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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곡선은 왜 휘지 않고 똑 바른가

by 전경일 2016. 4. 29.

곡선은 왜 휘지 않고 똑 바른가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수학자들의 관심사는 ‘17세기적 발견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이는 두 명의 혁신적인 수학자였다.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도 위대한 수학자로 만유인력과 세 가지 핵심적인 운동 법칙을 통찰해 낸 아이작 뉴턴이 대표적 인물이다. 빛이 지나는 경로는 두 지점을 잇는 경로 중 지나는 시간을 가장 짧게 하는 경로를 택한다라는 페르마 원리로 유명한 피에르 드 페르마가 나머지 한 사람이다. 이 두 수학자의 위대한 발견에 힘입어 18세기 수학자들은 변화와 우연의 실용 영역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이런 맥락에서 페르마가 주사위의 점이 몇 개 나타날지 예측하는 확률론을 착안해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수학은 더는 새로울 것도, 도전할 것도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친구인 장 밥티스트 달랑베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은 너무 깊어졌으며 이미 파낼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뉴턴 이래 고전역학을 가장 포괄적으로 다뤘고, 19세기 수리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수학자로 평가되는 사람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당시 수학계의 전반적인 인식이 어땠을지 짐작 간다. 이때가 1781년 무렵이었다. 그에 대해 친구는 동병상련의 심정에 젖어서는 딱히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채, “전진, 전진! 진리는 그러는 동안에 찾아오리라!”라는 위로의 답장을 써서 보냈다. 이렇듯 18세기 수학은 갈 데까지 다 간 것처럼 보였다.

 

더는 도달할 목표가 없을 것 같던 수학은 19세기에 들어서자, 이전의 견고하던 발판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직관과 상식에 의존하던 수학에서 절대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논리 위의 수학으로 넘어간 것이다. 새로운 수의 영역이 생겨나자 그때까지 계산에 쓰이던 낡은 수는 이제 단순한 일부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추상을 다루던 수학은 퇴조했다. 삼각법, 대수(對數), 함수 등도 포함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ab= ba라는 등식은 ‘ab가 반드시 ba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묘한 신법칙이 등장하며 완전히 차원을 달리했다. 또 종래에 대수를 구성하던 모든 기호도 대체되었다.

 

이런 암중모색 상태에서 19세기 수학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그가 바로 독일의 위대한 천재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다.(자장(磁場)강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가우스, 배가 자기(磁器)를 배제해 기뢰를 피하는 측정기를 해군용어로 데가우싱이라 부르게 된 것은 전기에 대한 가우스의 연구를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가우스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불과 3살 때인 1779, 직인 우두머리였던 아버지가 벽돌공의 봉급 전표를 계산하는 것을 보고 계산 착오를 지적할 정도였다. 아버지가 다시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어린 아들의 계산이 옳았다. 일설에 의하면, 가우스는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이부터 산술의 기본법칙에 관해 골똘히 궁리하곤 했다. 10세 때에는 학교에서 1에서 100까지 더하면 얼마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석판에 당장 5050이라 쓰고 이것이 답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다른 학생들이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숫자를 휘갈겨 쓴 석판을 제출했지만 아무도 정답을 내지 못한 것과 달리 가우스는 1100, 299, 398, 497······, 5051하는 식으로 쌍을 이룬 수()의 짝을 만들고 각각의 합이 101이므로 합계하면 10150이 되는 것을 순간적으로 생각해냈을 것이다. 장차 수학계의 모차르트로 불리게 될 이 신동은 14세 때 브라운시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공의 주목을 받아 대학을 끝내고 청년기에 이를 때까지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가우스는 이 행운을 충분히 활용해 공부에 열중했다. 공부 대상도 고전문학에서 대수표까지 광범위 했고, 기하, 대수, 미적분과 함께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덴마크어까지 독파했다.

 

숱한 창조적 생각과 발견을 이뤄냈지만 그는 뭐든 반쯤 전개시킨 뒤 내동댕이치고 그것을 출판하려고 하지 않았다. ‘성숙하는 것은 적다라는 그 자신의 지론 때문이었다. 또한 자기 착상이 다른 수학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정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받을까 봐 두려워 해 몇 개는 혼자만 간직한 채 발표하지도 않았다.

 

유클리드 이후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던 공간은 직선으로 잘라서 도시해야 한다라는 말에 그는 절대로 처음부터 그러해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간은 실제로는 왜 만곡(彎曲, 굽은)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공간은 휘어져 있어도 좋을 법하지 않은가. 진리에 접근했지만, 그는 이 생각을 가슴 속에 깊이 감춰 두었다.

 

이 시기 가우스를 줄곧 매료시킨 기하학적 아이디어는 만곡된 공간 개념이었다. , 주어진 직선 위에 없는 한 점을 지나 그 직선에 1개 이상의 평행선을 그을 수 있다는 묘한 공리에 의해 새 종류의 2차원적 기하학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 새 공리는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어진 직선 바깥의 한 점으로부터는 평행선을 오직 1개밖에 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저 유명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제다. 가우스의 공리는 이 명제에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이었다. 만년에 들어서야 가우스는 평행선의 비()유클리드적 법칙에 관한 자기 아이디어가 만곡된 공간의 단면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우스를 있게 한 것은 수학의 제분야에 걸친 연구 주제를 굳이 하나의 장()에서 추구하고자 한 이유도 있지만, 생애를 통해 그의 주변에 어떤 시대보다도 많은 새로운 수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속한 시대적 산물이자, 그가 열어젖힌 새로운 세계였다.

