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너무 잘게 썰지 마세요

학문을 너무 잘게 썰지 마세요

 

오랜 시간, 철학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알까 하는 문제, 즉 감각의 문제에 크게 흥미를 가져왔다. 동시에 모든 면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꾀해 온 과학도 점차 감각이란 미지의 영역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생리학자들의 경우에는 감각기관의 작용 방식에 관해 많은 사실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자극이나 반응 같은 심적 현상에 대해서도 계속 연구의 손길을 뻗쳐왔다. 그 결과 필연적 현상으로 철학과 생리학이라는 심리학을 겨냥한 두 개의 학문 영역은 합체되었다. 감각이나 지각 연구에 물리학적 방법을 적용한 실험심리학(實驗心理學, experimental psychology)이 탄생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요즘 말로 일종에 통섭을 한 것이다.

 

영국의 외과의사이자 작가인 존 로완 읠슨에 의하면, 실험심리학은 1850년 10월 22일 아침에 탄생했다. 그날 아침 독일의 구스타프 테오도르 페히너 교수가 새로운 착상에 빠져 중얼거리며 시작된 것이다.

 

“식물은 인간이란 두 발 가진 짐승은 왜 저리도 분주하게 돌아다닐까 궁금해 하면서 자신이 뿌리박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 거야.”

 

그가 이렇게 중얼거린 것은 인간은 뛰고 소리치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영혼이지만 식물은 이슬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시키는 영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대목과도 같다. 그 작품에서 생텍쥐페리는 “그들(사람)은 바람결에 불려 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곤란을 받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가 이 작품을 쓴 게 1943년이니 페히너가 하였던 말을 오래 전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페히너는 이날 아침 눈을 떴어도 늦게까지 잠자리에서 누운 채로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의 생각을 잡아끈 건 당시 물질주의 경향에 관한 것이었다. 페히너는 과학과 철학을 결합하기에 가장 알맞은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의사로서의 교육을 받았고, 다음에는 물리학으로 관심분야를 바꾸었다. 그 후 중병에 걸리고 나서는 종교적으로 개종(改宗)도 했다. 이런 심적인 생활과 심령적인 경험이 남다른 생활에 흥미를 갖게 한 것이다. 그는 신비주의자였지만 당시로서는 과학적 훈련을 받은 꽤나 색다른 인물이었다. 그의 관심사를 반영하듯 페히너는 자연과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정신물리학의 창시자가 된다. 그는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의학과 물리학 및 철학을 배웠고, 1834부터 1840년 사이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있다가 병으로 퇴직했다. 건강상 요양을 한 뒤에는 다시 철학교수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의학, 물리학, 철학이 상호 작용하는 지적 세계를 구축하게 도와준다.

 

그런데 운명의 그 날 아침, 그는 불현듯 마음과 물질의 관계가 과학적 측정 범위 바깥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그것은 결코 범위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불꽃이 튀기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페히너는 신체와 마음 사이의 기능적 관계에 관한 역저인《정신물리학의 원리》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페히너가 심리학에 대해 이룬 주요 공헌은 심적 과정을 측정하기 위해 쓴 창조적 방법에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한 실험에서 한 사람에게 어떤 강도의 빛을 보게 하고, 빛을 조금씩 약화시켜 나갔다. 그래서 피험자(被驗者)가 최초의 밝기와의 차를 느꼈을 때를 보고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단계의 빛의 물리적 강도를 측정하고, 최초로 본 빛의 밝기의 강도 차를 감각의 통계 단위로 삼았다. 이 단위는 영어의〈최소가지차이(最少可知差異)〉라는 말의 두문자(頭文字)를 따서 현재에는 ‘JND(Just Noticeable Difference)’라고 부른다. ‘인지 가능한 최소 차이’라는 뜻이다.

페히너는 이 JND를 기준으로 감각의 강도를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정신물리학자인 어네스트 베버는 이를 K =ΔI/I로 수식화 했다. 여기서 K는 베버 상수이고, ΔI는 차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변화량, I는 기준이 되는 자극의 크기가 된다. 베버 상수는 기준 자극이 클수록 차이를 느끼는 데 필요한 자극량의 변화가 더 커야하며, 기준 자극이 작으면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이론은 현재 광고심리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제품이나 가격에 미묘한 변화를 주거나, 상품 패키지 구성에 변화를 주는 것 또는 신제품 개발 등에 미세한 차이를 주는 데에 활용된다. 예컨대, 가격을 미세 조종하거나, 가격 대신 함량의 일부를 줄이거나 등등의 방식에 널리ㅡ쓰인다. 광고 속에 성적(性的)자극이나 갈등 유발요소 등을 집어넣는 자극삽입도 그 중 하나다. 예전에 코카콜라 광고에 이글거리는 태양 이미지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짧은 몇 컷 형태로 삽입해 넣어 무의식적으로 갈증을 느끼게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렇게 심리학적 진전은 학문적 성과를 활용해 (특히 경제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집단에 먼저 채택되어 쓰였다. 마치 오늘날 소셜 미디어(SNS, Social Networking Service)가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자 정치적 프로파겐다와 기업마케팅에서 재빠르게 채용해 자신에 유리하게 써먹고 있는 것처럼. 

