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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원천 경쟁력을 얻기 위한 '찾아가는 전략'

by 전경일 2013. 4. 19.

원천 경쟁력을 얻기 위한 '찾아가는 전략'

 

일본 상계의 규모와 전시 경제를 접한 후 구인회는 부아가 일었지만, 속을 끓이기 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어느 날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필수라는 사람이 하는 어물가게를 지나게 되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구인회의 머릿속에 갑자기 번쩍 하고 불꽃이 일었다.

 

"바로, 이거다! 어물은 전시통제대상 물건이 아니지 않은가. 집집마다 밥상에 올라가는 물건을 손에 대는 건 어떤가······."

 

김필수에게 물어보니 어물은 찾는 사람은 많은데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모을 방법을 연구하면 될 것이었다. 그 즉시 구인회와 김필수는 의기투합해 어물전을 함께 운영하기로 하고 필요한 방법이 뭘 지를 연구한다. 두 사람은 몇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넉넉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 둘째, 바다에 나가 어선으로부터 고기를 사서 가져올 수 있는 배가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이 바닥을 손금 보듯 훤히 아는 사람이 한 사람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업 실행을 위한 분석이 끝나자, 두 사람은 삼천포로 내려가 하신상업주식회사(河信商業株式會社)를 경영하는 외숙 하길생(河吉生)을 만난다. 셋이 사업을 함께 도모하기로 하고 그들은 손을 잡았다. 구인회가 자본금을 대고, 80톤짜리 운반선도 구입했다. 구인회 인생의 또 다른 동업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인회는 생산과 유통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중간 유통 과정을 잘라버리는 혁신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구인회식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때 구인회가 생각해 낸 묘책은 다름 아닌 물물교환 방식이었다.

 

'바다에 나가 있는 어부들은 이미 뭍의 어물회사와 사업상 관계가 있어 잡은 물고기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값도 헐하게 받고, 구전도 따로 주어야 하고, 뭍과 바다를 오가는 시간도 꽤나 드는 형편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략은 생필품을 싣고 가서 물물교환을 하는 거다!'

 

구인회식 생각은 적중해 처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어부들은 실고 간 생필품을 보자 안색이 바뀌며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왜 자주 나오지 않으냐고 항의 할 정도였다.

 

하신상업 선박이 부두에 도착하면 진주에서는 조선사람, 일본사람 가리지 않고 줄을 서서 생선을 사가기 일쑤였다. 구인회가 보여준 '원천 소스와의 거래'라는 원칙은 무역업에서 태동된 아이디어였지만, 유통에 먹혀들며 하신상업을 번창케 했다. 이는 훗날 플라스틱 제조업을 할 때에도 원료 거대 메이커인 유니언 카바이트사와 새라니즈 등과 직수입의 루트를 개척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구인회식 전략의 승리였다.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기다리는 전략'이 아닌, '찾아가는 전략'을 택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유통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바다에서의 이 같은 유통 경험은 훗날 대그룹 경영전략 전반에 고스란히 반영 된다. 학습된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성공 경험을 복제해 사업을 키우는 식이었다.

 

마치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기업 나이키(Nike)의 전략적 선택을 보는 듯하다. 80년 때까지만 해도 리복(Reebok)과 피할 수 없는 경쟁 관계였던 나이키는 성공 경험을 복제해 냄으로서 새로운 활로를 창조적으로 모색한다. 운동화에서 시작한 사업의 성과를 통합해 농구화나 테니스화 등 다른 산업분야를 석권하고 이를 다시 복제해 운동복 시장으로 넓혀 나간다. 이어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농구공, 축구공, 골프용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간다. 차근히 인접분야를 석권해 나가는 나이키식(式) 성공복제 전략은 구인회식 경영 전략과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아무리 전시 경제하라 하여도 위축되지 않고 또 다른 활로를 찾는 점이나 사업의 연결점을 '원천과의 접촉'에 둔 구인회식 발상은 사업이 '사업' 범주에 머물지 않고 굵직굵직한 '산업' 분야로 연계되고 확장된 걸 뜻한다. 이 점에서 초창기 우리 산업의 태동기나 산업 시대 기업가들의 역동적 사고를 보는 듯하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