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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바람이 불려면 어딘가에 반드시 무풍대가 있어야 한다

by 전경일 2016. 4. 11.

바람이 불려면 어딘가에 반드시 무풍대가 있어야 한다

 

 

지리학자들에 의하면, 태양 광선은 지구의 전 표면을 동일하게 덥히지 않는다. 지표면의 복사열도 어디서든 같은 게 아니다. 태양 광선은 적도지역에서는 지표에 거의 수직으로 비추지만 극에 가까운 곳에서는 비스듬히 비춘다. 때문에 적도의 공기는 극의 공기보다 당연히 덥다. 대기를 열기관으로 하여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은 이 온도차다. 만약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적도 부근의 더운 공기는 계속 상승하여 극 쪽으로 흐르고 극의 찬 공기는 밑으로 가라앉아 적도 쪽으로 흐르는 끝없는 공기 순환만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러나 지구는 돌고 있고, 태양이 비추는 지표면도 언제나 똑같지는 않다. 공기의 순환 원리는 이렇게 만들어 진다. 이 같은 원리에 따라 태풍 같은 초대형 대류 현상이 생겨난다.

 

태풍의 특이한 점은 어떤 것이든 회전한다는 점이다. 태풍이 회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심의 공기는 가볍고 기압은 낮지만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공기는 무거우며 기압은 높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무거운 공기는 중심을 향해 흐른다. 지구의 자전으로 편향(偏向)되는 내향성 기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코리올리 효과라고 부른다. 그 반대의 경우는, 기압이 높고 짙은 공기 덩어리 주변에 생겨서 공기의 흐름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경우다. 이 회전운동은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소용돌이도 반대가 된다. 지구의 자전은 태풍 속에 흘러드는 바람을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쏠리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게 하고, 남반구에선 왼쪽으로 쏠리며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게 한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초대형 풍우는 처음에는 열대 해상의 저기압 지대에서 형성된다. 수분을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이 지대에 흘러들어 그 속에서 상승한다.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는 속에서 수증기는 다량의 열을 방출하고 그 열이 상승 속도를 한층 높여 비구름을 만든다. 그 힘은 가공할 만해서 태풍 하나는 대양과 공기에서 매초 25만 톤의 물을 흡수하며 응결하는 과정에서도 13000메가톤의 핵폭발에 해당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뜨거워진 공기는 속도를 높이면서 상승을 계속하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운 공기가 속도를 더하며 태풍의 중심으로 모여든다. 초속 90미터나 되는 바람이 발생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보면 해양이야말로 태풍의 에너지원()인 셈이다. 수리학자(水理學者)들에 의하면, 대기는 태풍과 태양 광선을 이용해 년 간 약 505천 세제곱 킬로미터의 물을 바다와 육지에서 빨아올린다. 그 중 바다에서 빨아올리는 물은 전체의 약 86퍼센트인 434천세제곱 킬로미터에 해당된다. 이 거대한 증발 과정에서 위로 올라간 수분은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시인 월트 휘트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물은) 육지에서, 한없이 깊은 바다에서, 영원히 남 몰래 하늘로 올라가, 거기서 얽혀 모여 완전히 변모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내려서 가뭄과 미생물과 지구의 먼지 층을 씻어준다. 그리하여 길이 주야로, 자신의 본원으로, 생명을 돌려주고, 맑고 아름답게 해준다. ······누가 보든 안보든 간에.”

 

 

태풍은 어느 태풍이나 그 중심에는 직경 수 킬로미터의 조용한 구역이 있다. 이것을 가리켜 태풍의 눈[]이라고 한다. 눈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큰 비를 내리게 하는 두꺼운 구름 고리다. 이 고리 속에서 바람은 맹렬하게 불고 풍속은 수 킬로미터나 움직인다. 이 눈은 태풍의 중심이자 하나의 부동점이 된다.

 

이 같은 부동점은 지리상에도 나타난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나 남위 5~6도 내 자리 잡은 지역은 기온이 매우 높고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 우림 기후대 또는 적도 저압대 지역에 속한다. 이곳은 북동 무역풍과 남동 무역풍이 마주치는 무풍대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구상 모든 바람이 여기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일테면 모든 바람이 시작되는 바람의 고향인 셈. 이를 가리켜 적도무풍(赤道無風, equatorial calms)라고 부른다. 바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바람이 만들어 진다? 이런 역설이 나로선 신기하기만 하다. 반면, 아열대 무풍대 같은 경우엔 북위나 남위 23.5~28도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거의 항상 고기압 대에 속해 바람도 약하게 불고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도를 펼쳐보면 대체로 사막 지대가 많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 바람이 이는 점은 인체의 구조나 성운(星雲) 모양과도 비슷하다. 이와 같은 현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소용돌이다. 소용돌이는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생겨나는 것일까?     

       ()                      ()                               ()                            ()

머리 가마()나 태풍()이나 모두 소용돌이 모양으로 회전하고 있다. 태풍은 눈과 함께 거대한 구름 벽이 소용돌이치며 중심을 향해 와동혈(渦動穴) 형태로 빨려 들어간다. 전체적인 힘은 소멸 시까지 형태를 유지하며 이동한다. 격심한 바람과 폭포 같은 빗속을 뚫고 들어간 태풍의 소용돌이 안은 너무나 잔잔해 그 안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태양이나 별도 떠 있다. 그러나 그 밖은 바다의 신인 넵튠이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기상을 좌우하는 공기의 소용돌이 같은 모양은 ()처럼 은하계의 성운(星雲)에서도 찾아진다.