 

페히너의 뒤를 이은 이는 빌헬름 분트였다. 분트 역시 의사에서 철학자로 전향한 사람으로 새로운 학문 영역을 발굴하는데 통섭적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확고한 실험주의자로 1875년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부임했지만 4년 뒤에는 그곳에서 세계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을 개설했다. 온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분트한테 모여들었다. 학생들에게 그가 준 인상은 그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분트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간 사람들 관심밖에 있던 ‘감각’이란 영역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은 감각처럼 단순한 것에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분트의 목적은 경험을 감각적 요소로 분산하는 것이었다. 실험실에서 학생들은 메트로놈을 듣고, 섬광을 응시하고, 서로 바늘로 찌르며, 그때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놀랄 만큼 상세하게 보고했다. 분트는 스물한 살 때부터 저술을 하기 시작해 전 생애를 통해 5만373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1년 간 500페이지의 책을 썼다고 해도 100년 이상 걸릴 분량이었다. 어느덧 독일에서 탄생한 심리학은 순식간에 국제적인 과학이 되었고, 미국에서는 대융성의 극치를 이루게 되었다.

 

그 무렵 비엔나에서는 저 인간의 심연을 훑은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인간의 미탐험의 영역인 마음의 무의식이란 개념을 착안해냈다. 그가 말한 ‘무의식’은 심리학은 말할 것도 없이 서구의 모든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분트의 최초의 위대한 책《생리학적 심리학의 원리》는 1874년에, 프로이트의《꿈의 해석》은 1900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25년 사이 ‘의식’은 이미 울타리를 뛰쳐나가 세상 밖으로 훌쩍 나아갔던 것이다. 이미 심리학은 교육, 육아, 정신장애의 치료 등 오늘날 심리학과 매우 밀접한 분야에까지 진출했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실험심리학과정이 만들어 졌다. 그 주역은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인 윌리엄 제임스였다.

 

이어 사물 전체를 지각하고 거기서 개개의 요소를 지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막스 베르트하이머가 등장했다.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합 이상의 특성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이들 학파를 이해하는데 가장 명확한 정의가 될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게슈탈트 학파라고 하는데, 원래는 ‘형(形)’이라는 의미를 지닌 케슈탈트(전체, Gestalt)라는 단어가 심리학적 용어로 쓰인 것이다. 그들은 일테면, 우리가 노래를 아는 것은 멜로디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 개개의 음의 연속을 알아서 아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당연히 개개 음 자체보다 그것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런 것들은 흔들거리는 전등을 볼 때나, 초당 30여 프레임이 돌아가는 영상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1915년에 소개된 에드가 루빈(Edgar Rubin)의 ‘꽃병-얼굴’ 도형은 게슈탈트 심리학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이미지는 보는 이의 마음속에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인지 방법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는 물론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적용 가능하다. 다른 면을 보게 함으로써 전체적 시각을 갖게 한다. 이를 사회 문제로 환원하면 이와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의 이면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무엇인가? 삐뚤삐뚤한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에는 어떤 미학적 비밀이 숨어 있으며, 그의 불이선란([不二禪蘭)는 왜 그토록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 협상의 원칙에서 상대가 보려는 바를 보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등등 시각을 달리해 다른 면을 보게 함으로써 전체를 보는 안목을 줄 수 있다.

 

심리학은 등장한 이래 ‘마음을 어떻게 지각하는가’라는 주제에 일관되게 주목하고 있다. 이 점은 세계는 무엇이고, 인간과 사물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주제와 닿아 있다. 그 점에서 심리학과 철학은 광의로 추구하는 바가 같다.

 

산업혁명 이후 학문 분야에서 지식의 분과(分科)현상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면, 최근에는 통섭과 함께 융합 현상이 하나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1875년 하버드대학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처음으로 실험심리학 과정을 만들었을 때 그 과정은 철학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심리학이 철학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은 철학 말고도 타학문과 끊임없이 지식을 주고받으며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학문 경향은 몇 개 부문이 교차되고 혼합되는 용융지식(鎔融知識)으로 넘어가고 있다. 과학 분야를 예로 들자면, 물리학도 생화학, 지구물리학, 물리화학 등 분야에서 점점 더 응용되고 타학문간 연결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를 갈아대듯 무채에 대고 갈아댄 지식은 전체를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생명을 잘게 부수면 거기서 생명을 본질이 찾아질 줄 알았지만, 본질은 고사하고 어떤 완성된 생명도 찾을 수 없다. 사물과 세상을 보는 통합적 시각을 갖기에도 어렵다. 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쥐처럼 늘 빈틈만을 찾고자 한다. 묶고, 엮고, 꿰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통째로 보라, 그럴 때라야 세상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관계 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사람을 실제로 알긴 한가? 하물며 오늘 아침 면도를 하다가 거울에서 본 아주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