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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은 조직원 단합과 기업성장의 밑거름”■ 인터뷰 -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by 전경일 2016. 4. 15.

소비자들은 세계화·개방화로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값싸고 질 좋은 농식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 이에 우리 농업인들은 개방화의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거센 위협 앞에서 농업경영전략을 새롭게 짜야한다. 부가소득 극대화를 위한 6차산업에 적극 참여해 경영쇄신을 위한 힘찬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 경영리더들이 갖춰야 할 인문경영 방법 발굴과 연구, 지역강연, 저술, 상담 등에 힘을 쏟고 있는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을 만나 인문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양의 원천가치 철학인 인의예지신
잘 지키면 품질개선과 이익 자동창출

자금 없어도 조직원 혁신아이디어
잘 모으면 기업성장 가능해

 

  
 

 

인문학에는 선인들이 찾아낸
넓고 깊은 경영전략 깃들어


“이 시대에 인문경영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명을 달리했지만 스티브잡스를 비롯한 세계 경영리더들은 첨단과학시대에 살면서 구시대 인문학으로부터 경영기법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인문학에는 선인(先人)들이 찾아낸 넓고 깊은 삶의 지혜, 미래까지 계속 이어갈 귀중한 경영전략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경일 소장은 농업인들도 인문학에서 얻게 되는 창조혁신의 인문경영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한국농업의 힘찬 발전을 이끄는 주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의 우물을 끌어다 내 집 우물처럼 쓴다’는 통섭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경영을 어떻게 도입해 활용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먼저 가족경영 또는 주민협업기업을 설립하고, 중단기 매출목표를 잘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 각자의 담당업무와 영역을 잘 제시하고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 낼 것인지를 서로 진지하게 자주 협의해 공감을 얻어내야 합니다.”


구성원의 존재 의미와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관계설정을 잘 해줘야 기업의 리더십이 크게 발휘된다고 전 소장은 말했다.

 

“조직 내에서 불화와 갈등이 일어날 경우, 인문학이 인간의 이해와 화합을 강조해온 점을 참고 불화를 잘 봉합해야 합니다. 한약처방으로 체질을 보강하듯 조직이 정신적·정서적으로 계속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늘 조정해야 합니다.”

 

 

짧은 역사를 지닌 기업일수록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 적극 도입해야


 인문학은 수천 년 동안 경제, 사회, 문화 등은 물론, 특히 인간을 아울러 왔음은 검증된 바 있다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짧은 역사를 지닌 기업일수록 유구한 인간사회에서 축적된 인문학적인 지식과 경험을 기업에 도입해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성장의 주요 거름이 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을 강조하는 기업일수록 내부 단합이 잘되고 고객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습니다. 글로벌기업인 애플과 구글은 인문경영을 기술개발보다 더 중요시합니다.”

 

한편, 동양 인문학의 원천 가치철학인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은 사람이 지켜야 할 귀중한 생활덕목인데, 기업들이 이를 제품 생산과 고객서비스에 반영할 경우 품질이 개선되고 이익이 자동으로 창출된다고 전 소장은 말한다.

 

 

세종대왕은 백성의 근면성, 높은 IQ로
성장해법 찾아 조선의 르네상스 이뤄내


 전경일 소장은 찬란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뤄낸 세종대왕의 국가경영전략을 기업경영에 적용할 경우, 기업 미래발전의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대왕 즉위(1397년) 당시 조선의 상황을 녹록치 않았습니다.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죠.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직 백성의 근면성과 똑똑한 두뇌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IQ 106으로 세계 1위이고, 한국인은 105로 2위였죠. 세종대왕은 이러한 백성의 근면성과 높은 IQ를 바탕으로 성장 해법을 찾았던 것이죠.”

 

세종대왕은 즉위 10년차에 농업 증산을 이끌 생각으로 전라, 충청, 경상 감사에게 나이가 많고 농사를 잘 짓는 독농가를 찾아 풍작농사의 숨은 비결을 찾아내라고 했고, 이를 취합해 ‘농사직설’을 펴냈다.


이 책이 나오면서 쌀은 300~600% 더 생산됐고, 소아 사망률은 33%나 줄었다. 세금은 100% 더 걷어 일반 백성들의 세부담은 10~20% 줄어들었다. 남는 예산으로 문화, 경제 부문에 투자해 조선의 찬란한 르네상스를 이뤄낸 것이다. 세종대왕은 중국식농법에서 한국 고유의 농법을 개발·보급하는 전기를 만들었다.

 

이 사례만 보면 기업이 자금이 없더라도 시장을 잘 관찰하고 임직원의 지식과 아이디어만 갖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전 소장은 말한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DMZ지대인 펀치볼 마을의 이창순 씨는 토종무 중 뿌리는 작아도 잎이 무성한 무를 갖고 농촌진흥청을 찾았다. 이 무 잎을 시래기로 만들어 비닐포장한 후 인터넷과 백화점 판매계획을 상담했다. 농촌진흥청의 지도와 지원을 받고 시래기를 완판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창순 씨 세종식 창조발상으로 시래기의 상품화로 대박을 낸 것이다.


전경일 소장은 이창순 씨와 같이 면밀히 관찰하고 발상을 전환하면 농촌에서도 새 소득원을 개발할 것이 숱하게 많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보다 더 성장


 이어 전 소장은 문익점의 목화씨 도입과 일본 전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놨다.


일본은 임진왜란 전 부유한 관료층만 비단옷을 입었다. 신분이 천한 사람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을 수밖에 없어 많은 서민이 얼어 죽었다. 목화씨가 일본으로 건너가 면직기가 개발되면서 80%의 서민들이 면옷을 입을 수 있었고, 동사도 대폭 줄었다.


‘목화는 하늘이 내린 식물’로 여겨지며 일본인으로부터 대대적인 각광을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병사들의 군복과 이불인 군포(軍布)와 화승포의 심지, 선박의 돛으로 사용돼 조선 침략의 도구가 된다.

 

도요타자동차 창업주인 도요타 사키치는 도쿄에서 개최된 박람회에 출품된 영국의 자동직기를 보고 이 직기를 사들여 1935년 도요타방직회사를 창업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그 아들인 도요타 키이치로가 1937년 도요타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G1형 트럭을 완성해 본격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이 트럭은 일제식민시절 강제로 징용된 용병과 위안부를 태우고 한반도와 만주를 오가며 만주 침략의 도구로 쓰였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도요타자동차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망할 처지에 빠졌다. 그러나 얼마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으로부터 트럭을 대량 주문받아 기사회생했다. 결국 도요타자동차는 목화씨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목화씨를 홀대한 우리는 목화의 산업화 혁신을 못하고 일본 성장의 열쇠를 내준다. 목화씨에 얽힌 역사적 과오 깊

은 반성 성찰을 해야 한다.


전경일 소장은 이 같은 사례를 들며 “인문역사서를 잘 살피면 기업의 성장을 살필 수 있는 단서가 보입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