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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남왜공정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by 전경일 2015. 7. 1.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오랜 시간 일본열도는 대륙으로부터 문명의 수혈을 받아왔다. 이 점은 일본이 인정하려 들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며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중일 간 역사 이전에 인류의 이동사 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역사적 사실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긴 역사 기간 동안, 새롭고 수준 높은 한반도와 중국의 선진문명은 일본인들을 미개에서 문명 단계로 접어들게 한 원천이었다. 일본열도의 원주민 집단은 한반도의 이주민과 함께 한반도 문화를 받아들이며 점차 일본 열도의 독자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일본은 오랜 시간 한반도를 젓줄로 해서 문명을 전수받으며 자체 역량을 키워 온 셈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로 서기 700년까지 일본 주민 중 원주민은 단지 10퍼센트에 불과한데 반해, 선진 문화를 가진 이주 한민족이 약 90퍼센트나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만큼 한반도의 영향은 지대하다

 

한반도인들은 오랜 시간 일본열도로 진출했다. 대륙으로부터의 민족 이동의 영향이 일본 내 반영된 결과다. 대륙에서 해양으로의 진출은 문화의 전파와 인적 교류를 동시에 동반했다. 어느 시대건 사람이 문화교류의 주역인 것은 불문가지이다. 고대 시대, 이와 같은 현상은 민족과 함께 문화역량이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일본으로의 이주는 당시 미개척지 진출이라는 면이 있다. 이 점은 어느 문명사와 마찬가지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반도가 삼국시대를 맞이할 무렵, 일본열도로 가장 활발하게 진출한 나라는 백제였다. 그 무렵 백제는 삼국 가운데 가장 왕성한 해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교역망도 제주도와 규슈, 유구와 인도지나반도를 잇는 거대한 망을 형성했다. 언필칭, ‘백제해양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는 한자나 불교, 유교 같은 문화적 재부를 일본에 전해 주었다. 일본에 문화적 눈을 트게 한 장본인도 백제였다. 반면, 고구려는 전쟁 기술에 해당되는 마구나 기마풍습 등을 전래해 주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일본 내 전쟁기술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한 무구(武具) 문명의 이전(移轉)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일본은 문무(文武) 양면에서 한반도 국가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밖에도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선진문화의 내용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는 일본 내 여러 문화 현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대 대왜(對倭) 관계의 일반적 현상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문물이 단방향적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는 일본에 선진문화가 전수되는 과정이었다. 각처의 물산은 양방향성을 띠며 이동할 수 있지만, 문명은 그렇지 못하다. 우월적 지위를 지닌 곳에서 그보다 낮은 지역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는 근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반도에서 영향 받은 것은 무조건 감추어야 한다는 배타적 사고가 소아병적 인식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일본은 이 같은 사실을 부정하려 들겠지만, 지금 일본이 세계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를 통한 문물의 수입은 일본이 통일될 때까지 지속됐다. 그 뒤 일본 내 고대 국가가 출현하고 중국 등과 직접 통교가 가능해지면서 왜()는 독자적으로 대외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내부적 요인이 충족되면서 이제 대외 관계가 걸음마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 시기를 대략 7세기 후반 경으로 본다. 강력한 고대 왕권이 성립되자 일본은 직접 중국과 통교에 나섰고, 전에는 볼 수 없던 보다 큰 세계와 만나게 된다. 일본으로서는 가히 세계를 만나는놀라운 경험을 처음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조우는 근 9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서구 문물과 만나면서 다시 크게 전변한다. 고대 시기, 한반도에서는 오랜 시간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해 오던 삼국정립의 구도가 깨지고 신라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진다. 바야흐로 국제무대에서 본격적인 변화 국면이 전개된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