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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해녀들의 상생경영

by 전경일 2013. 7. 9.

21세형 커뮤니티의 조건, 상생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해녀 사회는 어느 조직보다 커뮤니티 의식이 강하다. 느슨한 조직이 아닌, 강한 유대로 생존을 도모하고, 어렵게 채취한 해산물이 제 값을 받도록 공동 노력한다. 이런 해녀들의 삶은 공동체 운영에 잘 드러난다. 민주적이되, 합리적인 관행에 의한 룰이 적용된다. 나아가 원칙과 조화로운 삶의 철학을 이룬다. 이들은 따로 경영원리나 마케팅 기법을 배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영이 지향해야 할 상식과 상생에 근거한다. 해녀경영의 탁월성은 무엇일까?

 

인간미 물씬 풍기는 상생 협업

경제 공동체는 인간미 넘치는 지속가능한 경영의 전형이다

 

바닷내 물씬 풍기는 잠수해산물 직판장에 들른다. 판매장 어디를 둘러보아도 군데군데 물질하는 해녀들이 조를 짜서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주로 소라, 문어, 해삼을 팔고, 미역과 고동은 ‘서비스’로 얹어 준다. 서비스까지 받고 나면 훈훈한 인정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 진다.

 

판매에는 당번조가 운영된다. 대략 한 조에 약 13명(6개조)으로 구성되는데 동네 골목을 기준으로 가까운 집끼리 한조로 묶인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운영된다.

 

물질 갔던 해녀가 작살로 쏘아 잡아 온 물고기를 당번조 해녀들에게 팔고, 당번조 해녀들은 이를 구입하여 되판다. 흥미로운 것은 당번 조에게 물고기를 팔지 않고 직접 판다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만, 그냥 당번 조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상생의 역할 분담 원칙이 있다. 이것이 공동체 원리를 이룬다.

 

해녀들은 각 조가 돌아가면서 운영된다. 따라서 낮은 가격에 해산물을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는 넘긴 해녀에게도 같은 기회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사과를 가장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자르지 않은 사람에게 우선선택권을 부여하게 하는 방식과 같다. 기회균점과 역할분담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보장받고, 휴식시간도 확보하는 것이다. 모두가 상생원칙을 알고 지키기에 공생의 조건은 마련된다. 따라서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발붙일 수 없다.

 

모든 작업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 일을 시키는 사람도, 지시하는 사람도 없다. 누군가는 해산물을 채취하고, 누구는 미역을 삶고, 초장을 담아 두며, 물질 작업 때가 끝날 즈음이면 국수나 죽을 끓여 두었다가 물질한 해녀들에게 준다. 마치 기업에서 ‘일’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서로 잘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루 판매한 것은 그날 참여한 조원들이 모두 똑같이 나눠 갖는다. 이처럼 해녀 사회를 유심히 살펴보면 상호 협력과 상생의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해녀들은 어떻게 이 같은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을까? 정답은 일에 대한 개념 정의를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바다에 들어가, 자기 역량대로 채취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녀로서 물질도 한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군에서 할망해녀로 전환될 때를 알고 관행적으로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개인 기량 때문에 소득차가 나는 건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물질하는 몸이 늙을 때를 대비해 ‘서로 사는’ 원칙을 해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개인 경쟁력과 상호 협력의 구도는 서로 양립될 수 없을 것 같지만, 이런 게 바로 해녀 사회의 특징이다. 자신이 얻은 이득은 자신만의 노력의 댓가가 아닌, 바다에서 나온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자연 속에서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경영에 고스란히 반영한 셈. 해녀들의 경제 공동체는 그래서 가장 친 자연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영의 전형이다.

 

 

해녀 마케팅 <사진_해녀복을 입고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해녀들><사진자료: 해녀박물관>

세월이 바뀌어 나이든 해녀들도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해산물을 판매하는 날에는 물질을 하지 않으면서도 무거운 해녀복을 입는다. 관광객에게 ‘해녀임’을 드러냄으로서 갓 잡아온 해산물이라는 신선함과 품질보증의식을 심어주려는 마케팅 일환이다. 철저한 브랜드 관리 기법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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