 

가우스가 도달한 영역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다음 세대의 젊은 수학자는 베른하르트 리만이었다. 리만은 다차원의 아이디어를 본 궤도에 올리기 위해 곡선과 곡면의 특성을 일반화하여 모든 차원의 공간에 적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가우스 연구를 기초로 하여 가정곡선공간(假定曲線空間)과 삼차원 이상의 공간을 취급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리만은 3차원의 굽은 공간을 비롯해 최후에는 4차원과 그 이상의 다차원으로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공간까지 가정했다.

  

 

() 유클리드의 상식적 공간. 유클리드는 만곡 되지 않은 평면을 주장했다. 여기서 직선은 최단경로를 취하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를 이룬다. 또한 삼각형은 일그러뜨리지 않은 채 이동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가우스는 이러한 평면도 곡면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기하학의 하나의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가운데) 리만의 독창적 공간. 리만이 생각한 것은 이른바 굽은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는 두 지점 간 최단 경로는 곡선이 되며 삼각형은 이동함에 따라 일그러진다. 언제나 180도이어야 할 내각의 총합도 삼각형이 움직임에 따라 변한다.

 

(아래) 아인슈타인의 우주공간. 별 같은 천체가 리만이 고안한 굽은 공간의 한 단면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별의 질량이 곡률을 낳는다. 그것은 공간 왜곡에 의한 것으로 물질이 서로 당기는 인력 때문은 아니다.

 

 

 

 

 

 

              ()                                    ()

()옴폭옴폭한 점토로 만든 태양계 모형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태양과 그것을 둘러싼 행성은 각기 공간 속에서 옴폭한 포킷을 가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만곡 때문에 천체 옆을 지나는 광선은 휘어지리라고 예언했고 과학자들은 그것을 입증해 냈다. 마치 골프공이 기복이 심한 골프장 위를 굴러가듯 우주선의 진로도 우주의 굴곡 때문에 비틀거리게 된다.

 

() 빛은 중력장을 통과할 때 구부러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1919년 개기일식 때 증명되었다. 상단의 그림은 별 A와 별 B의 빛이 정상적으로 지구에 도달하는 통로를 나타낸 것이다. 일식 때는 태양이 이 두 개의 통로 사이로 지나갔다. 그리고 어두워졌을 때 2개의 별을 사진으로 찍어보니 아인슈타인의 예언대로 아래 그림과 같이 광선은 중력으로 구부러졌다. 그 때문에 광선은 점선상의 AB에서 오는 것같이 보였다. 다시 말하면 태양이 지나감에 따라 마치 별 자체가 움직이는 것같이 느껴졌다.

 

다시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추상의 힘을 빌러 상대성이론에서 우주의 실태를 기술하고 가우스와 리만의 방법을 최고의 경지까지 발전시켰다. 이 위대한 물리학자의 상대성이론은 쉽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다.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1905년에, 후자는 1916년에 각각 발표된 것으로 양자 모두 모든 과학적 측정은 관측자[좌표계(座標系)]에 따라 달라진다는 전제 하에 출발한다. 다시 말해 어떤 현상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기술하거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될 만한 고정된 중심이 이 우주에는 없다는 것이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아득히 먼 은하나 원자 미립자처럼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와 에너지에 관해 뉴턴 역학의 방정식으로써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걸 밝히고 시정한 것이다. 원자식 E=mc <!--[if !vml]--><!--[endif]--> (에너지 E는 질량 m에 빛의 속도 c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은 특수 상대성이론의 필연적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과 동일한 테마를 더욱 엄밀하게 추구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는 뉴턴의 법칙을 수정하여 직선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빨리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했지만,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독자적인 방정식을 전개하여 곡선을 따라 속도를 바꾸면서 움직이는 물체에도 적용되도록 했다.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의 방정식이라 불리는 것은 운동의 모든 가능한 상태를 총망라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의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움직임까지도 나타내고 있다. 약간의 기호만으로 적혀 있는 이 방정식은 철학 서적만큼이나 난해하고 또 경이적이며 실로 엄청나게 광범위한 적용 범위를 갖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방정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리만의 아이디어를 빌린 덕분이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살고, 별이 운행하는 공간은 실제로는 굽어 있다. 공간에 곡률이 생기는 것은 시공연속체(時空連續體) 속에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물질과 에너지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우스에서 리만 그리고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직선에서 만곡으로의 이행은 그간 상식적 공간으로 알아왔던 유클리드의 평면이 만곡된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만곡된 공간에서의 삼각형은 움직임에 따라 변하며, 평면에서처럼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닐 수 있다. 이런 것은 이전에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라고 배워 온 개념을 확 바꿔 버린다. 마치 대수에서 ‘ab가 반드시 ba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이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과학 분야에서만 해석 가능할까? 공간의 왜곡에 의해 질량이 곡률을 낳는다는 정리는 얼마든지 다른 분야에도 적용 가능하다. 즉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은 더 큰 세상에 의해 영향 받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조차 수직이 아닌 곡률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세상을 움직이는 주요 원리로 서로를 잡아끄는 힘인 인력(引力)을 중시하던 것에서 이제는 각자 왜곡된 세상에서 왜곡된 상태로 위치 지워지는 인간 존재를 엿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념적으로 이해하듯 왜곡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굽은 공간에서 굽은 상태는 다른 관측자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만곡된 곡선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툰 석수장이처럼 수학이나 물리학을 인간사의 모든 면에 맞추려하진 않아도 여러 면에서 세상사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우리는 우주적 원리를 꿰뚫려 하기보다 17세기 수학자들처럼 그저 변화와 우연의 영역을 탐구하는 사람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타인을 향할 때 자신이 휘어진 줄도 모르고 직선을 그으며 가고 있다고 믿거나, 혹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는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그런 우매함처럼 말이다. 이런 석수장이는 인간사에서도 그렇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서는 별 쓸모없어 보인다. 누구건 휘고 굽어 있다. 요는 무엇을 향해 그러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