 

 

부동점 정리에 의하면, 원반()의 검은 점 주변의 모든 점들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도 규칙적으로 원반 테두리 쪽을 향해 방사상으로 이동해도 검은 점은 움직이지 않는다. ()처럼 머리카락이 방사상으로 자라고 그 소용돌이 모양 속에 가마라고 하는 부동점이 있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가마의 위치는 언제나 그대로 있고 머리카락만 일정한 규칙 하에 뻗는다. 이런 현상은 태풍의 모양()에서도 찾아진다. 또 은하계의 성운들의 밀집 대형()에서도 찾아지며,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 세면대의 물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는 데에서도 찾아진다. 이런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움직이지 않는 이 있다. 이것이 모든 운동의 소구점이다. 이 점을 중심으로 어느 특정 세계가 돌아가는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적도무풍대인 5~6도나 아열대 무풍대인 23.5~28도가 이 점에 해당된다. 이곳은 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지구 전체를 냉각시키거나 순환시키는 거대한 원리가 작동하는 매우 신비한 곳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지구 표면의 도처에서 동시에 바람이 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바람이 불려면 반드시 어딘가에는 무풍대가 있어야만 한다.

 

자연 속에서 찾아지는 부동점은 세련된 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왕거미의 집 중앙에 집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지그재그 모양의 거미줄에서도 찾아진다. 거미줄의 팽팽한 구조는 이 중앙의 얼기설기 엮은 부동점 구조에서 나온다. 다시 휘트먼에 의하면,

 

 

거미는 (조용히 참을 성 있게) 광막히 퍼진 공간을 탐색하느라 스스로 체내에서 가느다란 실을 자꾸 쉼 없이 뽑아내고 있다. ······무한한 공간에 홀로 둘러싸여 쉼 없이 생각하며 단행하며 실을 던지며 연결할 천체(天體)를 찾고 있다. 마침내 요긴한 다리가 놓이고 부드러운 닻[()]이 내려질 때까지.”

 

 

이것은 실은 거미의 생태를 얘기하려기보다는 우주의 어딘가에 걸리기를 희망하는 우리들의 영혼이기도 하다.

   

    

 

 

 

 

   

 

 

 

 

자연에 나타나는 다양한 장치, 기능, 현상에서도 소구점과 부동점 원리는 찾아진다. 힘이 시작되는 곳이나, 균형을 잡아주는 곳, 혹은 강력한 생성 몰입 동기를 지니고 있는 곳에서 이런 현상들은 주로 발견된다. 모든 원초적 힘과 욕망은 한 점에서 시작되고 귀결된다. 수렴화 과정을 거친 모든 현상이 끝내 향하는 곳은 소멸을 향한 지점이다. 이런 원리는 사회적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꽃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꽃의 중심부 주변에는 밀표(密標)라고 하는 유별나게 돋보이는 황색 별 표식이 있다. 꿀과 화분이 담긴 중심부로 가루받이를 하기 위해 이곳을 통해 꽃은 곤충을 유인한다. 제비꽃을 살펴보면 일련의 선이 중심부를 향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곤충들은 이 선을 따라 중심부로 들어가고, 디키탈리스 같은 꽃은 꽃 가장자리에 큼지막한 점이 박혀 있어 중앙부로 유도해 들어가게 도와준다. 꽃의 이런 구조는 활주로에 박은 비행기 점멸 유도선과도 같다. 인간 사회의 원리에 빗대어보자면, 군대 계급에서 장교나 장성의 계급 표식에 무궁화나 별을 달아 끌리게 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수분자를 끌어들이는 꽃의 밀표처럼 부동점을 내부에 갖고 있어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뚜렷한 징표가 되어 준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꽃을 찾는 꿀벌과 별로 차이 없어 보인다.

 

머리가마-태풍-성운에 보이는 부동점과 거미줄-꽃에서 찾아지는 부동점 원리를 우리 조직 원리에 빗대어 보면 어떤가?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수많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혁신은 그 자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비혁신적 요소(즉 무풍대)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혁신의 대상이 역으로 혁신을 유발한다. 또한 모든 혁신은 내부 요인이 궁극적으로 변화의 중심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내부 무풍대는 외부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요소다. 어떤 조직이 내부로부터 개혁을 잉태할 경우에도 힘이 작용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 당연히 부동점 내지 소구점은 변화를 잉태하는 하나의 기점이다. 이 특정한 점, 또는 대()는 넓은 의미로 주변을 변화시키는 활력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사람의 머리 가마는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단순히 머리를 잘 빗어 넘기기 위해 필요했던 것일까? 발생학적으로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점은 좀 더 파고들어야 할 문제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대부분 사람들은 가마가 1개인데, 2개나 3개 또는 그 이상일 경우에는 어느 방향으로 빗질하는 게 좋을까? 이런 특수한 경우라면 유능한 이발사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약 우리 동네 이발소에 뭔가 남다른 혁신을 꾀하는 이발사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게 틀림없다. 최소한 머리카락이 없는 군사 반란의 수괴자를 상대해야 했던 암울했던 시기의 어떤 이발사가 처한 처지와는 다를 테니 말이다. 헌데 지금 전개되는 상황이 그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어쩌면 남반구에서 부는 태풍도 오른쪽으로 돌고 있다고 진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북반구에 살며 우선(右旋)하는 태풍만을 상대해서 극히 다행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