장에서 가장 잘 읽힌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 보통의 사람들, 그러나 피나는 노력 끝에 탁월한 성과를 내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분명 조직 내 영웅들이다. 그들을 외면하는 회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 머잖아 흔적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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