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준수한다

by 전경일 2013. 4. 17.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준수한다

 

일제는 말기로 갈수록 노골적인 침략행위를 강화했다. 1937년 들어 만주일대가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그해 7월 7일에는 북경 교외의 노구교(蘆溝橋)에서 일본군이 군사행동을 일으킨다. 이를 계기로 중일전쟁이 터진다. 한반도에 불똥이 튄 것은 자명했다.

 

전쟁은 경제의 또 다른 표현이라던가!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사업가 구인회는 본능적으로 전쟁이라는 대변화에 주목한다. 나아가 이런 외부 환경 변화에 맞서 변치 않을 경영 원칙을 세운다. 몇 가지 변치 않는 원칙은 이때 나온다.

첫째, 상점을 경영한다는 것은 이익을 올리겠다는 신념에 전념하는 것이다.

둘째, 변화하는 정세를 예견하고 위험에 처하더라도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이익과 기회라는 간단명료한 이 두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바로 실행에 옮긴다. 이때 구인회가 보여 준 정세 예측력은 실로 탁월했다. 1년 전, 전시 특수 경기를 예측하여 사둔 광목 1천 짝(2만 필)이 그야말로 전시 경제 하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다들 불안에 떨고 있을 전시 중에만 그는 남다른 예견력으로 8만 엔의 이득을 거머쥐었다. 이 돈이 얼마나 컸던지는 토지가(價)와 비교해 봐도 잘 알 수 있다. 상등 논이 평당 25전 했으므로 8만 엔이라면 40만평이라는 어마어마한 토지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야말로 막대한 전시 이득이었다.

 

이 시기 구인회는 조만물산(朝滿物産)이란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처남 하윤구로부터 무역업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만주와 일본 후쿠이(福井)에 다녀온다. 이미 일본 군부의 지원 하에 군수산업으로 성장한 일본 기업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해 있던 터라 지금 식으로 보자면, 생산-유통을 장악한 일본 무역회사의 활동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사업 여행이었다. 토요타 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주식회사도 한반도 및 중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들이고 있던 때였다. 2대 주주 미쓰이 물산이 상해 대리점 총판을 맡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일본 군부의 지원 하에 성장한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 그룹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해 있었다.

 

무역업에서 뭔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던 구인회의 구상은 곧 두터운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1937년 7월 이후 일본 경제가 전시 통제되어 군수품이 될 수 있는 포목공급이 막히면서 무역업 전개가 점차 어려워진 것이다. 게다가 이태 지난 1939년 11월 들어서부터는 기업정비령이 공포되고 1940년 1월에는 유한회사법이 실시되는 등 격변이 몰아쳤다. 그러자 일본에서 들여 와 팔던 견직물도 수입이 꽉 막혀 버려 사업은 교착상태에 빠져 버린다.

 

장사하는 '가게'에서 회사인 '법인'으로 전환을 꾀한 구인회는 '구인회 상점'을 '주식회사 구인 상회'로 변경한다. 이는 구인회의 경영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개인 장사꾼에서 상법상 대표이사가 된 것이다. 근대적 기업관으로 기업이란 '틀'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고민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는 숱한 가게들이 자기 변신을 꾀하지 못한 탓에 그저 무슨 무슨 가게로 불리다 문을 닫게 된 것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 사고의 결과였다.

 

이 무렵 구인 상회의 은행 잔고는 40만 엔이 넘는 거액이었으니, 구인회가 벌어들인 돈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초 구인회가 무역업에 손을 대려 한 것은 물건을 원산지에서 직접 사면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도매상과 중간상을 거쳐 오는 원가와는 엄청난 차이가 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인회의 생각은 그저 식민지 조선의 경제 규모 내에서의 얘기일 뿐 일본 현지의 사정은 달랐다. 일본에 간 구인회는 안도오(安藤), 이토오(伊藤), 마루 베니(丸紅) 등을 만났지만 몇 천 원 정도의 소자본으로는 거래조차 틀 수 없었다. 구인회는 거대한 일본의 상계(商界)를 접하고는 씁쓸하게 뒤돌아선다. 이 경험은 마음속에 향후 장대한 포부를 펼칠 결심이 싹트는 계기가 된다.

 

'내 반드시 일본 기업을 뛰어 넘으리라!'

 

다부지게 작심했지만 구인회의 발상은 먼 훗날로 미루어지고 지금 당장은 뭔가 라도 하며 전시(戰時)의 이 지루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장사꾼이 손을 놓는 순간, 손은 굳게 되어 있다. 일본 기업 같은 대기업가가 될 것이라는 목적의식과 계획마저 세워져 있는 구인회에게는 일보 전진을 위한 인고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기업가로서 자신이 세운 원칙, 즉 투철한 이익과 위험을 감수한 기회에 보다 강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